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1418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집필자 박주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6년 12월 12일연표보기 -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개장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 149[신천동 1506]지도보기

[정의]

사람이나 물자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교통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대구광역시에 있는 대표적 지방 자치구.

[길 위에서]

드라마나 영화의 주요 장면은 유독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촬영하는 일이 잦다. 사람들이 만나고 떠나며 오가는 장면을 담아내기에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점에서 인생은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이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길을 찾는 까닭입니다.”라고 표현하며 인생 한 부분을 잃었음을 토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또 다른 시인 이성복은 “길은 인간과 자연의 대화”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길은 이처럼 자연의 모든 곳, 땅에서도, 물에서도, 하늘에서도 펼쳐져 있어 우리가 이동할 수 있게 한다. 조금이라도 멀리,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가려는 인간의 욕망은 교통이라는 흐름을 형성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형은 조금씩 본래 모양을 변형하면서까지 인간에게 길을 내주었다. 그중에서 대구광역시는 도로 정비가 일찌감치 완비되었는데, 분지 지형이지만 외부로 나가는 통로는 사통팔달로 뚫려있다. 특히 대구광역시 동구의 경우 동대구나들목, 팔공산나들목 등 고속도로 나들목 두 곳과 대구국제공항,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 등을 갖추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로 불린다. 교통수단이 이처럼 밀집해 있어 장거리 이동의 출발도 도착도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가장 편리하게 이루어진다. 드나듦이 쉬운 동구가 다른 지역으로 뻗어가는 핵심장소였던 것은 근대화 이전부터이다. 숱한 전투가 대구를 목전에 두고 이루어졌던 점과 대구가 전략지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름난 장수들이 특별히 대구를 아꼈던 연원은 신라(新羅)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하대, 장보고가 왕을 치러가던 길목의 대구 동구]

대구광역시는 바다를 품고 있지 않지만,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과 금호강 덕분에 수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에 착안한 신라 신문왕(神文王)은 천년 신라 역사상 유일한 천도(遷都) 계획을 달구벌[현재 대구광역시]로 세우기도 했다. 초기 철기시대 이후로 소국(小國) 수준 정치체제가 들어섰던 대구가 신라의 수도로 등극해야 할 근거는 충분했다. 먼저, 가야를 정복할 당시 실감했듯 대구는 군사적으로 요새에 해당한다. 사방이 산으로 막힌 분지인 대구는 군사작전상 진을 치기에 알맞은 것이다.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대구를 전장으로 삼아본 신문왕은 이곳이 중요한 거점임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게다가 교통 방면을 보아도 남쪽으로 뻗어가거나 중부로 올라가기에 가장 효과적인 입지다. 두 강 덕분에 경주로의 수로교통 또한 편리했으므로 통일신라의 왕으로서 정치적 이유 외에도 충분히 탐낼 만한 땅이었다. 비록 기득권인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긴 했으나 이 해프닝으로 인해 대구의 중요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신라본기 신문왕 9년 기록에 따르면 “왕욕이도달구벌 미과(王欲移都達句伐 未果)”라는 아홉 글자로 신문왕이 달구벌로 수도를 옮기고자 했으나 결과를 내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대구의 존재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신라 말 해상왕 장보고(張保臯)는 김우징(金祐徵)의 반란을 돕기 위해 경주로 가던 도중 민애왕(閔哀王)의 군사와 맞닥뜨리니 그 장소가 바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이었다. 민애왕으로서는 분지인 달구벌이 경주로 오지 못하게 막아설 수 있는 최선의 방비벽이었을 것이고 장보고로서는 대구야말로 경주로 입성하기 위한 최적의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장보고가 이끄는 청해진의 오천 명 군사들과 왕이 보낸 신라 중앙군 십만 명은 대구를 무대로 한바탕 격전을 벌였으나 달구벌은 장보고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대구전투 결과 장보고의 부대는 신라군을 격파했고 김우징은 신무왕(神武王)으로 등극한다. 여러 지방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에 대구가 놓여 있었기에 신라의 무게중심으로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담당했음을 볼 수 있다.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 후삼국 통일의 주역이 되기 위해 맞붙은 곳 동구 지묘동]

