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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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Old Buddist Monk’s Memory, Seungsi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추제협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 일대에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오던 승려들의 물물교환 장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축제.
[개설]
승시(僧市)는 승려들이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사찰에서 생산한 물자를 유통시킨 장터를 말한다. 승시는 고려시대에는 매우 성행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따라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탓에 필요한 물품이 있어도 구할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깊은 산중에서 그들만의 장터를 열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보름에 한 번씩 열리는 장터에서 생활필수품과 불교용품 등의 물물교환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주로 운주사, 선운사, 팔공산 등에서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승시는 승려들의 장터로 단순한 물물교환의 시장기능을 넘어서 승려들의 수행처로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더불어 산중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서로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승시가 오늘날 자취를 감추었기에 이를 팔공산 동화사에서 현대적으로 복원한 것이 바로 팔공산 산중전통장터 승시 축제이다. 팔공산 동화사에서 열리는 승시는 매년 80여 개 체험 및 판매 부스, 다양한 공연 및 음악회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많은 행사가 마련된다. 그리고 대구, 경북지역의 승려, 사찰, 불교신행단체, 시민단체, 자원봉사자 등 연인원 대략 1,500여 명이 준비하는 대구광역시, 경북지역의 최대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헌 속에 등장하는 승시]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승시는 현재 문헌 기록을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선조 32년 윤4월 14일에 “명나라 유격 허국위가 평양 광법사를 찾아가 예불을 하면서 승려들과 담화를 나누고 장삼과 고깔을 하나씩 산 뒤에 은 5냥을 내어 승려들에게 나누어 주고 갔다.”라는 기록이 있다. 둘째,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 1688년 7월 14일에 “큰 절에 내려가 담뱃대와 부채를 팔아 흑책지를 사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동화사 또는 인근에 승시(僧市)가 열린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또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1842~1910]의 『향산일기(響山日記)』 1972년 8월 11일에서 8월 13일에 “건릉(健陵)[정조의 능]으로 재향을 오던 중 승장평(僧場坪)에서 점심을 먹었다.”라는 말이 있다. 넷째, 『대구의 향기』에서는 부인사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부인사는 2천 명의 승려가 수도했으며, 당시 39개 부속 암자가 곳곳에 산재해 있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승시장(僧市場)이 섰다”는 구전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승장평, 승시장이 아마 승시를 말하는 듯하다.
한편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 이름이 중장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승려들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던 장터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운주사에 대한 설화에서는 중장터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매달 보름에 열리며 달밤을 활용한다고 했고 거래품목은 목탁, 염주, 각 사찰의 특산품 등이라고 했다. 또한 『완당평전』을 보면,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구암사로 전갈을 보내 승려 백파를 뵙고자 했던 곳은 정읍 입암면 조월리 중장터였다. 승려들이 필요한 물품, 옷가지며 불구(佛具)와 차를 교환하는 장터를 곳곳에 두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화순 도암면의 운주사, 나주 다도면의 불회사, 화순 이양면 쌍봉사의 갈림길에 있는 중장터 삼거리인데, 이곳 조월리에도 작은 장이 섰다. 중창터의 장날은 매월 보름이었다. 승려들이 장을 보고 돌아가면서 밤을 새워 산길을 걸어야 했으므로 달빛이 좋은 보름날을 택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고창 선운사에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다. 시인 이흥우 선생이 일찍이 1969년 8월 최순우 선생과 함께 선운사에 갔다가 당시 71세 주지 운기(雲起) 승려에게 들은 것을 『박물관 신문』[『박물관 신문』4, 1970]에 「선운사의 추사 삽화」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라고 했다.
[축제로 되살아난 승시]
승시 축제는 2010년부터 시작하여 매년 10월에 5일 내외의 일정으로 팔공산 동화사 일대에서 펼쳐진다. 이 행사는 대구광역시와 팔공총림 동화사가 주관하고 팔공산 승시축제 봉행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다. 해마다 행사 내용은 조금씩 다르게 준비된다. 2017년 8회까지 진행된 승시축제를 보면, 그 중 대표적인 행사로 으뜸 시념인(時念人) 선발대회와 승가 법고대회, 정목 승려와 함께하는 축하 음악회, 발우공양, 자비다선 등을 들 수 있다. 으뜸 시념인 선발대회는 씨름대회이다. 여기서 시념인은 시시때때, 생각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시념인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로 적은 표기가 바로 씨름인 데에서 붙여진 것이다. 팔공산 동화사영산전(靈山殿) 벽면 모퉁이에 씨름하고 있는 두 사람과 시념한다는 말이 적혀 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처음에는 승려들의 씨름대회로 시작했으나 최근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진행하고 있다.
법고대회는 전국 학승들이 법고(法鼓) 치는 실력을 서로 겨루는 것이다. 불교에서 법고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각종 재를 베풀고 의식을 행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로, 삼천대천세계에 웅장하게 울려 퍼져 중생의 번뇌와 일심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서로움의 징조로 하늘 북의 울림이라고도 했다. 정목 승려와 함께하는 축하 음악회는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정목 승려의 음악과 뮤지션들의 축하공연이다. 정목 승려는 1976년에 출가하여 오랫동안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자비의 전화’라는 상담기관을 만들었고 1990년 5월부터는 불교방송에서 “나무 아래 앉아서”를 진행했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 유나방송에서 47개국 6만 회원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전해주는 데 힘썼고 서울대학교 병원, 동국대학교 병원에서 아픈 어린이를 돕는 ‘작은 사랑’이란 모임을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정각사 주지 승려로 있다.
