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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해안면에 설치할 수리조합 설립 반대 운동. 수리조합은 1906년 제정된 「수리조합 조례」에 따라 관개배수시설의 신설, 보수, 관리를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수리조합의 설치는 1920년대 일제의 농업정책인 산미증식계획의 원활한 성공을 위해 추진되었다. 일제는 자금보조 등 각종 지원으로 대지주의 수리조합 설치를 후원하였다. 대지주를 위주로 한 일제의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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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서 발생한 공동묘지 선정 반대운동. 동구 둔산동 주민들이 급수의 위생문제, 동촌유원지의 풍치문제, 교육문제, 교통문제 등을 근거로 공동묘지 선정에 대해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강점기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자 그에 따른 사회적 문제로 묘지 부족 현상이 심화되었다. 전통적으로 매장 풍습이 강한 우리 장례 문화를 고려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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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제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시행한 소방 조직체. 1939년 말 경방단의 전국 조직 상황은 경방단과 분교를 합쳐 2천7백53개 조, 단원 18만 1천2백21명 수준이었다. 이는 소방조가 해체되기 전해인 1938년 말의 소방조 1천3백93개조, 조원(組員) 6만 9천4백14명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이다. 또한 경방단 설치와 동시에 방공 설비의 강화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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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농촌진흥운동이 시작되면서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세워진 조합. 공려조합(共勵組合)은 일제가 전쟁 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농촌이 더욱 피폐해지자 「농가경제갱생계획」을 목표로 설립했다. 1930년대 농촌통제정책은 농촌진흥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농촌진흥운동의 주요한 실행 방안으로 개별 농가경제 안정을 목표로 한 「농가경제갱생계획」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총독부는 1935년 「갱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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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일제가 전시동원체제를 위해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도 추진한 식민지배정책. 국민정신총동원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정책적으로 추진한 최고의 정책이었다. 1937년 9월 일본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진행된 연설회에서 일본 수상 근위(近衛)는 일본·만주·중국을 일본 정치 아래 두고 동양평화를 실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관민일치의 국민정신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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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일전쟁 이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각 면에 설치하여 운영한 훈련소. 일제가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일반 민중의 황도정신 계발과 계몽을 위한 시설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전시동원체제를 적절히 운영하기 위해서는 황도정신계발 및 계몽을 위한 조직적 훈련 기관의 필요성에서 국민훈련소를 설치·운영하였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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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소농구제 자금을 운용하기 위해 설립된 관변 농민 단체. 1928년부터 총독부 산하 경상북도청은 5개년 간 도내 272면에 대해 각 면 당 4개 조합에 해당하는 총 1,088 조합을 설치하고, 조합 소속 소농의 규모를 3만 2천 6백 40인에 대해 소액 생업자금 총 65만 2천 8백 원 규모의 자금을 대부할 계획을 세웠다. 이 자금은 조합 소속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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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 개항기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는 자주적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이었다. 근대 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변혁운동은 1910년 한일병합을 계기로 식민지 민족운동으로 전환되었다. 근대 시기 동구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립하지 않았다. 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의 지방행정구역은 많은 변동을 거친다. 즉 달성군에 속하기도 하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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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면소작조합이 달성군 농민단체와 함께 벌인 농민운동. 일제강점기 식민지농업정책으로 인해 식민지지주제가 확대 심화됨에 따라 지주와 소작농의 마찰이 심화되어 갔다. 지주들은 소작인에게 고율소작료, 각종 세금, 공과금 등을 불법적으로 전가하는 관행을 오랜기간 해왔다. 그 가운데서 1920년대 중반 소작농들도 해안면소작조합을 결성해 지주에게 대응했다. 해안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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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식민지지주제에 맞서 농민들이 일으킨 지주에 대한 저항과 항일 투쟁. 일제강점기 식민지 농업정책의 운영에서 일제는 1910년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지주의 소유권을 강화한 식민지지주제를 확립하고,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을 통해 일본 자본과 지주 중심의 식민지지주제를 확대·강화하였다. 