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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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川書院常享祝文 |
영어공식명칭 | Pyeongchun Seowon Sanghyang Chukmu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88년 - 「평천서원상향축문」이휘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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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61년 - 「평천서원상향축문」이휘령 사망 |
배경 지역 | 「평천서원상향축문」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성격 | 축문|상향축문 |
작가 | 이휘령 |
[정의]
조선 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이휘령이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평천사의 최씨삼충을 상향하면서 지은 축문.
[개설]
이휘령의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자는 군목(君睦), 호는 고계(古溪)이다. 1816년(순조 16) 진사시에 합격, 1821년 동몽교관에 임명된 뒤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의금부도사·탁지랑(度支郎)·동복현감·서산군수·영천군수·밀양부사·청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벼슬살이를 하면서 여가에 학문에도 주력하여 이황의 성리학에 전심, 가학(家學)을 이었다.
최계(崔誡)[1567~1622]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사훈(士訓), 호는 태동(苔洞)이다. 최인(崔認)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사인(士仁), 호는 한천(寒川)이다. 최동보(崔東輔)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익(子翼), 호는 우락재(憂樂齋)이다. 이들 최씨 세 명은 ‘최씨삼충’이라 불리우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광역시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전공을 세웠다.
[구성]
「평천서원상향축문」은 최인·최계·최동보 세 명에 대한 축문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휘령의 문집 『고계문집』 5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평천서원상향축문(平川書院常享祝文)」의 전문이다.
1. 최인
위포장의(韋布仗義)[위포로서 의병을 일으켜]/혈망재궁(血鋩在躬)[피 묻은 칼날 한 몸에 받았네]/
시심적개(矢心敵愾)[마음에 적개심 맹세하니]/일실삼충(一室三忠)[한 집에서 세 충의지사가 나왔네.]
2. 최계
충의보국(忠義報國)[충의로 나라에 보답하고]/문학유곤(文學裕昆)[학문으로 후손을 넉넉하게 하였네]/
병기림학(炳幾林壑)[기미에 밝아 임학에 은거하니]/가혜무은(嘉惠無垠)[은택이 무한하네]
3. 최동보
십장대학(十章大學)[10장의 대학 가슴에 품고]/일신충효(一身忠孝)[한 몸으로 충과 효를 다하였네]/
탁유수립(卓有樹立)[우뚝한 공로 있어]/천고혼요(千古焜燿)[천고에 밝게 빛나리]
[특징]
「평천서원상향축문」은 각 인물별로 4자(字), 4행(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편 모두 충(忠)이 두드러져 있다.
[의의와 평가]
축문이라는 것이 보통 격식·문구 등이 거의 고정되어 있길 마련인데, 「평천서원상향축문」은 한 편당 16자에 그 인물됨과 일생을 축약적으로 잘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