발우공양과 자비다선은 승려들의 중요한 두 가지 수행방식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발우공양이 승려들의 식사법이라면, 자비다선은 승려들의 다도법으로, 모두 수행의 일환이다. 전자가 먹을거리의 소중함과 검소한 불교의 생활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자비다선은 현대인들을 위한 차를 통한 명상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는데 대개 여섯 마당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장터마당, 먹을거리마당, 전시마당, 전통놀이마당, 산중예술가장터, 체험마당 등이다. 장터마당에서는 개장식을 시작으로 마당극과 같은 공연, 승시장터 재현마당, 불교중고용품장터, 불교중고서적장터 등 승시 재현이 있으며, 도자기 소품, 보이차 및 고수림차, 인도물품, 아로마향 및 불교용품, 생활도자기, 달마도 그림, 한지공예, 천연염색 스카프 등 승시장터가 마련된다. 먹을거리마당에서는 연밥만들기, 연음식 시연, 떡만들기, 사찰음식 시식 등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그것 외에도 저렴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 쉼터가 마련된다. 전시마당에서는 대웅전 앞마당을 채울 아름다운 유리 풍령과 소원 쓰기, 취업과 진학을 기원하는 어사화 꽃 공양, 서각 그리고 국화분재도 전시되며 동화사 성보박물관과 법화보궁에서는 특별전이 열린다. 전통놀이마당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인 ‘통통(通通)’한마당,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남사당 공연, 우리 가요와 국악 등을 들을 수 있는 우리가 ‘락(樂)’음악회 등이 펼쳐진다. 산중예술가마당에서는 대구지역 아티스트들의 그림을 이용한 디자인 노트, 일러스트 엽서 및 팬시류, 펄러비즈 및 액세서리, 캘리그라피 액자 및 소품, 석고 방향제 및 드라이플라워 액자, 전통한지로 만든 머리핀 및 한복 방향제 등 수공예 아티스트들이 중심이 된 50여 개 부스가 운영된다. 체험마당에서는 동화사 본말사가 참가하는 함께 등불을 밝히는 만등불사, 초가을 밤에 차향을 통해 선다일여(禪茶一如)를 체험할 수 있는 팔공산 동화사 대구경북 달빛들차 경연대회, 그리고 침선과 다듬이 체험, 목탁 시연 및 체험, 달마그림그리기 체험, 불화그리기 체험, 사경 체험, 서각 인경, 염주 만들기 체험, 목판탁본 체험 등 각종 불교 전통문화 체험, 사찰다도체험, 사찰음식전시, 책갈피 및 꽃편지만들기, 손수건 페인팅 체험 등 불교문화 체험, 그리고 각국의 문화 체험으로는 몽골과 스리랑카, 베트남, 라오스 등의 독특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승시 세미나와 승시축제 웹 콘텐츠 공모전도 하고 있다. 승시 세미나는 승시와 관련된 승려의 소유지족과 산중장터의 의미 등을 재음미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며, 승시축제 웹 콘텐츠 공모전은 국내외인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며 승시축제를 홍보하고 팔공산 동화사를 콘텐츠화 할 수 있는 것으로, 참신한 창작 작품과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마련되었다.
[의의와 전망]
승시 축제에 대해 현 동화사 주지이자 팔공산 승시 축제 봉행위원장 능담 효광 승려는 승시 축제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승시(僧市)는 승려들의 산중 수행생활에 있어, 불사(佛事) 용품의 생산과 유통, 생활용품의 물물 교환등 단순히 사고, 파는 경제적 행위만 이뤄졌던 시장(市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수입전(垂手入廛)이라는 의미가 곧 승시를 단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두 손을 늘어뜨리고 저자거리에 들어간다는 말로써 심우도(尋牛圖)에서 말하는 수행의 마지막 관문(關門)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수수(垂手)가 상징하는 의미는 심리적으로 이미 바깥경계를 초월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 할 수 있으며, 일없는 무위(無爲)의 경계를 그렇게 그린 것입니다. 그렇게 전(廛)마당에 들어 간다는 것은 또 다른 목우행(牧牛行)이 되는 것입니다. 승려가 나무를 하더라도 나무만 한다면 나무꾼이요, 도리를 잊고 장사만 한다면 장돌뱅이에 불과하지만 그 무엇을 하여도 수행자의 본분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수행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승(僧)’ 자(字)를 파자(破字)하면 사람 인(人)변에, 일찍 증(曾)자인 것처럼 사람다운 사람이 가장 일찍 되는 것을 승(僧)이라 하며, 그런 승려들의 저자인 승시(僧市)는 모든 인간 삶의 질곡(桎梏)과 희비(喜悲)가 점철(點綴)되어 있고, 산에서, 물에서, 들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목이 집합하고 남녀노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시전(市廛)에서 그간의 수행정도를 시험하고 완성시켜나가는 현장으로, 가장 빨리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저자 공간, 즉 수행공간인 것입니다.”
효광 승려는 이러한 승시를 체험함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내일을 살아가는 소통의 지혜를 배우고 공동체의 공동선(共同善)을 실현하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대구광역시, 그 중 동구의 문화를 대표하는 팔공산과 금호강은 그야말로 문화의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팔공산은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공간임에도 대중적인 인식은 여전히 낮다. 그러기에 이러한 팔공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승시를 단순히 불교 행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잊혀진 우리 전통문화의 하나로 이해하고 이를 문화 콘텐츠로 복원 및 개발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산중 속에서 행해졌던 승려들의 시장이라는 독특한 소재에서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자족적인 삶은 오늘날 부족할 것 없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이 현대인들에게 더욱 각인되기 위해서는 승시 축제가 지역 축제로 한정되거나 다른 지역 축제에서 볼 수 있는 특징 없는 이른바 ‘잡탕’식 행사로 전락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축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를 구체화하고 콘텐츠화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