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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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Nationally for the First Time Museum in the Dong-gu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주연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7년 5월 25일 - 대구방짜유기박물관 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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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5년 5월 29일 - DTC섬유박물관 개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 자연염색박물관 개관 |
대구방짜유기박물관 -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9[도학동 399] | |
DTC섬유박물관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227[봉무동 1560-2] | |
자연염색박물관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112길 17[중대동 467[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전국 최초로 문을 연 테마 박물관들
[개설]
박물관이 새로워지고 있다.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널리 모아 보관하고 진열하는 박물관은 최근 들어 하나의 테마로 관중들을 불러 모으며 다양한 체험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대구광역시 동구는 이러한 테마박물관을 여럿 운영하고 있다. 하나같이 전국 최초의 박물관이어서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자랑스러운 고유문화유산인 방짜유기,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끈 섬유패션, 우리 선조들과 생활을 함께한 자연염색과 전통산업까지 대구광역시 동구는 테마박물관을 통해 소중한 유산을 전승 보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국 최초, 방짜유기박물관]
1. 방짜유기장 이봉주의 기증으로 세워지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일정한 비율로 섞은 놋쇠를 두들겨서 만드는데 악기류인 징, 꽹과리, 바라 등을 비롯해 식기(食器)와 제기(祭器)가 주를 이룬다. 유기를 만드는 과정은 워낙 까다롭고 어려워 여러 명이 한 조를 맞춰 함께 작업해야만 하는 기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공예문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유기장(鍮器匠)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방짜유기장 이봉주(李鳳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서 전통 방짜유기를 만들어온 인물이다.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인 이봉주는 유기그릇을 팔러 다니시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방짜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혼자 몸으로 월남을 하는 등 오랫동안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1981년 미국에서 대대로 심벌즈를 생산하던 터키인들이 이봉주를 초청해 기술을 전수받은 일이 알려지면서 국내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이어서 1983년 방짜유기를 포함한 놋그릇 제조법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이봉주의 집념은 빛을 보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이 수많은 실패와 경험을 통해 파악한 금속의 성질과 쓰임이 자칫 사라질 뻔했으나 장인들에 의해 유기 제작 기술은 겨우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바로 이봉주가 기증한 방짜유기로 건립되었다. 우리 공예문화의 찬란한 역사를 기리기 위해 평생 수집하고 제작한 방짜유기 275종 1,480점을 기꺼이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봉주는 유기박물관을 건립하는 소망을 오래전부터 가져왔다. 1988년에 이미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700여 점 모은 방짜 작품을 박물관 건립에 보태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봉주의 기증품들은 생활유기, 제기, 종교용구 등으로 분류되어 기증전시실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이봉주 선생이 제작한 세계 최대 징을 방짜유기박물관 입구에 전시해두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대형 징은 100㎏에 육박한 무게와 1m 60㎝의 지름으로 제작되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2. 우리 민족의 청동 합금 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방짜 유기
방짜는 순우리말로 ‘두드리다’는 뜻이다. 놋그릇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메질을 해야 하는지 그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이봉주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예공방전시회를 열 때 소제목을 「시간을 두드리다」로 정한 것 또한 여기에 연유한다. 전통 방짜유기는 구리 16량 1근[78%]과 주석 4량 5돈[22%]의 정확한 합금비율을 계량해 제작하며 불에 달구고 일일이 메로 쳐서 두드리고 깎아내어 만든 놋그릇이다.
놀라운 점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비율이 다른 나라의 어느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으로, 우리 조상들의 오랜 경험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돌이켜보면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방짜기술은 우리 역사에서 한 번도 밀려난 적이 없었다.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만 보아도 삼국시대의 청동 합금 기술이 얼마나 우수한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8세기 신라 시대에는 유기를 생산하는 국가전문기관인 철유전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고려 때에는 방짜유기의 기술이 뛰어나 송(宋)나라에서 수입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조선 시대에는 집집마다 식기와 수저, 요강과 세숫대야에 이르기까지 유기로 제작할 만큼 보급됐으니 그야말로 우리 민족과 동고동락해온 놋그릇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방짜를 비롯한 각종 놋그릇은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로 인해 한동안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수모를 겪었다. 해방 이후 집집마다 연탄을 사용하게 되면서 일산화탄소에 색이 변하는 유기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이에 유기장들 또한 자연히 설 곳이 사라졌다.
