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화사 소속 지방학림 출신으로 대구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권청학(權淸學)[1899~1981]은 1899년 4월 15일 태생으로, 1919년 3월 28일 윤학조(尹學祚), 김문옥(金文玉)등과 함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동화사 심검당(尋劍堂)에서 3월 30일에 독립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원래는 달성군 공산면 백안시장[지금 대구광...
-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문옥(金文玉)[1898~1955]은 1898년 2월 10일 태생으로, 1919년 3월 28일 윤학조(尹學祚), 권청학(權淸學)등과 함께 팔공산 동화사 심검당(尋劍堂)에서 3월 30일에 독립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원래는 달성군 공산면 백안시장[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백안동 백안시장]에서 만세 시위를 하고자 하였으나, 사람들이 더 많이...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출신 독립운동가. 김성권(金聖權)[1922~2007]은 1941년 2월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체 ‘다혁당(茶革黨)’ 결성의 중심인물이다. 김성권은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권쾌복, 최영백, 김효식, 이도혁, 문덕길, 최태석, 배학보, 이종악, 서진구, 이주호, 박호준, 이홍빈 등 9기생들을 주축으로 다혁당을 결성하였다. 다혁당은 1939년 8월에 9기생...
-
대구광역시 동구 등지에서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활동한 조선인민유격대 부사령관. 남도부는 1921년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이 하준수(河準洙)인 남도부는 아버지 하종택과 어머니 이의영 사이에 3남 3녀 중 장남이었다. 아버지 하종택은 오랫동안 면장을 지냈으며 천석꾼 부자였다. 남도부는 진주고등학교의 전신인 진주중학교 3학년 때인 1937년에 일본인 교사를 폭행...
-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유격전을 지도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배철은 191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28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정학처분을 받았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 송도고등보통학교 투쟁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투쟁을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4개월간 구금되는 탄압을 받았다. 1931년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유학하던 중 일본공...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달성군 성북면은 원래 대구광역시 동구 소속 지방행정구역이었으나 1963년 공산면의 동변동, 서변동과 함께 대구광역시 북구로 편제되었다. 서상락(徐相洛)[1893~1923]은 경상북도 달성군 성북면 산격동 출신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현강공파 남계공후손인 순태공의 후손이다. 서상락의 다른 이름은 서영윤(徐永潤), 서영림(徐...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소재의 조양회관 건축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치가. 서상일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역동적인 삶의 궤적을 보여준 특징적인 인물이었다. 서상일의 삶의 궤적은 근현대 한국사회의 주객관적 조건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었고, 한국 근현대사의 변동과 상호연관성을 맺고 있었다. 서상일은 1886년...
-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시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출신 독립운동가. 송두환(宋斗煥)[1892~1969]은 예산송씨 송주석과 장수황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송두환은 1892년 11월 9일 달성군 수성면 신암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익혔다. 1912년 서울특별시에서 보성학교에 재학하고 있을 때, 경제적 항일운동체로서 산직장려계를 조직하였다....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신암선열공원에 안장된 일제강점기 무정부주의 운동가. 우해룡은 1906년 7월 16일 출생하여 1969년 3월 9일에 서거하였다. 1925년 3월 신사상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상단체 혁조단(革造團)을 결성하였다. 같은 해인 1925년 7월 대구노동친목계를 대구노동친목회로 전환하는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 당국의 금지로 마무리하지...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 출신 독립운동가. 유근성(柳根成)[1884~1945]은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 창사리[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유성대(柳成大)이다. 유근성은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에서 흠치교[증산교]의 6인조에 입교하여 1924년경에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조선을 독립시켜 흠치교 교주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에...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 출신 독립운동가. 유상준(柳相駿)[1890~1951]은 경상북도 달성군 해안면 검사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8월경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차경석을 교조로 결성된 흠치교에 가입하였다. 흠치교 12인조 활동을 하면서 1924년 갑자(甲子)년에 흠치교의 힘에 의해 조선이 독립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자금 모집 및 교세 확...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 출신 독립운동가. 이갑상(李甲相)[1924~2017]은 경상북도 달성군 동촌면 입석리[현 대구광역시 동구 입석동]에 본적을 두고, 1944년 9월 징병 1기생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주둔한 일본군 부대에 배속받았다. 1945년 2월 1일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여 중국 구강지구 중국군 제17사단에서 중앙군과의 합동작전에 참여하여 항일 활동을...
