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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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A Tale of Songjeong Kkeunchimaegi and Stone Buddha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송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2년 6월 3일 - 「송정 끈치매기와 돌부처 이야기」 송정2동 주민 이상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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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송정 끈치매기와 돌부처 이야기」 『대구지명유래총람』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3년 - 「송정 끈치매기와 돌부처 이야기」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수록 |
관련 지명 | 「송정 끈치매기와 돌부처 이야기」 - 대구광역시 동구 송정동 |
채록지 | 「송정 끈치매기와 돌부처 이야기」 - 대구광역시 동구 송정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이여송|돌부처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송정동 근방의 끊치매기라는 지명 유래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대구광역시 동구 송정동 일대에 개착골이라는 계곡이 있다. 개착골 계곡 부근에는 산허리가 끊겨 있는 형상이어서 끊치매기라고 부른다. 이 지명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인 이여송이 이곳에 말뚝을 박고 돌미륵을 칼로 쳐 산이 끊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채록/수집 상황]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대구지명유래총람』(대구광역시, 2009)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인터뷰(송정2동 통장 이상기, 남, 62세, 2012. 6. 3.)
[내용]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송정동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다. 안개가 송정동 일대에 끼면 산허리가 생겨서 고지를 취하지 못했다. 결국 이여송은 산허리에 말뚝을 박고 돌미륵을 칼로 내리쳐 안개 문제를 해결했다. 이때 이여송이 내려친 돌미륵은 세 조각이 났고, 돌미륵의 피가 개착골로 흐르면서 다시 산이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로 이곳을 끊치매기라 부르게 되었다.
약간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이여송이 팔공산의 지세가 너무 빼어나서 이곳에서 굉장한 인물이 태어나 머지않아 중국을 해치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산의 혈을 끊어 후환을 없애려고 했다. 그런데 천둥 벼락이 치고, 땅도 무쇠처럼 단단하여 며칠이 지나도 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약 600m에 있는 돌부처가 이여송을 노려보고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을 알았다. 이여송이 돌부처를 파괴하니 이변이 사라졌고 혈을 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돌부처는 주민들이 복원하여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송정 끈치매기와 돌부처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과 관련한 이야기로 단맥과 지명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