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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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A Tale of Manggokbong Peak at Neungcheonsan Mounta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관련 지명 | 「능천산 망곡봉 이야기」 -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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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여대익|여상제|숙종|경종|영조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효행담|충성심담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에 위치한 능천산의 효천과 망곡봉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김종대, 『우리고장 대구(지명유래)』(대구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내용]
능천산(綾泉山)에는 조선 숙종 및 영조 연간에 살았던 여대익(呂大翊)[1681~1742]이 효와 충을 실천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 경종 때 여대익은 능천산 인근에 살았다. 여대익은 아버지[여상제(呂尙齊)]가 병환이 나자 의복을 벗지 않고 숙식을 같이하며 돌보았다. 또한 아버지 대변을 맛보고 아버지 병환의 정도를 파악했을 뿐아니라 지혈을 해 부친의 생명을 구하고자 노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능천산에 묘소를 정하여 시묘살이를 했다. 어느 해 가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물을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여대익의 정성에 감복한 산신령이 나타나 샘터를 알려주었다. 샘터에서 두 자[약 60㎝]도 채 파기 전에 물이 솟아났다. 후세 사람들이 이 샘을 효천(孝泉)이라고 불렀다.
여대익은 충성심도 대단했다. 조선 숙종(肅宗)[1661~1720]이 승하하자 능천산에 망곡단(望哭壇)을 쌓고 슬피 울며 세월을 보냈다. 숙종 시묘살이가 채 끝나기도 전에 경종(景宗)[1688~1724]이 승하했다는 비보를 듣고 또 산을 내려오지 않았다. 고을 사람들이 그곳에 집을 지어드렸으나 끝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여대익의 묘 옆에 그 때 지은 집이 있었는데, 여대익의 호를 따 영모제(永慕齊)라고 불렀다. 그 후 영조(英祖)[1694~1776]는 여대익에게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曾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라는 관직을 내렸다. 능천산에 망곡단을 쌓았던 봉우리는 원래 이름이 벌바위였는데, 여대익이 지은 망곡단에서 이름을 따 망곡봉(望哭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능천산 망곡봉 이야기」는 여대익의 효행과 충성심을 주요 모티프로 하고 있으며, 효천(孝泉)과 망곡봉(望哭峰)의 유래담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