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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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武洞磨崖佛坐像 |
영어공식명칭 | Rock-carved Seated in Sinmu-dong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235-7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최재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5월 30일 - 신무동마애불좌상,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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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신무동마애불좌상,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현 소장처 | 신무동마애불좌상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235-7 |
원소재지 | 신무동마애불좌상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235-7 |
성격 | 불상 |
재질 | 자연암반석 |
크기(높이) | 89㎝[불상 높이]|120㎝[광배높이] |
문화재 지정 번호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에 있는 부인사 계곡 아래쪽에 있는 고려시대 양각 마애불좌상.
[형태]
신무동마애불좌상은 사방 4m 내외 바위 남면에 조각된 불상이다. 바위의 좌측 상단을 감실(龕室)의 한 형태인 닫집[궁전 안의 옥좌 위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 형태로 다듬어서 불상을 조각하였다. 신무동마애불좌상의 상호(相好)[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는 훼손이 심하다. 왼쪽 어깨와 광배(光背)[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에도 보수한 흔적이 있다.
머리부터 무릎까지 불신의 조각은 고부조(高浮彫)[높은 돋을새김]이나 연화대좌는 저부조(低浮彫)[얕게 만드는 돋을새김]로 처리하였다. 불상의 머리는 나발(螺髮)[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말아 올린 모양]이고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의 표시는 분명하지 않다. 얼굴은 신체에 비해 좀 작게 표현되었다. 눈·코·입도 훼손이 심해 잘 알 수 없지만 작게 표현된 듯하다. 귀는 얼굴의 길이와 거의 같고 미간에는 백호(白毫)[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의 흔적이 희미하다. 어깨는 당당하게 벌어졌고 목은 짧지만 삼도(三道)의 표현은 뚜렷하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려 시무외인(施無畏印)[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주는 시늉의 모양]을 취했다. 가운뎃 손가락만 기형적으로 구부리고 있으며, 왼손은 배 앞에서 손바닥을 안으로 하고 있다.
결가부좌를 한 하체는 상체에 비해서 안정감을 주지만 모델링(modelling)이 정확하지 못해 그 표현이 사실적이지 못하다. 통견(通肩)[어깨에 걸침]을 한 법의는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의 옷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긴장감은 없어지고 도식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넓게 파진 가슴에는 내의가 표현되었고 그 아래로 띠 매듭이 보인다. 대좌는 가운데에 가로줄을 두고 앙련(仰蓮)[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과 복련(覆蓮)[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을 새겼다. 그리고 앙련의 연꽃잎 안에는 각각 꽃무늬를 조각하였다. 광배는 주형 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인데 두광(頭光)[부처나 보상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은 상단만 융기선으로 구분하여 안쪽에 연꽃무늬를 돌렸다. 하지만 신광(身光)[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광배 전면에는 가득 차게 덩굴무늬를 조각했다. 그 문양이 도안화되기는 했지만 화려해서 이 불상의 장식성을 더해주고 있다.
[특징]
신무동마애불좌상은 얼굴이 작아지고 상대적으로 하체의 폭이 넓어져서 안정감을 이루는 자세를 하고 있다. 이는 9세기에 조성된 경상북도 예천군의 예천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醴泉 寒天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 제667호 ]과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각이 평면적이고 광배나 대좌의 문양은 도식화되었으며 법의의 옷주름도 경직된 점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신무동마애불좌상은 1988년 5월 30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