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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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현종 때 5도 양계 체계가 확립되면서 고려 전기 행정 구역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지방에는 지방관을 파견하는 주현(主縣),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는 속현(屬縣)으로 구분하였다. 주현으로는 경(京), 도호부(都護府), 목(牧) 등의 계수관(界首官) 지역과 현(縣)이 있었다. 주현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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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도에 촬영된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의 전경 사진. 「공산동 마을 전경 사진」은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촬영되었다. 「공산동 마을 전경 사진」은 직사각형 형태이며, 연결되는 사진 2매로 되어 있다. 「공산동 마을 전경 사진」의 왼쪽은 왕산과 마을의 모습, 오른쪽은 마을과 마을 뒤에 위치한 팔공산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공산동 마을 전경 사진」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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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일대에 있는 나팔고개, 왕산, 파군재 지명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김광순, 『한국구비문학』(국학자료원, 2001)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인터뷰(지묘3동 주민 박성서, 남, 78세, 1986. 10. 2) 후삼국시대 때 신라가 후백제의 침입으로 큰 위기에 처하게 되자 신라 경애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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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있는 독좌암에 전해오는 이야기. 독좌암은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노인회관의 북쪽 5㎞ 지점 개천가에 있다.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대구지명유래총람』(대구광역시, 2009)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후삼국시대 때 신라가 후백제의 침입으로 큰 위기에 처하게 되자 신라 경애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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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학 전체.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 작품을 말한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도 일찍부터 신화, 전설, 민담을 비롯하여 민중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르던 다양한 민요, 수수께끼와 속담 등 구비문학이 풍부하게 전승되어 왔다.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일어난 공산전투와 관련이 깊은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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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유적. 신숭겸[?~927]은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태봉[후고구려의 또 다른 이름]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건국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927년(태조 10) 팔공산 동수 일대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공산전투[동수전투]를 벌였다. 공산전투에서 참패한 태조 왕건은 후백제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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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후삼국시대 일어난 공산전투와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길. 대구광역시 동구청은 927년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있었던 공산전투(公山戰鬪)[동수전투(桐藪戰鬪)]와 관련된 설화, 지명 등을 바탕으로 하여 조성한 친환경 탐방로인 팔공산 왕건길을 조성했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 신숭겸장군 유적을 출발해 열재, 부남교, 물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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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년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후삼국 시기 고려와 신라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후백제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군사행동을 함께 하였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대구[대구광역시] 지역을 무대로 한 공산전투가 벌어졌다. 공산전투는 927년(태조 10) 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과 태조 왕건 사이에 벌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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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태조 왕건으로 인해 생겨난 대구광역시 동구 지명들과 문학작품. 927년(태조 9) 팔공산 일대에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군대와 후백제 견훤(甄萱)의 군대는 큰 전투를 벌였다. 바로 공산전투이다. 고려군은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 장군을 비롯하여 수많은 군사가 죽고, 왕건은 간신히 죽음에서 벗어났다.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와 신숭겸 장군이 전사한 지묘동 일대에는 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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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위치한 산. 왕산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솟은 해발고도 161.2m의 산이다. 왕산봉(王山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왕산은 927년(태조 10)에 팔공산 일대에서 일어난 고려군과 후백제군 사이의 공산전투로부터 명칭이 비롯되었다. 『대구읍지』에는 “왕산은 부의 북쪽으로 20리쯤에 있다. 고려 태조가 견훤에게 쫓겨 이 산에 올랐기 때문에 왕산이라고 한다.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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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 1978년 건립된 인천채씨 문중 재실. 요수정은 대구광역시 출신 유학자이자 교육자인 후담(後潭) 채헌식(蔡憲植)[1855~1933]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채헌식은 영남 낙육재장(樂育齋長)을 거쳐 협성학교를 창립하여 교장을 역임했다. 이후 상덕사 내에 문우관(文友觀)을 창건하여 강회를 여는 등 유도(儒道) 진흥에 힘쓴 인물이다. 인천채씨는 대구광역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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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속하는 법정동. 지묘동(智妙洞)은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하여 도망갈 때 신숭겸과 김락 장군이 기묘한 술책으로 왕건을 탈출시켰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왕건이 자신을 대신해 죽은 신숭겸과 김락을 위해 지묘사란 절을 세운 기록이 있는데, 그 지묘사가 있는 동네라서 지묘동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지묘동(智妙洞)은 원래 대구부 해서촌면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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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화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 지묘천은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일대에서 발원하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일대에서 동화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유로연장은 8.49㎞, 유역면적은 18.71㎢이다. 지묘동은 신숭겸 장군의 지략으로 왕이 목숨을 구한 곳이라는 것에서 유래했으며, 지묘천은 지묘동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구광역시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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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출신 선비. 최흥후(崔興厚)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재숙(載叔), 호는 긍와(兢窩)이다. 최흥후는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을 지낸 최경함(崔慶涵)이고, 할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며,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최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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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팔공산의 역사와 문화유산. 팔공산이란 이름을 갖게 된 연유에 관해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후삼국시대 신숭겸과 김락 등 여덟 장군이 이 곳에서 순절했다고 해서 팔공산이 되었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여덟 고을에 걸친 산이라 하여 팔공산이 되었다는 설이다. 세번째는 원효의 제자 여덟 성인이 팔공산에서 득도함에 유래했다는 설이다. 마지막으로 태조 왕건이 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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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 1607년 건립된 신숭겸을 추모하기 위한 사우. 신숭겸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왕건을 도와 후삼국통일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죽은 인물이다. 927년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이 팔공산 일원에서 일대 격전을 벌였는데, 이를 역사에서는 ‘공산전투’ 또는 ‘동수전투’라 한다. 공산전투에서 왕건은 견훤에게 대패해 탈출하게 되는데, 이때 신숭겸이 왕건의 복장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