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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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 |
영어공식명칭 | Confucianism |
이칭/별칭 | 성리학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의 유교와 유학자, 대표적인 유적.
[동구 지역 유교의 특성과 대표적 유학자]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교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중년에 팔공산 자락에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으로 이거(移居)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거한 것은 그의 외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이전인 문종 때에 문과에 합격하여 좌찬성을 역임한 정수충(鄭守忠)이 있었으나 그는 오랫동안 한양에 기거하였으며 대구지역의 학술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채응린은 부친의 묘소가 있는 내동(內洞)에 서재를 지었으며, 1561년(명종 16)에는 금호강변에 압로정(狎鷺亭)과 소유정(小有亭)을 짓고 강학하였다. 이로 인하여 많은 후학이 양성되었다. 그는 연경서원을 창건한 전경창(全慶昌)과는 우인으로 퇴계학을 전수받았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학에 영향을 끼친 분으로는 명종 때에 병조참판을 역임한 괘편당(掛鞭堂) 이영(李榮)이다. 이영은 유학(儒學)을 공부하였으나 무과에 합격하여 병조참판에 올랐는데, 청백리로 칭송을 받았다. 그는 두 아들이 있었으나 손자가 없어 후사가 끊어지게 되었다. 채응린은 그의 외손이며, 곽재겸은 그의 손서(孫壻)로 이영의 봉사(奉祀)를 위해 현풍의 솔례에서 대구의 해안(解顔)으로 이거하였다. 연정(蓮亭) 유요신(柳堯臣) 또한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학에 기여한 바가 컸는데 그는 곽재겸과 함께 연경서원에서 통강(通講)을 실시함으로써 대구 유학의 르네상스기를 여는 데 기여하였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6세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는 채응린(蔡應麟), 이수천(李壽千), 곽재겸(郭再謙), 유요신(柳堯臣), 채선각(蔡先覺), 배극념(裵克念) 등이다. 17세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는 최인(崔認), 최동보(崔東輔), 이사경(李士慶), 최응담(崔應談), 서시립(徐時立), 황경림(黃慶霖), 최계(崔誡), 유시번(柳時藩), 채선길(蔡先吉), 배경가(裵褧可), 유사온(柳思溫), 채선견(蔡先見), 곽용(郭涌), 최동립(崔東岦), 최동률(崔東嵂), 최동집(崔東㠍), 곽후창(郭後昌), 이휴운(李休運), 최동직(崔東직), 최위남(崔衛南), 이석번(李碩蕃), 이석필(李碩苾), 최진남(崔鎭南) 등이다. 18세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는 손홍주(孫弘冑), 손초박(孫楚璞), 최경식(崔慶湜), 남명신(南命新), 최흥원(崔興遠). 최주진(崔周鎭), 곽원택(郭元澤), 남석로(南碩老), 최항진(崔恒鎭) 등이다. 19세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는 최화진(崔華鎭), 채필훈(蔡必勳), 최식(崔湜), 최효술(崔孝述), 최상룡(崔相龍), 여사백(呂師伯) 등이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는 서영곤(徐永坤), 구연우(具然雨), 최정한(崔廷翰), 채귀해(蔡龜海), 우효설(禹孝卨), 채헌식(蔡憲植), 구태서(具泰書), 채황원(蔡晃源) 등이다.
[대구 동구 지역 서원]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서원으로는 연경서원, 유호서원, 백원서원, 청백서원, 동산서원이 있었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다. 연경서원은 1563년(명종 18)에 창건되었으며 대구 최초의 서원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한강(寒岡) 정구(鄭逑),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를 봉안하였다. 1635년(인조 13)에 향현사(鄕賢祠)를 건립하여 서원 창건에 공헌한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매암(梅巖) 이숙량(李叔樑)[1519~1592]을 봉안하였다. 연경서원은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는데 2011년부터 복원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유호서원(柳湖書院)은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518번지 불로고분공원 남쪽에 있었다. 1784년(정조 8)에 곽재겸이 거주한 서재에 건립하였는데, 이곳은 병조참판 이영(李榮)의 옛집이다.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과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1547~1615]을 봉안하였다. 서원의 명칭은 유계(柳溪)와 금호(琴湖)의 두 글자를 취하여 유호(柳湖)라 하였는데, 백불암 최흥원이 명명하였다. 유호서원은 고종 때 훼철되었다.
백원서원(百源書院)은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478번지에 있다. 1693년(숙종 18)에 백안동에 건립하여 효자 전귀당 서시립(徐時立)[1566~1628]을 봉안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는데 1991년에 현재의 위치인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으로 이건 복원하였다. 서원의 이름은 ‘효백행지원(孝百行之源)’에서 취한 것으로 서시립이 대구광역시 동구 백안동에 건립한 전귀당(全歸堂)이 그 모태이다.
청백서원(淸白書院)은 대구광역시 동구 백안동에 있었다. 1729년(영조 5)에 청백사(淸白祠)를 건립하여 청백리 병조참판 이영(李榮)[1494~1563]을 봉안하였다. 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좌찬성 정수충(鄭守忠)[1401~1469]을 추배(追配)하였으나 고종 때 훼철되었다. 동천서원(東川書院)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옻골]에 있었다. 1820년(순조 20)에 건립되어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을 봉안하였으나 고종 때 훼철되었다.