대구가 요충지인 것은 후삼국이 패권(覇權) 다툼을 하던 무렵에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왕건(王建)견훤(甄萱)이 명승부를 벌인 곳도 대구였기 때문이다. 견훤은 호남에서 세력을 확장해 경상도 일대까지 그 기세를 떨치자, 위기를 느낀 신라 경애왕(景哀王)은 왕건에게 도움을 청해 그 위기를 해결하려 하였고, 두 호걸의 대결은 대구 팔공산 동화사 일대에서 벌어졌다. 북녘 땅 개성에서부터 내려온 왕건의 세력은 충주, 상주, 칠곡을 통과해 지금으로 치면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타는 형태로 대구에 당도했다. 왕건이 이끈 1만 명의 군사는 기세등등한 견훤 군사와 힘겨운 싸움을 벌였는데 그 장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일대에 남아 있다.

대구는 왕건이 지나간 길을 올레길로 조성하는 등 천 년 전 역사현장으로 과거 여행할 수 있는 통로도 마련해두었다. 이곳에 세워진 아파트가 지금도 왕산타운으로 불리는 것 또한 왕건이 다녀간 시절을 기억하는 명칭이다. 왕건의 군대가 부서졌다 하여 파군이라 불리는 지명이 지금도 파군재삼거리가 되어 존재하며, 왕건의 옷으로 갈아입고 대신 죽은 신숭겸(申崇謙)의 동상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동구 지묘동신숭겸장군 유적은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돼 있다. 공산전투가 벌어진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는 고려 입장에서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요충지였고, 후백제 입장에서도 기필코 차지해야 하는 길목이었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요충지였던 동구 팔공산]

해마다 시월이면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용암산성에서는 옥천문화제를 거행한다. 조선 최대 사건인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의병들을 기리는 행사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운명을 달리한 의병들은 대구를 지키는 것이 곧 조선을 지키는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왜군의 주요 군사들이 북쪽으로 내달릴 때나 남쪽으로 퇴각할 때 반드시 대구를 거친 것을 보면 대구가 주요 교통로였음이 입증된다. 이 때문에 조선 관군과 대구 지역의 의병들[공산의진군]은 낙동강과 금호강을 방어선 삼아 향토를 지켜냈다.

임진왜란 당시 팔공산은 일본군의 주요 진격로였다. 부산에서 한성[지금 서울특별시]으로 보급로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은 전쟁 초기부터 대구 지역을 전략적으로 침공했다. 임진왜란 초기에 대구가 함락되었기에 대구에서 일어난 의병과 군민들은 팔공산을 항전 기지로 삼아 일본에 맞섰다. 또한 이곳은 인근 지역인 영천과 경주를 수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기능도 담당했다. 사명대사이 동화사를 거점으로 삼아 승군을 지휘한 일화는 지금도 생생히 내려오고 있다.

[대한민국, 동대구역으로 본 변화무쌍 성장기]

일제강점기 일본은 포항을 통해 물자를 옮기기 위해 지금의 동촌아양교를 건너 대구 중심부로 진입하는 경로를 이용했다. 대구는 다른 도시에 비해 도로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인데 이렇게 잘 설계된 이유 또한 일제강점기의 측량 결과를 토대로 일찌감치 도로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물러간 해방 이후 대구 동구는 덩그러니 큰 도로만을 지닌 채 휑한 풍경이었다. 이후 대구 동구의 발전은 동대구역세권의 개발과 흐름을 같이 한다. 1969년 문을 연 동대구역은 아직 침체된 상태였으며 역세권에 해당하는 신암동, 신천동, 효목동은 오랫동안 미개발지역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일순간 동구를 대구의 랜드마크로 부상시킨 것은 바로 광역복합환승센터의 건립이다. 분산되어 있던 대구의 대중교통시설을 하나의 역사에 통합하면서 교통의 중심지이자 지역의 중심지로 우뚝 섰다. 전국에서 가장 활성화된 동대구역에 교통 허브 기능을 탑재하고자 한 계획은 성공리에 실행됐다. 2015년 발표된 『철도통계연보』에 의하면 동대구역은 전국 열차역 가운데 승객 수가 서울역에 이어 2위로 천구백만 명을 넘어서는 수치였다. 또한 열차 정차 횟수는 전국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경부선, 경북선, 중앙선, 동해선, 경전선, 영동선까지 취급되어 열차 편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하루 중 많게는 4분에 한 대꼴로 기차가 운영되어 지하철 배차 간격에 맞먹을 정도이다.

