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1424
이칭/별칭 동구 망우공원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효동로2길 93[효목동 1224-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주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망우당공원 - 대구광역시 동구 효동로2길 93[효목동 1224-7]지도보기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임진왜란 당시 의병운동으로 나라를 지킨 곽재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공원.

[대구 동구를 바라보는 망우당 곽재우]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화랑교를 건너다보면 문득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위엄 있는 누각과 기백 넘치는 동상이 바로 그것인데,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당공원의 모습이다. 근심을 잊겠다는 뜻의 망우당(忘憂堂)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던 곽재우(郭再祐) 선생의 호다. 곽재우는 자신의 집을 망우정이라 이름 짓고 문집은 『망우집』이라 하였으니 자연히 공원의 이름도 망우당이 되었다. 곽재우의 가문인 현풍곽씨 후손들은 의병활동으로 공적을 세운 곽재우를 기리기 위해 자신들의 땅을 희사하여 공원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현재 망우당공원동촌유원지와 인접해 있어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금호강 물에서 오리배를 타던 연인도, 체육공원으로 운동을 나온 학생도, 산책로를 걷는 주부도 이곳 망우당공원곽재우 동상을 바라볼 수 있기에 시민들에게 매우 적합한 위치라 할 수 있다. 백성들이 함께 일어나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해냈던 우리 선조들의 기상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곽재우]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기준으로 하여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그만큼 두 전쟁이 불러온 변화는 막강한데 사회경제적 변화와 더불어 민중의식의 변화가 컸다. 특히 임진왜란의 경우 왜적과 맞서 싸워야 마땅할 관리들이 앞 다투어 도망간 것에서 백성의 믿음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1592년 4월 14일, 일본이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달라는 구실로 조선의 부산포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왜군이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는 등 무서운 기세로 올라오자, 전쟁 대비가 부족하여 싸울 준비를 하지 못했던 임금과 벼슬아치들은 의주로 피난을 간다.

이에 반해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빠지자 지체 없이 행동에 나선 이들이 있다. 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4월 22일, 의병을 일으킨 40세의 장년 곽재우 같은 의병장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목숨을 바쳐 나라와 백성을 지켰다는 점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의병은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옳은 일을 위하여 백성들이 스스로 조직한 병사를 일컫는데 곽재우는 의병을 모아 직접 왜군과 싸울 결심을 한 것이다. 처음에 곽재우가 거느린 의병부대는 10여 명의 노비로 시작했지만, 이틀간 이웃을 설득한 결과 50여 명으로 불어나기 시작해 마침내 2천 명에 이르는 병력으로 발전했다. 왜군이 조선의 국토를 짓밟자, 의병장 곽재우는 유생과 농민들, 승려와 노비들에게까지 나아가 싸우자고 독려한다. 삶의 터전을 버릴 수 없어 미처 도망칠 수도 없었던 백성들은 의병의 북돋움에 용기를 얻어 낫과 곡괭이를 들고 왜적에 맞섰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의 의병은 대략 2만 2천명이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인 1만 2천여 명이 경상도 의병이었으니, 전국 최초로 의병을 세운 곽재우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곽재우는 연이어 승리를 거듭했는데 특히 1592년 5월 24일, 정암진전투에서 왜병에 대승을 거둠으로써, 경상우도를 보존할 수 있었다. 정암진은 영남의 한 귀퉁이인 남강 북쪽 기슭에서 호남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어서 전략상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정암진전투의 승리는 조선군이 육지에서 일본군에게 이긴 최초의 전투로서 무엇보다 왜적의 승승장구를 막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덕분에 농민들은 평소처럼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호남평야로 진격하려던 왜군의 계획도 차단할 수 있었다. 비록 왜군보다 무기와 병력이 부족했지만,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의 절절한 애국심과 지리적 특성을 잘 활용한 전술은 적군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이처럼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불과 10여 일 만에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던 곽재우는 개인 재산을 털어 병사를 위해 나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재산을 모두 쾌척하면서까지 국난을 극복하고자 애쓴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좌찬성을 지낸 이호민(李好閔)은 아래의 시를 지을 정도로 곽재우를 칭송했다. “내가 들으니 홍의장군은 왜놈들을 노루 쫓듯 한다고 하네. 그대를 위해 말하노니 끝까지 힘을 다하여 모름지기 곽분양(郭汾陽)과 같이 되소서.” 곽분양은 당나라 현종 때 안녹산의 난을 평정하여 성공과 행복을 누린 인물이다. 이호민으로서는 곽재우의 전공을 높이 사 그가 곽분양처럼 대접받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전쟁 이후 곽재우는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섬을 반복하였으나 그의 애국심과 실천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망우당공원을 지나는 이들을 감화하게 한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서 있는 망우당공원]

