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277 |
---|---|
영어공식명칭 | Gwangbok Pine Tree |
분야 | 지리/동식물,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식물/보호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도평로116길 192-7[평광동 97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판권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945년 8월 15일 - 단양 우씨 집성촌 청년들, 문중 재실인 첨백당에 소나무를 식재 |
---|---|
보호수 지정 일시 | 2000년 11월 18일 - 소나무 2-21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광복소나무 명칭 |
소재지 | 광복소나무 - 대구광역시 동구 도평로 116길 192-7[평광동 979] |
학명 |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 |
생물학적 분류 | 소나무목〉소나무과〉소나무속 |
수령 | 100년 |
보호수 지정 번호 | 소나무 2-21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광복을 기념해서 심은 소나무.
[개설]
단양우씨 집성촌 청년들이 광복을 기념해서 소나무를 선택한 것은 이 나무가 우리나라를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애국가에 등장하는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삶 자체였다. 우리민족은 자식이 태어나면 새끼줄에 소나무 가지를 엮어서 무병장수를 기원했으며,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았으며, 죽으면 소나무로 관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유일하게 안동 제비원에 소나무 설화가 전한다.
소나무의 이름에는 물질적인 특징 외에 사람들의 느낌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붙인 것도 우리민족이 소나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준다. 소나무의 다른 이름으로 정목(貞木)·출중목(出衆木)·백장목(百長木)·군자목(君子木)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소나무는 예부터 십장생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십장생 중 실존하는 식물은 소나무뿐이다. 우리민족이 소나무를 예찬한 것은 늘 푸른 소나무에서 절개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나무를 ‘초목의 군자’, ‘군자의 절개’, ‘송죽같은 절개’, ‘송백의 절개’ 등으로 표현했다. 특히 설만궁학(雪滿窮壑)의 독립고송(獨立孤松), 즉 눈 가득한 아주 험한 골짜기에 외롭게 서 있는 소나무는 지절(志節)의 상징으로 시의 소재에 자주 등장한다.
[역사/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1945년 8월 15일 단양우씨 집성촌 청년들은 문중 재실인 첨백당에 소나무를 심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들이 광복소나무를 심은 것은 광복의 기쁨을 조상에게 알리고 후손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광복소나무는 어린 소나무 세 그루 중 살아 남은 한 그루다. 이들은 소나무를 심은 후 논의 갯돌을 가져와 ‘단기(檀紀) 4278. 8. 15. 해방기념(解放記念)’이란 글씨를 새겼다.
[현황]
1945년 해방을 기념해서 심은 ‘광복소나무’는 광복과 관련한 소나무로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소나무의 높이는 6m , 직경 둘레는 0.8m이며 수령은 10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