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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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漆室 |
영어공식명칭 | A letter sent to Chilsi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86년 - 「상칠실」최상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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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49년 - 「상칠실」최상룡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96년 - 「상칠실」간행 |
배경 지역 | 「상칠실」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
성격 | 서독류|서 |
작가 | 최상룡 |
[정의]
조선 후기 학자인 최상룡이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거주했던 족형 최화진에게 보낸 서간.
[개설]
최상룡(崔象龍)[1786~1849]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다. 자는 덕용(德容), 호는 봉촌(鳳村)이다. 최상룡은 달성(達城)의 강동(江洞)[현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출생했다. 최상룡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했다. 세상이 어지러워 분경(奔競)[엽관운동]이 심해짐을 보고 향리로 돌아와 독암서당(讀巖書堂)을 지어 후진을 가르치니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문전을 메웠다. 고을의 과거한 사람의 명부를 보관하는 사마소(司馬所)를 중수하고 향약의 세부지침을 만들어 자치제도를 확립하고 마을의 풍속을 규정했다. 당시 대학자인 홍직필(洪直弼)·유치명(柳致明)·김익동(金翊東) 등과 경전과 예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경전(經典)의 주요 내용을 도시(圖示)[그림이나 도표 따위로 그려 보임]하여 맥락을 분명하게 가르쳤다. 성리학과 훈고학을 깊이 연구해 「사서변의(四書辨疑)」·「재이록(在邇錄)」·「소학췌의(小學贅疑)」·「계몽차의(啓蒙箚疑)」·「정주서변의(程朱書辨疑)」 등 많은 논문을 남겼다. 저서로는 『봉촌문집(鳳村文集)』 22권이 있다.
[구성]
「상칠실」은 크게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단락은 『심경(心經)』 공부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족형[친척 형] 최화진에 대한 고마움을 전달하고 있다. 두 번째 단락은 『심경』의 편장 구성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최화진에게 여쭙고 있다.
[내용]
「상칠실」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굽어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심경(心經)』을 소주(小註)와 겸하여서 외운 것이 이미 반이 넘었습니다. 깊이 생각함이 정밀하지 못하고, 깊은 의미를 꿰뚫지 못하여 괴롭고 불쾌한 마음이 한창 절박하였습니다. 이즈음에 또 『주부자독서법(朱夫子讀書法)』 한 책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바로 증세에 따라 약을 처방하고 병의 뿌리를 뽑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으로 『심경』을 읽어보니, 스스로 깨달아 번열하고 심사하는 공부에 도움이 있었습니다. [중략]
경전 첫머리 처음에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말하고, 제2편에는 ‘대인의 마음’과 ‘적자의 마음’으로 마치니 이 경전이 심학으로 삼는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또 편수(篇首)에 『시경(詩經)』의 “네 마음에 의심을 두지 말라”와 “옥루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라”를 인용하고, “움직이지 않아도 경(敬)하다.”로 마쳤으니 심법이 경(敬)을 주로 하는 것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이편은 『제전(帝典)』이 먼저이고, 다음은 『시경(詩經)』, 다음은 『역경(易經)』, 다음은 『논어(論語)』이니 다만 의리의 순서를 취할 뿐만이 아니고, 또 시세(時世)의 차서(次序)를 취한 것입니다. 『중용(中庸)』은 마땅히 『대학(大學)』의 뒤에 있어야 하나 다만 공부의 극처(極處)로써 한 편으로 맺는 것이 마땅하여 먼저 중용으로 첫 편으로 엮은 것입니다. 『대학』은 성의(誠意)가 자수(自修)의 으뜸이 되고, 정심(正心)이 심학의 주가 되기 때문에 차편의 첫머리에 둔 것입니다.
[특징]
「상칠실」은 『심경(心經)』의 편장구성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상칠실」은 『심경』의 편장 구성의 이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동시에 『심경』의 핵심개념을 곧바로 질문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최상룡의 학문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