-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출신 변호사, 독립운동가, 정치인. 이인(李仁)[1896~1979]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출신으로 호는 애산(愛山), 달동의숙과 경북실업보습학교를 졸업하였다. 1914년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법과 야간부에 입학 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과로 편입했다. 그 후 대학원과정인 니혼대학 고등전공과(高等專攻科)에서...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 독립운동가. 이종암(李鍾巖)[1896~1930]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이종암(李鍾岩), 이종순(李鍾淳), 양건호(梁健浩)로 불렸다. 대구농업학교를 중퇴하고, 열아홉살에 대구은행에 들어가 출납계 주임이 되었다. 1917년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은행 돈 1만 9000원을 가지고 만주로 도피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19...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출신 독립운동가. 장언조(張彦祚)[1924~1998]는 192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서 출생하였다. 장언조는 대구 보광학원 4학년 재학 중, 민족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다. 1943년 10월에 일본 헌병대에 의해 강제 징집되어 중국 후난성[湖南省] 헝산[衡山] 일대에 배속되어 군사 훈련을 받고,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사복동 출신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전명석(全明石)[1910~?]은 경산군 안심면 사복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사복동]에서 출생하였다. 1925년 4월에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29년 3월 4학년 재학 중 퇴학당하였다. 1929년 8월에 일본 도쿄[東京]으로 가 9월에 칸다(神田) 킨죠오(錦城)중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가, 1930년 4월...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동석(鄭東錫)[1885~1968]은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신암[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출신이다. 1919년 9월에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군자금 모집을 하려고 하던 송두환으로부터 권총 2정, 실탄 10여발을 받아 보관하였다. 1920년 11월에는 대구부 신암동 구장으로 있으면서 다시 권총 3정과 실탄 300여발을 받아 보관하고...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출신 독립운동가. 정일수(鄭一洙)[1924~2008]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출신이다. 1942년에서 1944년 3월까지 중국군에 합류하여 대일공작활동을 하였다. 이후 1944년 3월 10일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1지구대에 배속되어 복무하였다. 한국광복군 제1지대는 김원봉이 지휘하던 조선의용대를 흡수, 합병하여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성하여 미·...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채갑원(蔡甲元)[1894~1986]은 1894년 6월 21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공산면 미대동은 인천채씨 일족의 집성촌이었다. 1919년 4월 26일 채봉식(蔡奉植)·채희각(蔡熙覺)·채학기(蔡鶴基)와 함께 모의하여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채경식(蔡敬植)[1896~1950]은 1896년 11월 24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공산면 미대동은 인천채씨 일족의 집성촌이었다. 1919년 4월 26일 일족인 채갑원(蔡甲元)·채봉식(蔡奉植)·채희각(蔡熙覺)·채학기(蔡鶴基)가 모의하여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라 독립만세...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채명원(蔡命元)[1901~1966]은 1901년 10월 18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공산면 미대동은 인천채씨 일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1919년 4월 26일 일족인 채갑원(蔡甲元)·채봉식(蔡奉植)·채희각(蔡熙覺)·채학기(蔡鶴基)가 모의하여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채봉식(蔡奉植)[1889~1949]은 1889년 4월 9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공산면 미대동은 인천채씨 일족의 집성촌이었다. 1919년 4월 26일 채갑원(蔡甲元)·채희각(蔡熙覺)·채학기(蔡鶴基)와 함께 모의하여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채송대(蔡松大)[1896~1966]는 1896년 11월 20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공산면 미대동은 인천채씨 일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1919년 4월 26일 일족인 채갑원(蔡甲元)·채봉식(蔡奉植)·채희각(蔡熙覺)·채학기(蔡鶴基)가 모의하여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
-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권재갑(權再甲)은 1919년 4월 26일 채갑원(蔡甲元)·채봉식(蔡奉植)·채희각(蔡熙覺)·채학기(蔡鶴基)가 모의하여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고창한 것에 고무되어, 1919년 4월 28일 이들과 함께 일족인 채송대(蔡松大)·채경식(蔡敬植)·채명원(蔡命元) 등과 더불어 여봉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고창...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의 교육운동가, 언론인, 민족운동가. 채충식은 1892년 음력 11월 15일,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아버지 채성원(蔡星源)과 어머니 서남주(徐南珠)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채충식은 1923년 왜관청년회가 여성 청소년의 교육을 위해 설립한 왜관여자야학의 의무교사로 교육운동을 벌이면서, 조선일보 왜관지국장으로 언론활동을 펼쳤다. 1925...
-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채학기(蔡鶴基)[1901~1987]는 1901년 1월 6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공산면 미대동은 인천채씨 일족의 집성촌이었다. 1919년 4월 26일 채갑원(蔡甲元)·채봉식(蔡奉植)·채희각(蔡熙覺)과 함께 모의하여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19...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독립운동가. 채희각(蔡熙覺)[1894~1967]은 1894년 8월 2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공산면 미대동은 인천채씨 일족의 집성촌이었다. 1919년 4월 26일 채갑원(蔡甲元)·채봉식(蔡奉植)·채학기(蔡鶴基)와 함께 모의하여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1...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 출신 독립운동가. 최경학(崔敬學)[1890~1976]은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 신기동[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신기동] 출신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현 대구광역시] 서문[현 서문시장] 장날을 이용하여 이만집(李萬集)·김태련(金兌鍊)·김영서(金永瑞)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 교사였던 최경학은 3·1만세항쟁 소식...
-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독립운동가. 최종응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성문(聲聞), 호는 금전(琴田). 가명으로 최근응(崔謹應)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최흥원(崔興遠)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남교(崔南敎)이다. 최종응(崔鍾應)[1871~1944]은 경상북도 달성군 둔산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이다. 최근응이라는 가명을 쓰기도 하였다. 최종응은 19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