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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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生儀禮 |
영어공식명칭 | Lifetime Ritual |
이칭/별칭 | 통과의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경희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한 개인이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거행하는 의례.
[개설]
평생의례 는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겪게 되는 의례를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은 공통적으로 또한 순차적으로 몇 개 중요한 단계를 거치면서 완성된다. 이때 의례를 통하여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대표적 의례가 출생의례, 혼례, 상례, 장례 등이다. 이 때문에 평생의례는 통과의례(通過儀禮), 일생의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1969년 「가정의례 준칙에 관한 법률」, 1973년에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부터 2008년에는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일생 의례가 표준화되고 제도화되었다. 또한 혼례, 상례, 제례, 회갑연에서 벌어지는 사치와 낭비를 금지하고 간소화를 지향하였다. 그렇지만 일생의례가 제도화되면서 각 지역과 가정이 갖고 있는 일생의례 문화가 획일화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출생의례]
아이 낳기를 기원하는 행위인 치성, 삼신받기 등과 같은 출생의례는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1950~196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어지는 바위나, 냇가, 나무 등에 가서 아이의 점지를 바랐다는 이야기는 경험담으로만 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 주술적인 행위의 하나로 작은 도끼를 만들어 몸에 지녔다거나 아이 낳기를 바라는 여자가 마을에 새로 들여온 상여를 탔다는 이야기 또는 강을 건너는 나룻배를 새벽에 처음 타면 된다는 이야기 속에서 속신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혼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혼사[혼례]는 집안 어른들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또한 혼인을 위해서는 집안 어른들의 의사 결정뿐 아니라 중신아비라는 중간자의 역할도 컸다. 혼인할 상대의 나이나 품성, 집의 내력이나 가문 등을 살피고, 혼담을 주고받는 과정을 ‘의혼’이라 한다. 혼인이 성사되기까지 두 집안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중신아비는 혼주의 친척이나 면식이 있던 사람이 맡아서 한다. 의혼 과정에서 혼사가 결정되면 신랑 쪽에서 사성을 보낸다. 혼인날이 정해지면 신랑 측에서는 혼례 전날 혹은 그 전에 미리 좋은 날을 택해 신부 쪽으로 예물을 보내게 된다. ‘상답’이라 하여 신부가 시댁으로 시집와서 필요한 기본적인 옷가지며 가구 등 일체를 마련해 보내기도 한다.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경주최씨 종가에서는 함과 함께 넣어 보내는 혼서지를 신랑이 직접 작성했다.
대례는 신부집 마당에서 치러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신랑은 처갓집이 멀 경우 혼례 하루 전날 상객과 함께 미리 와서 신부집 근처에 마련된 정방이란 곳에 머무른다. 이후 신랑은 혼례를 도와주는 안내인의 지시에 따라 전안례에서부터 교배례, 합근례의 순서로 혼례식을 치르게 된다. 대례를 마치고 밤이 되면 신부집 안방에 차려진 신방에서 신랑과 신부는 초야를 보내고, 다음 날 신랑의 본가로 함께 간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는 대부분 ‘해묵이’, ‘달묵이’라고 해서 신랑만 본가로 떠나고 신부는 친정에서 해를 넘기거나 몇 달 머무른 뒤 좋은 날을 받아 신랑과는 따로 신행을 떠났다.
신행을 떠나 시댁에 도착한 신부는 시댁 대문을 들어서기 전에 마당에 놓인 불을 붙인 짚단을 넘어 들어오게 된다. 이때 짚단을 신부가 넘기도 하고, 신부의 가마를 메고 온 가마꾼이 넘기도 한다. 신랑은 혼례를 치르고 본가로 돌아온 후 며칠 이내에 다시 처가를 방문하게 된다. 이를 재행이라고 한다. 혼례와 관련한 차례 물품이나 옷, 목안 등은 마을 공동 단위 혹은 문중 단위로 갖추고 있다가 개인에게 세를 받고 빌려준다.
[제례]
차례는 설과 추석 명절에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차사(茶祀)라고도 한다.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경주최씨 종가의 경우 종원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먼저 지차의 집에서 모신 후 나중에 종가에서 모여 차례를 모신다. 차례에 올리는 제물로 설에는 떡국만 올리는 집안이 많았다. 추석에는 집안에 따라 반과 갱, 송편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송편 대신 다른 떡[감떡]만 올려서 차례를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기제사는 대부분이 조상의 휘일(諱日)에 지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간을 앞으로 당기는 경우도 있어서 살아계셨던 날에 지내는 경우도 있다. 기제사에 올리는 제물의 종류와 진설방법은 집안마다 각자의 전통에 따라 다르다. 대구광역시 동구에서는 반과 갱을 올릴 때 좌반(佐飯)으로 나물과 조기를 올린다. 고위와 비위를 합설할 때에도 반과 갱, 나물, 조기, 술잔 등은 2벌을 올린다. 또한 제물 중 어물로 올라가는 돔배기[상어고기]도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특성이다.
묘사는 대부분의 집안에서 음력 10월에 지낸다. 묘사를 지낼 때 각 조상의 묘소를 모두 다니며 지냈다. 재실이나 적당한 장소를 정하여 간편하게 지내는 풍속에 비해서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구 지역 평생의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있었던 전통적 평생의례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과 민속적 사항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이루어진 1980년대 이후 평생의례의 중요도가 낮아짐에 따라 그 흔적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하지만,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경주최씨 종택에는 아직도 제례 공간이 보존되고 있다. 경주최씨 종택의 살림집 동쪽에는 가묘(家廟), 별묘(別廟), 보본당(報本堂) 등의 제례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