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606
한자 崔興岦
영어공식명칭 Choe Heungrip
이칭/별칭 흥교(興敎),산보(山甫),천옹(喘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6년 10월 18일연표보기 - 최흥립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09년 1월 5일연표보기 - 최흥립 사망
출생지 최흥립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지도보기
묘소|단소 최흥립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성격 학자
성별
본관 경주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 학자.

[가계]

최흥립(崔興岦)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흥교(興敎), 자는 산보(山甫), 호는 천옹(喘翁)이다. 최흥립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경유(崔慶濡)이고, 할아버지는 통덕랑 최수천(崔壽天)이며, 아버지는 최문석(崔文錫)이다. 어머니는 박중영(朴重榮)의 딸인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이영(李檸)의 딸인 여주이씨(驪州李氏)와 채두병(蔡斗柄)의 딸인 인천채씨(仁川蔡氏)인데, 슬하에 두 아들 최유진(崔維鎭)[출계]·최암진(崔嵒鎭)과 최주섬(崔柱暹)에게 출가한 딸을 두었다.

[활동 사항]

최흥립은 장성하여 중형 최흥의(崔興義)와 함께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의 문하에 나아가 부지런히 배우고 실천하였다. 과거 공부를 단념한 후로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마음을 두고 한결같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는 데 치중하였다. 『이학통록』, 『심경』, 『주자서(朱子書)』 등을 손수 베껴서 학습하는 자료로 삼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어서 의리를 깨달았으며, 문중의 자제들을 모아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여러 글을 가르치며 마음을 다스리고 행동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일찍이 당내 사람들과 백일계(百一契)를 조직하여 백세(百世) 흘러가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치 말자는 뜻을 표방하여 화목을 도모하였다.

[학문과 저술]

최흥립의 학문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경(敬)을 보존하는[주정지경(主靜持敬)] 공부를 중시하였다. 저서로 『천옹선생문집』[목판본] 3권 1책이 있다. 내용 가운데 「중용차기(中庸箚記)」, 「사문기문(師門記聞)」, 「만록(謾錄)」, 「유공산기(遊公山記)」 등이 주목된다.

[묘소]

최흥립의 묘소는 해서촌 가사동(佳沙洞)[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데 최효술(崔孝述)이 지은 묘지명(墓誌銘)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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