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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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Folk Gam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경희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개설]
민속놀이는 옛날부터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여러 가지 놀이로서 향토색을 지니며, 전통적으로 해마다 행해지는 놀이를 말한다. 민속놀이는 민족 구성원의 정서를 자극시켜 대중적 흥취를 돋우고 공동적인 감흥 속에서 짜임새 있는 구조적 행동을 공동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상황 조성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민속놀이는 대부분 민족 문화의 전통적 양식과 규범에 따라서 행해지게 된다.
[윷놀이]
윷놀이는 사철 어느 때나 하지만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정월 한 달이다. 윷의 종류는 싸리윷, 장작윷, 밤윷이 있다. 윷놀이 방법은 소정의 윷판을 놓고 쌍방이 각각 윷을 던져 나온 결과대로 말 4개를 진행시켜 4개가 모두 최종점을 먼저 통과해야 이긴다. 말 하나가 출구를 나오면 ‘한동났다’고 하는데 4동이 나면 이긴다. 윷을 던져 나오는 수에 의하여 1년 신수를 점치는 것을 윷점이라 한다. 윷점 방법은 윷을 세 번 던져 나온 수를 가지고 미리 마련된 64괘에 맞춰 점을 친다. 윷을 던져 나온 수의 명칭은 도, 개, 걸, 윷, 모라고 부르는 것이 표준이지만 도를 토, 돼지라고, 윷을 숭, 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 말에 대한 확실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돼지[도], 개[개], 걸[양], 소[윷], 말[모] 등 가축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연날리기]
지방에 따라서는 섣달 중순부터 연날리기를 하는 곳도 있으나 대구[대구광역시]지방에서는 설날부터 보름 사이에 많이 했다. 연은 창호지나 백지와 대나무로 만든다. 연은 그 모양에 따라 반달연, 눈썹연, 치마연, 꼬리연, 솔개연, 흰연, 먹꼭지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만드는 방법은 대나무로 살을 만든 후 그 위에 종이를 발라 연을 만들고 살대에 실을 묶어 땅 위에서 조작했다. 연을 공중에 띄워야 하므로 바람을 가장 잘 탈 수 있게 가운데 뚫는 구멍과 연줄을 매는 위치에 솜씨를 부렸다. 연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색칠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점을 찍고 종이를 오려 붙이기도 한다. 또 종이로 꼬리를 달아 바람에 나부끼게 하는 수도 있으니 그 모양과 빛깔에 따라 이름이 결정되는 것이다. 연날리기는 요즘은 오락적인 요소뿐이지만 옛날에는 액을 띄워 보내는 민간신앙이 있었다. 연에다 생년월일시를 써서 하늘 높이 날린 다음 실을 끊으면 한없이 날아가는데 그때 연이 그 사람의 액을 모두 가지고 간다고 믿었다.
[널뛰기]
널뛰기는 설을 비롯하여 5월 단오, 8월 한가위 등 명절에 행해지며 부녀자들의 놀이이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 확실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속설은 옛 여인들이 항상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바깥세상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널뛰기를 창안하여 높이 올라갔을 때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지나가는 남자의 모습을 엿봤다고 한다. 한편 유구국(琉球國)[지금 일본 오키나와]에 판무희(板舞戱)라는 우리 널뛰기와 비슷한 놀이가 있고 우리나라와 유구는 사신이나 표류 등 서로 왕래가 빈번했으므로 이 둘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중엽 사이 특히 교류가 활발했으니만큼 우리 널뛰기가 유구에 전파되었으리란 추측도 가능하다.
[씨름]
씨름 은 남자들만의 스포츠 겸 오락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성행했다. 씨름은 5월 단오, 정월대보름,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7월 백중날, 8월 한가위, 9월 중양일 등 여러 명절날은 물론 농한기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졌다.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각저총을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에 이미 씨름 그림이 있는 걸로 미뤄 일찍부터 씨름 놀이가 있어온 것으로 보인다. 씨름을 하는 방법은 샅바를 매고 서로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를 잡아 쥔 다음 경기 시작 후 상대방의 복숭아뼈 이상 부분이 땅에 먼저 닿게 하면 이기는 것이다. 씨름은 바른 씨름[오른 씨름]과 왼씨름이 있으니 바른 씨름은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쥐고 왼손으로 상대방의 샅바를 잡는 것이다. 왼씨름은 반대방법으로 잡는 것을 말한다. 띠씨름은 허리에다 띠를 맨 후 그걸 잡고 하는 것이다.
