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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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The Origin of Saemidukbong Hyojacheon Wel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08년 9월 30일 - 「새미덕봉 효자천의 유래」 내곡동 주민 김재찬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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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새미덕봉 효자천의 유래」 『대구지명유래총람』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3년 - 「새미덕봉 효자천의 유래」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수록 |
관련 지명 | 「새미덕봉 효자천의 유래」 -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 |
채록지 | 「새미덕봉 효자천의 유래」 -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여대익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효행담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의 새미덕봉 효자천이라는 지명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대구지명유래총람』(대구광역시, 2009)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인터뷰(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 주민 김재찬, 남, 2008. 9. 30.)
[내용]
새미덕봉 효자천은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에 위치한 자연부락이다. 여대익(呂大翊)[1681~1742]은 아버지 여상제(呂尙齊)가 죽자 내곡동 산록에서 초례봉으로 가는 능선에 아버지의 산소를 마련하고, 시묘살이를 했다. 그런데 그 해는 날씨가 몹시 가물어 갈증을 해소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이 여대익의 효성에 감복을 했는지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 여대익은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여대익은 샘물 덕분에 3년간 시묘살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로 사람들이 그 샘물을 효자천이라 불렀다. 또 샘물 덕을 본 봉우리라는 의미에서 이 지역을 새미덕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새미덕봉 효자천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여대익의 효행담과 샘으로 생겨난 지명유래담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