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907 |
---|---|
한자 | 盛才書堂 |
영어공식명칭 | Seongjae Village Schoo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길 120[미대동 16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은석 |
건립 시기/일시 | 1627년 - 성재정 건립 |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70년 - 성재정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7월 25일 - 성재서당,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성재서당,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00년대 초 - 성재정, 당호를 성재서당으로 명명 |
현 소재지 | 성재서당 -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길120[미대동 169] |
원소재지 | 성재서당 -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길120[미대동 169] |
성격 | 서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인천채씨 성재 문중 |
관리자 | 인천채씨 성재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인천채씨 성재 문중 서당.
[개설]
성재서당은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의 인천채씨 성재 문중의 현조인 양전헌(兩傳軒) 채선견(蔡先見)[1574~1644]이 최초로 건립했다. 채선견은 이곳 성재정(盛才亭)에서 당시 대구의 대표적 유학자인 손처눌·도신수·정극준·최동집 등과 교유하였다. 채선견의 호인 양전헌은 정구와 조호익의 양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의미이다.
[위치]
대구광역시 동구 파군재 삼거리에서 동화사로 가는 길을 따라 약 2㎞ 정도 가면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미대 마을이 나온다. 미대 마을에서 북쪽의 삼마산(三麻山) 방향으로 1.5㎞쯤 올라가면 성재서당이 있다.
[변천]
성재서당은 1627년(인조 5) 채선견이 건립한 성재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1770년경 채선견의 증손자 채상정 때 중건하였으며, 1800년대 초에 후손들이 다시 지붕을 잇고 당호를 ‘성재서당’이라 바꾸었다.
[형태]
성재서당은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가운데 2칸 대청·좌우 각 1칸 방이며, 앞쪽과 좌우로 반 칸 쪽마루를 내고 난간을 설치했다. 건물 네 모서리에 활주를 세워 추녀를 받쳤고 상부가구는 5량가이다. 대문은 3칸 평대문으로 가운데 어칸을 중심으로 양쪽에 고방이 있으며, 마당 서쪽에 주사(廚舍)가 있다. 건물 내외에는 주련·편액·시판 등이 많이 걸려 있으며, 대문 바깥에는 양전헌 유허비각이 있다.
[현황]
성재서당 관리는 인천채씨 성재 문중에서 하고 있다. 관리 상태는 양호하며 근래 성재서당 주변에 팔공산 올레길이 개발되어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인천채씨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자락에 세거하고 있는 주요 토박이 성씨 중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성재서당을 중심으로 하는 미대동 채씨들은 채응린·채선견 등과 같은 조선 중기 대구를 대표하는 유학자들의 후손들이다. 따라서 성재서당은 조선 중·후기 대구광역시 및 경상도 지역 인물·역사·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귀중한 유적이다. 성재서당은 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