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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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Yongamsanseong Fortress and Okche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용암산성과 옥천」『팔공산, 속집』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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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용암산성과 옥천」 『대구지명유래총람』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3년 - 「용암산성과 옥천」『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수록 |
관련 지명 | 「용암산성과 옥천」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의병|왜군 |
모티프 유형 | 유래담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위치한 임진왜란 당시 용암산성 동북쪽에 있는 옥천이 생긴 유래와 관련된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경북대학교, 『팔공산, 속집』(대구직할시, 1991)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대구지명유래총람』(대구광역시, 2009)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내용]
임진왜란 때 왜군이 대구까지 쳐들어와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자, 의병이 일어나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용암산성에 집결하였다. 의병은 1,000명이 넘었지만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의병들은 게릴라전을 벌여 몇 번 전투에서 이겼다. 그렇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퇴각하다가 결국 용암산성에서 왜병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왜병들은 난공불락의 용암산성을 에워싼 채 산성에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의병들은 밤중에 산을 내려가 물을 구해오기도 했지만, 왜군에게 발각되어 잡혀 죽는 일이 많았다. 의병들은 하는 수 없이 우물을 파기로 하고 밤낮으로 샘을 팠지만 좀처럼 물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수십 길을 판 끝에 마침내 깊은 땅 속에서 물이 솟아나 의병들은 그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며 용암산성을 지킬 수 있었다. 왜병들은 의병들이 샘을 판 것을 알고 용암산성을 포기하고 물러갔다. 의병들의 목숨을 구했던 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으며, 항상 옥(玉)처럼 맑고 찬물이 솟아났으므로 옥천(玉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용암산성과 옥천」은 임진왜란 때 의병의 집결지였던 용암산성에 옥천(玉泉)이 생긴 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