망우당공원은 대구광역시의 동쪽 관문에 자리 잡은 공원으로, 공원 내에는 곽재우 장군의 동상과 더불어 망우당 기념관이 있다. 곽재우 장군은 임진왜란 때 신출귀몰한 작전을 세워 승리의 큰 몫을 담당했는데, 늘 전장에 나갈 때 붉은 옷을 입었다고 하여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곽재우는 부친 곽월(郭越)이 명나라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황제로부터 받은 붉은 비단으로 장수복을 만들어 입고 자칭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 하였다고 나와 있다. 또한 낙동강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가 많든 적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해 들어가니 적들이 곽재우를 두려워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매복작전과 기습공격 등 다양한 전술 전략에 능통하였던 그는 연이어 왜적을 유린하고 격파해 백성들로부터 환호를 자아냈다. 유격전이라 부를 만한 이 전술은 순식간에 적진에 돌진하거나 위장전술 등의 변칙으로 적을 무찌르는 것이다. 아무래도 정규부대보다 전력이 열등할 수밖에 없는 의병으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전술이었을 것이다. 곽재우가 승리한 일화 중에는 똑같은 붉은색 옷을 여러 부하에게 입힌 대목도 있다. 몸이 날쌘 여러 명에게 자신과 같은 홍의를 입히고 여러 방향에서 왜군을 공격한 것이다. 적들의 입장에서는 동쪽에서 나타났다가 다시 서쪽에서 나타나는 홍의장군이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이때의 용맹함을 보여주듯 대구 동구의 망우당공원에는 말 위에 앉은 채 큰 칼을 찬 모습의 곽재우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을 받치고 있는 표지석에는 ‘홍의장군 곽재우선생상’이라고 쓰여 있어 지나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조선으로 시간 여행하도록 이끈다. 가족 단위로 망우당공원을 찾는 이들은 걷는 곳곳마다 역사교육이 가능해 생생한 체험현장으로도 활용중이다.

[호국정신과 의병의 날을 기리는 망우당공원]

곽재우의 의병정신은 구한말 다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을미의병 등으로 이어졌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만주나 연해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연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연히 일어섰던 의병들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모습이나 6.25전쟁에 뛰어든 참전용사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들에게는 공통으로 ‘호국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 스스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이 정신은 우리나라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평화를 지켜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고 있는데 익히 알고 있는 6월 6일 현충일, 6월 10일 민주항쟁기념일, 6월 25일 한국전쟁일 외에도 특히 6월 1일이 뜻깊다. 이날은 의병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데 바로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다.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통해 오늘날에도 나라 사랑 정신을 이어가고자 정한 것이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과 공로에 보답하는 정신을 이어나가자는 의견이 망우당공원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해마다 호국충절을 기리는 날에는 망우당공원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확연히 늘어 이곳이 애국지사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임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6월 1일 의병의 날과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대구시는 공식적으로 망우당공원에서 행사를 가져 동구가 호국정신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망우당공원 살펴 보기]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과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길게 걸쳐 있는 망우당공원은 두 개의 행정구역을 거느릴 정도로 넓은 7만 6179㎡의 면적이다. 공원 둘레에는 목련, 백일홍, 은사시나무 등이 심겨 있어 동산을 이룰 만큼 아름다우며 공원 뒤로는 금호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대구시민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명소이자 소중한 휴식공간인 셈이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방면에서 망우당공원에 들어서면 맨 먼저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누각을 볼 수 있다. 이 누각은 조선 시대인 1591년에 축조된 대구읍성의 남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가 1980년에 와서 이곳에 중건했다. 영남제일관 앞에는 옛 모습대로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어 마치 시대를 재현한 느낌이다. 또한 임란호국영남충의단(壬亂護國嶺南忠義壇)전시관,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기념탑(抗日獨立運動纪念塔) 등이 있으며 인근에 대구기상대, 아양아트센터, 체육공원, 동촌유원지, 조양회관 등이 있어 한나절 동안 둘러볼 수 있는 코스로 알맞다. 특히 빨간 벽돌건물인 조양회관(朝陽會館)은 대구독립운동의 대표적 유적지여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곳은 3·1운동 이후 민중을 깨우쳐 민족혼을 심고자 1922년 청년들을 대상으로 건립한 곳으로 1984년 6월 9일 망우당공원 내에 이전 복원하였다. 조양이라는 이름 그대로 조선의 빛을 키우고자 열망했던 당시의 민족의식을 엿볼 수 있다. 조양회관 안에는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대한 여러 기록사진과 유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대구 등록문화재 제4호로 정해져 있다.