식민지농업전쟁의 전개 과정에서 조선 농민은 토지에서 내몰려 궁박한 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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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추진된 일제의 식민지농업정책. 1920년대 동구 지역이 위치한 달성군의 식민지지주제의 농업구조는 세계대공황 이후 1930년대 일제의 식민지농업정책인 농촌진흥운동이 벌어지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30년대 일제는 조선에 농촌진흥사업을 실시하였다. 조선의 지주에 대해 일정하게 압박을 가하면서 피폐된 조선농촌의 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실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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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청년회와 효목청년회가 참가하여 조직한 달성군청년운동 조직. 1925년 무렵 청년운동 단체들이 이른바 혁신총회를 통해 청년운동을 민족운동의 선구로 설정하는 가운데 부군단위 청년운동 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문화운동 차원의 청년운동에서 대중운동과 민족운동의 선도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청년운동의 노선 전환을 시도하였다.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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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7월 개통되어 대구광역시 동구의 동촌 일대와 대구광역시를 이은 대중교통. 대구광역시에 대중교통수단으로서 버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9년 7월이었다. 이때는 대구 특유의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버스 운영은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가 직접 운영하는 형태의 부영버스였다. 대구 부영버스 개통을 위한 움직임은 1928년 3월 무렵 대구부가 차장(車掌) 또는 ‘뻐스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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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부터 1910년까지 만들어진 대구와 경주를 잇는 도로로, 대구광역시 동구를 지나가는 도로. 대구와 경주를 잇는 도로이기에 대구-경주가도라 하며, 대구를 기점으로 동쪽, 동해를 향하기에 동부선이라 불렀다. 대구-경주가도는 대구[지금 대구광역시]와 동촌[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일대]을 거쳐 영천[지금 경상북도 영천시]까지 3.6㎞[9리], 영천에서 경주까지 3.6㎞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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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추진된 도시계획과 지방행정구역의 재편. 1931년 대구광역시 동구에 도시계획이 추진되었다. 특히 ‘대(大)대구의 건설’을 목표로 한 도시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새롭게 추진된 도시계획은 크게 하나는 대구 인근 지역을 대구에 편입하는 시구 개정 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대대구의 건설의 목표로 하는 사단 유치, 비행장 건설, 동촌 개발, 종방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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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아양교 부근에 동촌비행장의 건설과 함께 설치된 무전 시설. 대구항공무전국 발신소는 1937년 1월 31일에 동촌비행장의 개장과 함께 대구항공무전국 수신소와 동시에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동촌비행장의 건설 계획은 1935년 8월 무렵 총경비 약 26만원에 1462,801㎡[4만 평] 정도 규모로 확정되었다. 수년간 동촌비행장 건설공사와 함께 항공무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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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 일대에 건설된 비행장. 1931년 대구부의 도시계획에 따라 현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 일대를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에 편입해 비행장 건설을 계획하였고, 1930년대 초 대구에도 국제 항공로의 비행장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대구비행장 설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아무런 활동 없이 지내다가 1933년 8월 8일 대구공회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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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30일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 지방학림 소속 학생들이 대구광역시 중구 남문밖시장에서 전개한 만세독립운동. 1910년대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통치와 강압적인 토지조사사업의 실시에 독립을 열망을 키우고 있을 때, 국외에서 파리강화회의와 러시아 혁명 등의 영향이 한반도에 미치면서 2·8독립선언이 이어져 전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만세독립운동이 발생하였다. 불교중앙학림학교 교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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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26일부터 4월 28일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서 전개된 만세독립운동. 1910년대 일제의 폭압적 무단통치와 강압적 토지조사사업이 시행되는 가운데 독립에 대한 열망이 커져 가고, 국외에서는 파리강화회의와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받으면서 만세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인천채씨(仁川蔡氏)들은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당시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에서 동족부락을 형성해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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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활동한 의병부대. 