[그네뛰기]
그네뛰기는 씨름과 더불어 대표적인 단오놀이이다. 그네뛰기는 여자들 사이에서 성행했으나 청소년들도 더러 했다. 굳센 체력, 고도의 긴장감, 기민성, 박진감을 기반으로 한 그네뛰기는 얌전하고 곱상하기만을 강요당하던 우리나라 여성들이 마음껏 젊음과 활동의 미를 구가하는 놀이라 할 수 있다. 그네뛰기는 그 놀이 성격으로 보아 북방 유목민 사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 문헌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북방민족은 한식날 그네뛰기를 하여 가볍고 날랜 몸가짐을 익혔다. 그 후 이것으로 중국 여자들이 배웠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가로질러 맨 다음 물감들인 줄을 매달고 선비와 부인들이 줄 위에 앉거나 서서 밀고 당기며 놀았다. 이 놀이를 추천(鞦韆)이라 한다.”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고려 고종 때 최충원이 가끔 궁전 뜰이나 자기 집 정원에서 추천놀이를 했다는 내용이 있다. 「한림별곡」에도 추천에 대한 노래가 있다.
[농악]
농악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지만 특히 영남 지방이 성했다. 농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상고시대 전쟁 때 진군악으로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으나 노동에 따른 노고를 위로하고 능률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농악은 풀뽑기나 모내기 등 일할 때만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 단오, 백중, 추석 등 명절 때도 행하여 풍장, 풍물두레, 매굿 또는 매기굿이라고도 부른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호적 등이었다. 농악대의 구성은 마을의 상징인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라고 먹으로 쓴 농기를 앞세우고, 그 뒤에 영기(令旗) 한 쌍, 춤추는 무동과 포수, 말뚝이 등 흥으로 돋우는 사람과 악기를 구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꽹과리를 치는 사람은 농악대의 지휘자가 되는데 이를 상쇠라 한다. 상쇠는 항상 대열의 선두에 서서 악대의 진형을 원형, 일렬종대 등 여러 형태로 변형시키며 악곡의 변화도 그에게 달렸다. 소고수(小鼓手)는 4~5명에서 10명에 이르며 역시 전립을 쓰고 그 꼭대기엔 긴 종이조각을 달아 손에 든 작은 북을 치며 머리를 흔들면 긴 종이끈이 멋지게 원을 그린다. 이것을 상모돌리기라고 한다. 농악은 농사일에 따른 피곤함을 달래고 능률을 높이는 구실을 하지만 명절에는 최고로 신명나는 농촌 오락이기도 하다.
[그림자놀이]
전기불이 없던 옛날에는 기름불이나 촛불로 밤을 밝혔다. 달빛보다 좀 더 밝은 불빛을 밝혀 놓고 손으로 갖가지 모양을 지어 벽에 비추어 보면 벽에는 손 모양에 따라 개, 토끼, 사람 등의 모습이 그럴싸하게 나타난다. 여러 가지로 손 모양을 바꾸어 불빛에 비추어 벽에다 그림자로 동물이나 사람형상을 나타내는 것을 그림자놀이라 한다. 종이나 나무막대기 등 소도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 밝지 않은 방안의 벽에 나타난 여러 가지 모양 그림자는 어린이들에게 환상의 나래를 달아 준다. 이것은 영화의 원시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인형극]
꼭두각시극 또는 박첨지극이라 불리는 인형극은 양반, 승려 등에 대한 야유가 깔려 있는 서민들의 놀이이다. 인형극은 대개 사월초파일에 행해졌다. 인형극의 기원은 주인공 격인 박첨지의 첨지(僉知)라는 관명(官名)으로 추측한다면 조선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성이 ‘박’, 꼭두각시의 ‘꼭두’ 등에 주목하면 기원이 좀 더 올라 갈 수도 있다. 즉 박은 표주박을 뜻하는데, 신라시대 원효가 만들었다는 무애희(無碍戱)를 그 기원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인형극 중 한 종류인 만석중놀이는 대개 사월초파일에 행해졌다. 사지가 움직이도록 되어 있는 인형, 즉 만석중과 사슴, 노루, 잉어, 용 따위가 등장한다. 별 내용 없이 다만 인형의 팔다리가 음악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동구 지역 민속놀이]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주민들의 전통시대 대표적 민속놀이들은 대부분 소멸되었다. 그렇지만 씨름, 농악 등은 그 명맥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대구광역시 지역은 씨름을 잘하기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지역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 일대에서도 씨름대회가 개최된 적이 있고, 1980년대 이전까지 동구민들이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가장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가 씨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동구청 주최로 씨름대회가 열렸으나 씨름의 인기가 수그러들고 프로 씨름마저 쇠락해지면서 2005년부터 열리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대구시동구생활체육협의회, 대구시씨름연합회, 동구청 등이 함께 2000년대 다시 ‘동구 씨름왕 선발대회’로 부활시켜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농악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일대에서 전승된 농업 노동요인 「공산농요(公山農謠)」가 계승, 발전되고 있다. 1990년 12월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공산농요는 현재 공산농요보존회가 만들어져, 공산농요를 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