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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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洛果 |
영어공식명칭 | Seong Nakgw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940년 - 성낙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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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61년 - 성낙과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 2학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1961년 - 성낙과 이대악법반대학생공동투쟁위원회 조직부장 역임 |
출생지 | 성낙과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가동 |
거주|이주지 | 성낙과 거주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
성격 | 학생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이대악법반대학생공동투쟁위원회 조직부장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 거주하며 장면정권 시기 이대악법 반대 투쟁을 전개한 학생운동가.
[활동 사항]
성낙과는 1960년 청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에 입학하여 4·19혁명을 경험하였다. 1961년 청구대학교 2학년 재학 중 통일운동과 「한미경제협정」 반대 운동을 전개하자 장면정권이 이를 누르기 위해 「반공법」과 「데모규제법」을 시행하였다. 「반공법」과 「데모규제법」을 이대악법으로 규정하고 이대악법반대학생공동투쟁위원회의 결성에 참여하고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대악법반대학생공동투쟁위원회는 1961년 3월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노동단체학생단체공동투쟁위원회로 확대되었다. 1960년 4월 2일 대구역 광장에서 이대악법반대 규탄대회 및 횃불시위를 거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교통부와 경찰 당국의 불허 조치가 취해지자 학생공투위 간부들과 함께 경북노조연합회 사무실 앞에서 학생들과 함께 만나 시내 일원을 돌며 “살인법 물리치고 조국통일 이룩하자”, “살인법 만들어 삼천리강산을 피바다로 만들려는 제2의 이승만 도당이여, 배고파 못살겠다. 통일하여 살아보자는 온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어라. 노동자 농민이여 일어서라. 학생들이여 총궐기하라.”, “살인법 물리치고 조국통일 이룩하자”, “오라, 역전광장으로”라는 내용이 담긴 삐라를 살포하였다. 1961년 9월 5·16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대구이대악법 반대 데모투쟁이 시위행위와 소요난동을 일으켜 북한에 이익을 준 반국가행위사건으로 규정되어 혁명재판에 회부되었다. 1961년 10월 5·16군사쿠데타 정권에 의해 대구지방법원에 이송 결정이 내려졌다. 1963년 정치활동 해금 조치가 취해질 때 해금 제외자로 구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