산남의진은 중추원 의관 정환직(鄭煥直)[1843~1907]이 대한제국의 광무황제로부터 의병 봉기를 내용으로 한 밀지(密旨)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1862~1907]와 함께 경상북도 영천시를 중심으로 기병한 의병부대이다. 정용기는 아버지 정환직의 명을 받들어 영천에서 이한구(李韓久)·이지포(李芝圃)·제종제인 정순기(鄭純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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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에 일제가 추진한 식민지농업정책. 1910년대 식민농정으로서 토지조사사업이 실시되었다. 토지조사사업은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의 확립에 그 핵심이 있었다. 일제는 이에 기초해 농업·농민에 대한 계통적 지배체제를 수립해 나갔다. 곧 지주회의 조직, 면작조합, 잠업조합, 삼림조합의 설립이 그것이었고, 1920년대에는 모든 농업 단체를 통합해 원료가 되는 면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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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전민족적 항일운동으로 일어난 만세독립운동. 1910년 8월 29일 조선을 강제 병합한 뒤 일제는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민족동화정책을 기조로 한 식민지배정책을 폭압적으로 실행하였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기 이전부터 헌병경찰제도를 도입하여 무단통치를 시행하였다. 경제적으로는 토지조사사업은 농민의 토지 소유를 폭압적으로 소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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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에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 1914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뒤 반월산에서 지역 출신 정운해(鄭雲海)·최윤동(崔胤東)·최혁(崔赫)·엄주동(嚴柱東) 등의 청년들과 비밀리에 독립을 위한 새배달모듬(新倍達會)을 조직하였다. 새배달모듬 조직의 목적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고, 민족 사상을 고취하여 단결된 민족의 힘을 통하여 조국의 광복을 이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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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공원 내 기념비가 있는 이경희가 1923년 일제의 주요인물과 식민지 지배기구를 폭파하기 위해 벌인 사건. 의열단이 러시아 공산당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아 일제의 주요 인물의 암살과 건물 파괴를 단행하는 방법으로 조선의 독립을 꾀하는 과정에서 일명 ‘황옥 사건’이 발생하였다. 제2차 암살파괴계획이라고도 한다. 황옥사건에 관련된 이경희[1880~1949]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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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었던 초등교육기관. 1910년대 일제 식민교육정책 목표는 ‘우민화’교육이었다. 따라서 초등교육기관 설립 정책은 기본적으로 ‘6면 1교’로, 6개 면에 1개 공립학교를 설립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인들이 “신식교육을 배우려는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교육열’이라는 단어가 각종 신문지상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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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1월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에 사회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농원. 1910년 11월 30일 대구광역시 동구 검사동[당시 달성군 해안면 검사동]에 일본 오사카[大阪] 범애부식회(汎愛扶植會)의 창설자인 가지마[加島敏郞]가 주도하여 조선부식농원을 설립한 이래 1914년 6월 10일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조선부식농원은 이사 1명, 평의원 10명,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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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운동. 청년운동은 일제강점기 대중운동의 전위로 간주하며 전국적 대중으로 발전한 계층 운동이다. 일제강점기 대중운동에서 청년운동은 민족독립을 위한 새로운 이념의 수용과 전파의 주체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다. 3.1운동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청년운동 단체들은 근대문명의 수용과 전파를 위한 문화운동 기관임을 자임하였다. 19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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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이후 전시체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을 포함한 대구광역시 인근 경상북도 7개 군이 함께 만든 군사후원상납 조직. 칠군연맹[공식명칭 7군군사후원연맹]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계기로 동원체제를 강화하는 전시체제를 확립해 나가는 가운데 후방에서 전쟁후원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1937년 7월 관변단체들이 조선군사후원연맹을 결성한 이래 관주도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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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월 4일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면에서 결성된 농민운동 단체. 1921년 달성군 가창면[지금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의 농업협동회 결성을 계기로 1923년 3월 대구노동공제회의 농민대회를 거치면서 달성군내 각 면 즉 해안면을 비롯한 가창면, 성서면, 옥포면, 화원면, 논공면, 월배면 등 7개 면에서 소작인조합을 결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925년 1월 4일 해안면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