망우당기념관에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 의병장이자 경상도 방어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지낸 망우당 곽재우 장군에 관한 기록과 유품이 놓여 있는데 일명 망우공원 팔각정이라고도 불린다. 가까이에 있는 전시관은 작은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각종 유물을 갖추어 전시하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임란호국영남충의단이다. 여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관련한 내용이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이 한 목숨 바쳐 나라에 보답함이 신의 소원입니다.”라고 적혀 있어 의병들의 비장한 각오를 새삼 느낄 수 있게 한다. 충의단 전시관임진왜란 시대의 기록 영상실까지 갖추고 있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호국의식을 고취시키는 임란호국영남충의단 전시관 옆에는 임란호국영남충의단이 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선 의병들의 위국충절을 기리고 있는 이곳은 매년 의병의 날에 제향을 올리는 제단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특별히 홍살문이 세워져 있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겨레를 구하는 데 앞장섰던 영남의병 315위의 혼령을 봉안하고 있는 성지로서 높은 뜻을 기리는 장소임을 알 수 있다.

망우당 공원 안쪽으로 들어서면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기념탑에는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에서 분연히 일어선 항일 애국지사 1800여 명 이름이 빈틈없이 적혀 있다.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탑임을 짐작케 한다.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은 대구경북의 애국지사들을 위해 시민성금으로 세운 전국 최대의 독립기념탑으로 2006년 6월 15일에 건립되었다. 광복회 대구지부연합회에서 뜻을 모은 이 탑은 어둠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의 형상으로 만들어, 올려다보는 이들에게 호국정신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망우당공원 안에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2010년 7월, 6·25전쟁 60돌을 맞이했을 때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려 세운 것이다. 기념비에는 6·25 참전 전사자, 사망자, 생존자 및 베트남전 참전 용사 등 4,000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어 기록비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망우당공원에 부지 65㎡를 확보하여 높이 6.5m로 건립한 기념비석에는 “조국의 위기 앞에 신명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 세계평화와 자유수호를 위해 타국 베트남에서 피를 흘려 싸워온 우리 지역 출신 호국 전사들의 희생을 기리며, 그 정신을 새겨 후세에 전하고자”라는 건립 취지문이 새겨져 있다.

망우당공원을 산책하며 이 모든 곳을 관람할 수 있기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에서부터 전쟁경험이 있는 어르신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주로 관람하는 코스는 곽재우 장군 동상 주위의 망우당기념관, 임란호국영남충의단에서 출발한다. 바로 옆에 있는 동구 6·25 및 베트남 참전기념비를 살펴본 뒤 망우당공원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오면 애국지사공적비와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나타나며 마지막으로 조양회관까지 살펴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대구광역시 동구는 망우당공원을 향후 호국 테마공원으로 조성하여 국가 차원의 지원과 관리를 얻고자 추진 중이다. 충절을 테마로 한 명소로써 망우당공원을 재평가하고자 한 움직임이라 볼 수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청 공원녹지과에서 관리하고 있는 망우당공원은 연중무휴로 상시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모든 계층에서 즐겨 찾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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