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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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把溪寺王室願堂關聯古文書一括 |
영어공식명칭 | Bundle of Ancient Documents Related to Wondang House of the Royal of Pagyesa Temple, Daegu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소진 |
발급 시기/일시 | 1712년 -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 「완문」 발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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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 시기/일시 | 1727년 -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 「원당시초영건기」 발급 |
발급 시기/일시 | 1732년 -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 「어의궁완문」 발급 |
발급 시기/일시 | 1843년 -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 「예조절목」발급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5년 5월 11일 -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대구동구: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소장처 |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 소장처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
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이의현 |
발급자 | 왕실|종친 |
문화재 지정 번호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제작 발급 경위]
파계사는 804년(애장왕 5)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고, 1605년부터 1646년에 걸쳐 임진왜란으로 불탄 절을 계관법사가 중창하였으며, 숙종 연간에 승려 현응이 삼창하였다. 1696년(숙종 22)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책을 내려주어 파계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고, 이후 여러 차례 내려진 완문 등이 남아있어, 파계사와 왕실이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은 10종 10점으로 필사본과 탁본으로 구성되었으며, 규격은 문서의 양식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구성/내용]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문서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712년 「완문(完文)」은 종친부(宗親府)에서 왕자군(王子君)의 원당(願堂)을 수호하고자 파계사에 내린 문서이다. 둘째, 「원당시초영건기(願堂始初營建記)」는 파계사에 원당을 설립하게 된 경위를 1727년 당시 우의정인 이의현(李宜顯)이 기록하였다. 셋째, 「어의궁완문(於義宮完文)」은 1732년 파계사를 어의궁(於義宮)에 소속시키고, 6조목(條目)을 같이 적고 있다. 「예조절목(禮曹節目)」은 어의궁 소속 사찰이며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의 원당인 파계사를 수호하고자 예조가 1843년 절목 8조를 정하여 다시 작성한 문서이다.
[의의와 평가]
대구 파계사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일괄은 파계사가 조선후기 조선 왕실의 원당으로 잡리잡아 가는 과정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들로 2015년 5월 11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