[대구 동구 지역 사당 ]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사당으로는 표충사, 문창공 영당, 삼충사, 오암사가 있고, 망우공원 내에 임란호국영남충의단이 있다. 표충사(表忠祠)는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데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 장군을 봉안하였다. 문창공 영당(文昌公影堂)은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있는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삼충사(三忠祠)는 지묘동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경주최씨 3숙질(叔姪)을 봉안하였다. 한천(寒泉) 최인(崔認)[1599~ ? ], 태동(台東) 최계(崔誡)[1567~1622], 우락재(憂樂齋) 최동보(崔東輔)[1560~1625]로 최씨삼충(崔氏三忠)이라고 한다. 오암사(梧岩祠)는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있는데 연정(蓮亭) 유요신(柳堯臣)[1550~1618]을 봉안하였다. 임란호국영남충의단(壬亂護國嶺南忠義壇)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공원 내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의병들의 위폐를 봉안하고 제향을 드린다.
[대구 동구 지역 서당, 정사, 당]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당(堂), 서당(書堂), 정사(精舍)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의 구회당(九會堂)[경주최씨], 둔산동[옻골]의 보본당(報本堂)[경주최씨], 봉무동의 경지당(敬止堂)[경주최씨], 봉무동[단산]의 친목당(親睦堂)[성주배씨], 부동의 친목당(親睦堂)[성산여씨], 사복동의 오우당(五友堂)[월성이씨], 평광동의 첨백당(瞻栢堂)[단양우씨], 효목동의 경현당(景賢堂)[대명동 14賢], 미대동의 성재서당(盛才書堂)[인천채씨], 봉무동의 독암서당(獨岩書堂)[경주최씨], 용수동의 농연서당(聾淵書堂)[경주최씨], 동내동의 동호서당(東湖書堂)[장수황씨], 내동의 야산정사(冶山精舍)[인천채씨], 지묘동의 대곡정사(大谷精舍)[인천채씨] 등이 있다.
[대구 동구 지역 정자]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정자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의 모의정(慕義亭)[김해김씨], 도동의 구로정(九老亭)[향산구로], 둔산동[옻골]의 동계정(東溪亭)[경주최씨], 봉무동의 봉무정(鳳舞亭)[경주최씨], 송정동의 서벽정(棲碧亭)[경주이씨], 신용동의 계남정(桂南亭)[교하노씨], 중대동의 동산정(東山亭)[행주은씨], 애산정(愛山亭)[옥천전씨], 지묘동의 다천정(茶川亭)[경주최씨], 요수정(樂水亭)[인천채씨], 평광동의 경희정(景喜亭)[단양우씨], 서남정(棲南亭)[경주김씨], 와룡정(臥龍亭)[단양우씨] 등이 있다. 그리고 누각으로는 아양루(峨洋樓)가 있다.
[대구 동구 지역 재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재실로는 내곡동의 심락재(尋樂齋)[달성서씨], 내동의 광사재(廣思齋)[문화유씨], 시사재(時思齋)[현풍곽씨], 충무재(忠武齋)[문화유씨], 도동의 경운재(景雲齋)[경주최씨], 추보재(追報齋)[일직손씨], 동내동의 녹봉재(鹿峰齋)[단양우씨], 승방재(勝芳齋)[장수황씨], 영사재(永思齋)[장수황씨], 둔산동의 모원재(慕源齋)[남양홍씨], 첨송재(瞻松齋)[인천채씨], 추모재(追慕齋)[옥산전씨], 미대동의 추원재(追遠齋)[인천채씨], 부동의 귀후재(歸厚齋)[곡강최씨], 월천재(月川齋)[문화유씨], 백안동의 영안재(永安齋)[김해김씨], 송정동의 영모재(永慕齋)[경주이씨], 원감재(遠感齋)[경주이씨], 숙천동의 오산재(烏山齋)[성주배씨], 원모재(遠慕齋)[달성서씨], 신서동의 이리재(二履齋)[문화유씨], 용계동의 이로재(履露齋)[성주이씨], 지묘동의 대곡재(大谷齋)[인천채씨], 영모재(永慕齋)[경주최씨], 원모재(遠慕齋)[경주최씨], 첨모재(瞻慕齋)[경주최씨], 첨모재(瞻慕齋)[달성서씨], 평광동의 도암재(島岩齋)[단양우씨], 모영재(慕影齋)[평산신씨], 유강재(濡降齋)[경주최씨], 직지재(直止齋)[경주최씨] 등이 있다.
[대구 동구 지역 정려각]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 정려각(旌閭閣)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덕곡동[덕산리]에 우원도 효행각(禹元度 孝行閣), 동내동에 배이인 충효각(裵爾仁 忠孝閣), 둔산동에 남명신, 남이간 정효각(南命新 南履幹 旌孝閣), 둔산동[옻골]에 백불암 최흥원 정려각(百弗庵 崔興遠 旌閭閣), 부동에 영양남씨 표열각(英陽南氏 表烈閣), 지묘동에 배석유 효충각(裵錫裕 孝忠閣), 평광동에 효자 강순항 정려각(孝子 姜順恒 旌閭閣)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