3. 오랜 방짜유기 역사를 가진 대구에서 전국 최초로 문을 연 방짜유기박물관
대구광역시는 방짜유기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문헌에 따르면 1800년 이전부터 이미 유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기를 생산하던 대구에서 2년 10개월 간 공사 끝에 2007년 5월 25일 전국 처음으로 대구에서 문을 연 방짜유기박물관은 전통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의미 있는 일이었다. 개관식이 열린 날 약 400여 명 내빈이 참여했다. 또한 대구시 무형문화재 1호 고산농악(孤山農樂)의 길놀이 공연으로 막을 열었으며, 무형문화재 제58호 김대균(金大均)이 외줄타기 공연을 펼쳐 행사의 격조를 더 했다.
4. 유기의 특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
방짜유기박물관의 부지 총 1만 7000㎡에는 지상 2층과 지하 1층에는 전시실 세 곳, 야외공연장, 기념품 가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방짜유기의 역사와 종류, 유기 제작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국악과 사물놀이 등의 전통 공연이 마당에서 펼쳐져 찾는 이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유기의 모든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유기문화실에는 주로 어른들이, 게임기 앞에는 주로 어린이들이 자리를 잡는다. 어린 시절 제사를 앞두고 식구들과 둘러앉아 방짜유기를 닦아본 적 있는 어른 세대들은 다양한 종류의 유기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풍경이다. 어린이들은 방짜유기 만들기 게임기 앞에서 합금 비율을 맞추고 수라상 차리기, 유기장과 힘겨루기 게임 등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또한 방짜기법을 통해 제작된 악기 곁에는 헤드셋이 놓여 있어 그 소리가 얼마나 맑고 오래 가는지 직접 체험하게 한다.
재현실에는 놋그릇 가게의 모습과 유기를 닦으며 관리하는 장면, 방짜유기를 만드는 활동 등이 생생하게 조형되어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영상실은 방짜유기의 제작과정과 그 역사에 대해 15분간 상영하고 있다. 영어자막이 덧입혀져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다. 현대인들에게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방짜유기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박물관 측의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5. 식기로서 최고 기능을 갖춘 유기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여름에는 백자(白磁)를 식기로 사용하고, 겨울에는 놋그릇으로 바꿔 썼다. 놋쇠 중에서 가장 으뜸이 바로 방짜라 했다.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인 방짜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조직적이며 복잡하다. 주로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협동 작업을 한다. 총지휘자 1명, 메질꾼 3명, 풀무잡이 1명으로 구성된다. 메질도 앞망치, 겟망치, 센망치로 박자를 맞추어 두드리기 때문에 각각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짜유기는 성질이 매우 단단하여 타악기로 쓰일 정도이다.
또한 1200도 고온에서 제작된 방짜유기가 세균마저 박멸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비로소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스테인리스와 달리 방짜유기는 구리 덕택에 병원성 대장균 등을 살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실험 결과 식중독을 일으키는 O-157균과 살모넬라 등이 방짜유기 속에서 사멸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열보존률이 높아 밥을 담아두어도 금세 식지 않고 맛을 오래 지속시킨다. 왜 우리 조상들이 방짜유기를 가장 으뜸가는 그릇으로 칭송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6. 대구광역시 동구 문화유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최적 입지
방짜유기박물관 옆길로는 팔공산 올레길인 북지장사(北地藏寺) 가는 길이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곳이다. 북지장사는 현재 아담한 사찰이지만 한때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린 큰 사찰이었다고 전한다. 방짜유기박물관 입구에서 출발하여 북지장사까지 도착하는 데까지 편도 2.5㎞이며 소나무 절경을 감상하다 보면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에 다녀올 수 있다. 또한 방짜유기박물관으로 가는 길 입구에는 한국현대시인들의 작품이 비석에 육필(肉筆)로 쓰인 현대시 육필공원이 있다.
[전국 최초, DTC 섬유박물관]
1. 섬유의 수도, 대구에 세워진 섬유 박물관
2011년 영남일보사가 보도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지인들은 대구광역시를 생각하면 섬유 도시, 사과, 보수성, 덥다, 팔공산 순으로 떠올린다고 한다. 여전히 대구광역시 하면 섬유도시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대구광역시는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메카였다.
