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응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582
한자 蔡應麟
영어공식명칭 Chae Eungrin
이칭/별칭 군서(君瑞),송담(松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동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29년 12월 13일연표보기 - 채응린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84년 6월 16일연표보기 - 채응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84년 - 채응린 괴헌 곽재겸과 함께 유호서원에 제향됨
수학|강학지 압로정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
묘소|단소 채응린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유호서원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남성
본관 인천

[정의]

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배향된 문인 학자.

[가계]

채응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서(君瑞), 호는 송담(松潭)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증조는 채희(蔡禧), 조부는 채윤주(蔡胤周), 부친은 채홍(蔡泓), 모친은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이형(李滎)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관(申寬)의 딸이다. 7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채선진(蔡先知)·채선행(蔡先行)·채선정(蔡先正)·채선언(蔡先言)·채선견(蔡先見)·채선근(蔡先謹)·채선용(蔡先容)이며, 딸은 서득룡(徐得龍)·이윤우(李潤雨)에게 시집갔다.

[활동 사항]

채응린은 1529년(중종 24) 12월 13일에 태어났다. 집안 대대로 대구부 해북촌면(海北村面) 미대리(美岱里)[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세거하였다. 27세에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본 뒤로는 출사에 마음을 접고 과거를 그만두었다. 일찍이 성리학에 뜻을 두고 육경(六經) 이하 여러 성리 서적을 탐독하였다. 이때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1532~1563]은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채응린은 자신보다 3살 어린 전경창을 스승으로 모시며 퇴계의 학문을 간접적으로 익혔는데, 이때 제자의 예를 엄격히 갖추었으니 도를 구하는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 또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함께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것을 즐거움을 삼았다. 평소 산수를 매우 좋아하여 금호강 가에 소유정(小有亭)과 압로정(狎鷺亭)을 지은 뒤에 벗들과 함께 시문을 지으며 탈속의 삶을 누렸다. 1584년(선조 17) 6월 16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56세였다.

[학문과 저술]

채응린이 남긴 4권 1책의 『송담선생실기(松潭先生實紀)』가 있다.

[묘소]

채응린의 묘소는 대구부 공산(公山) 내동(內洞)[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내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채응린은 1784년(정조 8)에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과 함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유호서원(柳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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