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1187 |
---|---|
한자 | 大邱百弗庵古宅 |
영어공식명칭 | Gyeongju Choe Clan Head House in Dunsan-dong, Daegu |
이칭/별칭 | 둔산동 경주최씨종가 및 보본당사당,대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택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둔산동 38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배성혁 |
건립 시기/일시 | 1694년 - 대구 백불암 고택 안채 초축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2년 3월 4일 - 대구 백불암 고택 경주최씨종가 및 보본당사당,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 |
문화재 해지 일시 | 2009년 6월 19일 - 대구 백불암 고택 경주최씨종가 및 보본당사당,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 지정 해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9년 6월 19일 - 대구 백불암 고택,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에서 국가민속문화재 제261호로 승격 지정 |
현 소재지 | 대구 백불암 고택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둔산동 386] |
원소재지 | 대구 백불암 고택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둔산동 386] |
성격 | 종택|고택 |
소유자 | 경주최씨 칠계파 종중 |
관리자 | 경주최씨 칠계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내 위치한 조선시대에 건립된 경주최씨 칠계파 종택.
[위치]
대구해안초등학교에서 옻골로를 따라 북쪽 계곡으로 1.2km 정도를 가면 경주최씨 집성촌인 옻골마을에 이른다. 대구 백불암 고택은 옻골마을의 중앙부에 있다.
[변천]
경주최씨의 옻골 입향조인 대암(臺巖) 최동집(崔東集)이 정착한 시점은 1616년(광해군 8)경이었다고 한다. 현 경주최씨 종가의 안채는 1694년(숙종 20)에 건축하였다. 사랑채는 1905년(광무 9)에 다시 지었다. 보본당(報本堂)은 1742년(영조 18) 건립하여 현재까지 제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별묘(別廟)와 가묘(家廟)는 1896년 건축하였다.
[형태]
대구 백불암 고택은 대구광역시에 있는 조선시대 주택 중 가장 오래된 종택의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구 백불암 고택은 살림채와 재실·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대원군이 실시한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 동천서원이 없어질 때 철거한 자재의 일부를 사용해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채의 나무 기둥은 원형과 네모 형태가 모두 존재한다. 살림채의 오른편에 있는 보본당은 부인동 향약(夫仁洞 鄕約)을 만들고 익위사익찬(翊衛司翊贊)를 지낸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며,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 뒷편에 있는 2동 사당이 더 있는데, 별묘는 대암 최동집, 가묘는 백불암 최흥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현황]
1982년 3월 4일 둔산동 경주최씨종가 및 보본당사당(屯山洞 慶州崔氏宗家 및 報本堂祠堂)이란 명칭으로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6월 19일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61호로 승격지정되면서 명칭이 대구 백불암 고택(大邱 百弗庵 古宅)으로 바뀌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경주최씨 종가에서 소장 중인 「옻골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소장전적(慶州崔氏 百佛庵派 宗家所藏典籍)」 2종 664점은 1982년 3월 4일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 백불암 고택은 현존하는 대구광역시의 가장 오래된 고택이면서 안채·사랑채·재실·가묘·별묘 등이 조화를 이룬 큰 규모의 종택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양반 종택과 그 생활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