철도와 고속버스와 지하철이 한곳에서 출발하며 바로 인근에 대구공항까지 갖춘 동구는 충분한 교통인프라를 통해 명실상부한 대구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는 전국 각지로 오가는 승객들과 화물이 거쳐 가므로 교통시설의 대명사가 되었고, 같은 건물에 들어선 신세계백화점 덕분에 동대구복합환승센터는 단순한 교통 시설의 기능을 뛰어넘어 쇼핑명소로도 손꼽히고 있다. 또한 유동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어 동대구역 주변 도로도 확장 개통되었는데 고가교만 해도 왕복 10차로 구간으로 넉넉히 확보해둔 상태다. 이로써 동대구역은 60년대 말 처음 생길 때의 역할인 대구역 보조 기능을 넘어서 아름답고 역동적인 역으로 대구 주민들의 자랑이 되었다. 이러한 교통종합터미널은 대구 동구의 성장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및 도시철도,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모두 외부로 나가지 않고 한 공간에서 환승할 수 있는 센터가 개장되어 교통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로써 교통의 요지가 확충되는 것이 동구 주민 삶의 질 또한 높여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대중교통수단과 문화공간이 한곳에 모여 있는 동대구복합환승센터는 어딘가로 가야 하는 장소인 동시에 그저 가고 싶은 장소로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대구 동구 교통의 현재와 미래]

대구국제공항의 이름은 당초 ‘대구·경주국제공항’으로 지어질 뻔했다. 국제적 관광도시인 경주로 가기 위해 대구국제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가깝고 편리한 일이기에, 명칭을 통해 경주 인근 공항임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는 당시 문희갑 대구시장이 김대중 대통령께 보고드릴 정도로 내부적으로는 그 필요성에 공감한 사안이었다. 공항 이름이 변경되는 일은 결국 무산되었으나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대구국제공항이 한반도 동남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대구국제공항은 연간 300만 명 항공 여객을 달성하는 등 전국의 몇 안 되는 흑자경영 공항으로 이름나 있다. 1961년 4월에 문을 연 대구공항은 1996년 일본 오사카로 가는 국제선이 개설되면서 국제공항으로 거듭났다. KTX 개통 이후 국내선 승객 수가 현격히 줄어들어 고심한 대구국제공항은 인천국제공항 환승과 제주국제공항 관광 특수로 명맥을 이어오다 저가 항공사 유치에 주력한 결과 2014년부터 급성장했다. 2016년에는 개항 55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으며 2017년부터 국제노선을 15개 노선으로 다변화시켰다. 이로써 대구공항은 지역민의 해외여행을 편리하게 해주면서도 외국인 관광객의 유치를 수월하게 이끄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대구의 하늘길에 국토부 항공교통본부가 신설된다. 항공기의 증가로 인해 컨트롤 타워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대두되는데 그 적지로 대구가 꼽힌 것이다. 국내 항공교통은 앞으로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총괄 조정하게 될 예정이며 재난·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며 사회 환경이 잘 갖추어진 점이 입지 선정에 힘을 실어줬다.

대구광역시 동구는 한결 편리해진 교통망을 바탕으로 소외되는 지역이 없도록 인근 지역으로의 연결고리를 더욱 촘촘히 이어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대구광역시 동구를 관통하는 대구도시철도 1호선이 동구 끝과 맞닿아 있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지역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현재 1호선 종점인 안심역에서 하양읍까지는 8㎞ 남짓이어서 2021년 12월 개통할 계획이다. 이 구간을 통해 혁신도시 직원 및 인근 대학생들의 발길이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구광역시에 개설돼 있는 3개 노선의 기존 지하철과 별도로 광역철도가 2020년경 개통될 예정이다. 이는 대구광역시와 인접한 구미시에서 동대구역을 거쳐 경산까지 뻗어갈 것으로 알려져 지하철만으로도 이동이 가능한 수도권의 모델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간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는 지리산에 가로막혀 동서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에 광주와 대구는 함께 영호남을 잇는 고속선을 추진하게 되었고 광주-대구 간 KTX가 달빛내륙철도라는 이름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광주역에서 동대구역까지 191㎞ 거리를 한 시간대에 갈 수 있는 이번 철도계획은 국비를 통해 2025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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