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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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堂感興 |
영어공식명칭 | Feel at seod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86년 - 「서당감흥」최상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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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49년 - 「서당감흥」최상룡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96년 - 「서당감흥」간행 |
배경 지역 | 「서당감흥」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
성격 | 한시|근체시|칠언율시 |
작가 | 최상룡 |
[정의]
조선 후기 학자인 최상룡이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있는 독암서당에서 소회를 읊은 한시.
[개설]
최상룡(崔象龍)[1786~1849]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다. 자는 덕용(德容), 호는 봉촌(鳳村)이다. 최상룡은 달성(達城)의 강동(江洞)[현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출생했다. 최상룡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했다. 세상이 어지러워 분경(奔競)[엽관운동]이 심해짐을 보고 향리로 돌아와 독암서당(讀巖書堂)을 지어 후진을 가르치니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문전을 메웠다. 당시 대학자인 홍직필(洪直弼)·유치명(柳致明)·김익동(金翊東) 등과 경전과 예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경전(經典)의 주요 내용을 도시(圖示)[그림이나 도표 따위로 그려 보임]하여 맥락을 분명하게 가르쳤다. 성리학과 훈고학을 깊이 연구해 「사서변의(四書辨疑)」·「재이록(在邇錄)」·「소학췌의(小學贅疑)」·「계몽차의(啓蒙箚疑)」·「정주서변의(程朱書辨疑)」 등 많은 논문을 남겼다. 저서로는 『봉촌문집(鳳村文集)』 22권이 있다.
[구성]
「서당감흥(書堂感興)」은 8행으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최상룡의 문집 『봉촌선생문집(鳳村先生文集)』 1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서당감흥」의 전문이다.
세사림간총불관(世事林間摠不關)[세상 일은 자연 속에 있으니 아무런 관심 없고]/청재종일자이안(淸齋終日自怡顔)[온 종일 깨끗이 재계하니 절로 즐겁구나]/
원산우후간우호(遠山雨後看尤好)[비 온 뒤 먼 산은 더욱 보기 좋고]/제조춘래청배한(啼鳥春來聽倍閒)[봄의 새소리 들으니 더욱 한가롭구나]/
풍타향표화체거(風打香飄花砌去)[바람 불어 꽃향기가 섬돌에 날아가고]/연함니과녀장환(鷰銜泥過女牆還)[제비는 미끄러지듯 여장(女牆)으로 돌아가네]/
유경독파소요구(遺經讀罷逍遙久)[남은 서적 다 읽고 오랫동안 소요하니]/의사유연험일반(意思悠然驗一般)[유유한 생각이 생각처럼 징험되네]
[특징]
「서당감흥」은 1·2·4·6·8구(句)에 산(刪) 계열의 운자를 두었다. 의식의 흐름을 구조적으로 잘 드러내었고, 당시풍(唐詩風)[당나라 시풍]의 색채가 짙다.
[의의와 평가]
「서당감흥」은 최상룡이 지향하는 은거안일(隱居安逸)하는 삶의 즐거움을 회화적 이미지로 잘 표현해내었다. 수련(首聯)과 미련(尾聯)에 자신의 소회를 표출하고,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에 경치를 묘사하여 시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