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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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師伯 |
영어공식명칭 | Yeo Sabaek |
이칭/별칭 | 눌암(訥菴),망여(望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본욱 |
출생 시기/일시 | 1829년 11월 4일 - 여사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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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00년 2월 2일 - 여사백 사망 |
출생지 | 여사백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 |
거주|이주지 | 여사백 거주지 -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 |
묘소|단소 | 여사백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성산 |
[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 출신으로 활동한 유학자.
[가계]
여사백의 자는 사백(師伯), 호는 눌암(訥菴),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아버지는 부호군 여종대(呂鐘大)이고 어머니는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활동 사항]
여사백은 일찍이 진사시에 응시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권세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려고 하니, “입신(立身)을 하려고 뜻을 굽히는 것이 옳겠는가”라고 하고 돌아와 자신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다. 지헌(止軒) 최효술(崔孝述) 선생에게 나아가 공부하였다. 마을에 친목당(親睦堂)을 건립하여 종친의 화목과 후진을 양성하였다. 관찰사 이헌영과 부사 신학휴(申學休)에게 알려져 “공이 학문과 풍속을 장려한 공로가 있다”는 격려를 받았다.
[학문과 저술]
여사백이 남긴 글로 「친목당 양송(親睦堂 樑頌)」이 있으며, 문집으로 『눌암유고(訥庵遺稿)』가 있다.
[묘소]
여사백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매곡(梅谷)에 있었으나 1909년에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달리산(達理山)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여사백을 추모하며 통정대부(通政大夫) 전(前)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 同副承旨) 인주(仁州) 장석개(張錫蓋)가 지은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