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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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The Origin of Donjibong Pea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관련 지명 | 「돈지봉의 유래」 -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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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왕건|이여송|일본 경찰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에 있는 돈지봉의 유래와 지명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돈지봉은 용계동에 위치한 산세가 비교적 완만한 산으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영천시를 연결하는 국도로부터 북쪽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돈지봉의 원래 이름은 조리봉이다.
[채록/수집 상황]
김종대, 『우리고장 대구(지명유래)』(대구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내용]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에 위치한 이 산이 처음 생겼을 때는 산세가 기묘하고 수려했다고 한다. 뒷날 천지개벽이 일어나 산의 모양이 바뀌고 규모도 작아졌는데, 남은 산의 모양이 쌀을 이는 조리만큼 남게 되어 이 산을 조리봉이라고 불렀다.
돈지봉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전하고 있다. 첫째,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돈지봉의 산세를 보고 이 지역에서 큰 인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여 남북의 줄기를 모두 잘라 산의 맥이 끊겼다고 한다. 둘째, 구자선(具滋善)[1922~2003]의 『신은유고(新隱遺稿)』에는 ‘고려의 태조가 동수전투에서 패배하여 도주할 때 매여동[梅谷]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와 이 봉우리에 이르러 숨었다가 금호강을 건너 앞산으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태조가 숨은 곳이라고 돈지봉이라고 하고, 태조로 인하여 새로운 세상 즉 새덕[新德]을 얻었다고 신덕이라고 하였다.’고 했다. 한편, 일제강점기 때 일본 경찰이 돈지봉의 산봉우리에 쇠말뚝을 박아 산의 정기를 끊었으며, 이후로부터 마을이 가난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모티프 분석]
「돈지봉의 유래」는 공산전투 및 산의 형세와 관련된 지명 유래담,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일제강점기 때 일본 경찰이 산의 맥을 끊은 단맥(斷脈)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