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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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夫人寺逸名庵址石燈 |
영어공식명칭 | Stone Lantern at Ilmyeongam Site of Buin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신무동 356-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배성혁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5월 15일 - 부인사일명암지석등,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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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인사일명암지석등,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부인사일명암지석등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신무동 356] |
원소재지 | 부인사일명암지석등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신무동 356] |
성격 | 석등 |
양식 | 쌍화사석등 |
크기(높이,길이,둘레) | 287㎝[전체높이]|96㎝[아래받침돌의 한변]|88㎝[간주석 높이] |
소유자 | 부인사 |
관리자 | 부인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부인사 명부전 앞에 세워 놓은 통일신라시대 석등.
[개설]
부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일컬어진다. 조선시대 문헌 기록에 부인사가 일명 대가람(大伽藍)이라 불리며 북쪽 공산에 있고 신라 성덕왕이 창건했다는 기록과 6차례에 걸쳐 발굴조사한 고고학적 성과, 창건과 동시로 추정되는 8~9세기 양식의 석탑 등의 자료로 보면 8세기 초에 창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치]
부인사일명암지석등은 부인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팔공산 순환도로의 남쪽에 위치한 금당암지(金堂庵址)에 흩어져 방치되었던 것을 회수하여 부인사 명부전 앞으로 옮겨졌다.
[형태]
부인사일명암지석등의 규모는 전체높이 287㎝, 아래받침돌[하대석(下臺石)]의 한 변이 96㎝, 간주석(竿柱石) 높이 88㎝ 정도이다. 부인사일명암지석등은 두 개의 화사부(火舍部)[석등의 불 켜는 부분]를 구비한 우리나라 유일의 쌍화사석등(雙火舍石燈)이다. 하대석에서 방형으로 된 기대석의 사방으로는 한 측면에 두 개씩의 안상(眼象)이 배치되어 있으며, 상면에는 연대(蓮臺)받침 위에 10개의 복판연판(複瓣蓮瓣)을 각출하고 있고, 연대 위에는 3단의 간석(竿石) 받침이 조각되어 있다. 간주석(竿柱石)은 8각주로서 높지 않다. 윗받침돌[상대석(上臺石)]은 8각 평면으로, 밑부분에는 3단 밭침이 모각되었으며, 그 위로 중판단연화(重瓣單蓮花)가 장식되어 있다. 화사석은 장방형의 평면상에 두 개의 화사부를 구비한 14면체를 취하고, 옥개석(屋蓋石)[석등의 지붕돌]은 우동(隅棟)이 뚜렷하며, 낙수면(落水面)의 굴곡은 위로 반전되어 있다. 부인사일명암지석등의 조성시기는 신라 하대 즉 9세기 중엽의 양식으로 보여진다. 부인사일명암지석등의 전체적인 기본 구성이나 조각기법 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2개의 화사석을 갖춘 특이한 모습은 당시의 양식에서 벗어나 있어 고려시대 전기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현황]
부인사일명암지석등 중 화사석은 경북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지금 부인사 명부전 앞에 있는 부인사일명암지석등에 있는 화사석과 상륜부는 전문가의 고증을 받아 새로운 재료로 복원하여 짜맞춤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인사일명암지석등은 9세기 중엽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의 불 켜는 부분을 별도로 2개 만든 우리나라에서 유일의 쌍화사석등(雙火舍石燈)으로 통일신라시대 석등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부인사일명암지석등은 1990년 5월 15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