대구광역시가 섬유산업의 메카(mecca)가 된 것은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덕분에 대구가 파괴되지 않은 결과 섬유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후 대한방직, 제일모직, 한국나이롱주식회사 등 내로라할 섬유산업체들이 대구광역시에서 성장했으며, 패션산업도 대구광역시가 주도하게 되었다. 전국 최초의 섬유박물관이 섬유의 수도, 대구광역시에 세워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라 할 수도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 위치한 DTC 섬유박물관[대구 텍스타일 콤플렉스]은 시대별로 유행한 패션과 그 산업 뒤에서 울고 웃은 사람들의 이야기, 앞으로 섬유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2. 아시아의 밀라노 센터로 자리 잡기 시작한 박물관
2015년 5월 29일 문을 연 DTC 섬유박물관은 개관 두 달 만에 관람객이 1만 명을 넘는 등 아시아의 밀라노 센터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만3000㎡ 부지에 지하 2층~지상 9층 규모로 건립된 DTC 섬유박물관은 섬유패션산업의 랜드마크로 조성되었다. 이로써 대구광역시에서 섬유산업은 시대에 뒤처진 사양 산업이 아니라 상품제작, 마케팅, 비즈니스가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진일보한 산업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우리나라 섬유 및 패션 산업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전시 기획
이른바 섬유와 관련된 모든 산업을 보여주는 융합공간인 DTC 섬유박물관은 외형조차 패셔너블해 단번에 섬유박물관임을 짐작케 한다. 박물관 2층인 패션관에서는 20세기 패션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광섬유를 이용한 조형물은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3층 아트월에는 재봉틀이 다양하게 펼쳐지는데 옷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곁에 오는지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아트월 옆 산업관에는 섬유 소재와 기계가 전시되어 있어 생산과정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한국전쟁 당시 낙하산으로 만든 블라우스, 60년대에 등장하면서 유행을 주도한 나일론 소재, 70년대 수출의 절반이 섬유산업이었다는 사실을 차례로 이해할 수 있다.
4층 미래관에서는 우리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IT와 융합된 의복들이 등장한다. 가령 소방복이 불을 완벽히 견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된 옷에서부터 강철보다도 단단한 방탄복 등이 줄을 잇는다. 소리에 반응하는 의류와 감성이 전달되는 의류, 탄소섬유를 활용한 자동차, 최첨단 섬유로 만든 투명 망토까지 옷을 통해 짐작해보는 미래가 사뭇 흥미롭다. 이렇듯 섬유산업의 어제, 오늘, 내일을 모두 보여주는 곳이 바로 DTC 섬유박물관이다.
DTC 섬유박물관은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있는 박물관이지만, 특히 어린이 체험실이 인기가 많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을 만든다는 목표로, 의류제작의 전 과정을 체험하고 바느질 도구까지 다룰 수 있어 1일 재단사가 되어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사전 예약만 하면 5세~9세 어린이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전국 최초, 자연염색박물관]
1. 시민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체험형 박물관
2005년 개관한 자연염색박물관은 옛사람들이 자연의 색을 담아내던 방식을 고스란히 계승함으로써 연구, 전시, 체험까지 가능하게 만든 공간이다. 자연염색박물관에는 1천여 점 유물이 보관되어 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염색 전문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서는 자신이 직접 천연재료로 자연염색을 체험해볼 수 있기에 관심 있는 이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곳이다. 사전예약을 하면 무료 체험학습이 가능하기에 어린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다. 염색용 식물을 관찰하는 일에서부터 간단한 보자기 염색을 거쳐 예술품을 만드는 일까지 한 공간에서 가능하다. 또한 이곳에는 세계공예예술관과 세계문양디자인연구소까지 갖추어져 있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2. 자연염색과 연관된 산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최적 입지
자연염색박물관에서 자동차로 십분 거리에는 대구광역시 유일 전통산업박물관이 있어, 염색 산업을 체험 학습하러 나온 가족은 두 곳을 함께 이용해 우리 전통 산업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전통산업박물관은 2002년 5월 20일 문화공보부 등록 인가를 받은 이후로 길쌈방, 천연염색방, 매실방, 예술방, 도자기방, 약령시방, 생활자료방, 쇠부리방, 꾕말오물방 등을 운영하며 전통문화 체험이 가능도록 꾸며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