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545
한자 崔應淡
영어공식명칭 Choe Eungdam
이칭/별칭 군응(君應),회당(晦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동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4년연표보기 - 최응담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93년 3월연표보기 - 최응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46년 - 최응담 회당유허비를 세움
출생지 최응담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 지도보기
묘소|단소 최응담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최응담 배향지 -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
성격 의병장
성별
본관 곡강
대표 관직 훈련원 부정

[정의]

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 출신 임진왜란 의병장.

[가계]

최응담의 본관은 곡강(曲江)[지금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자는 군응(君應), 호는 회당(晦堂)이다. 시조는 고려 의종과 명종조에 검교장군을 지낸 최호(崔湖)이다. 증조할아버지 최건동(崔健潼)은 전라 감사를 지냈으며, 원래 밀양[지금 경상남도 밀양시]에 살다가 대구광역시 동구 반계리(磻溪里)[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로 옮겨 살았다. 할아버지는 최상(崔祥), 아버지는 최해(崔海),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상준(權尙俊)의 딸이다.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이고, 최인흡(崔仁洽)·최의흡(崔義洽)·최신흡(崔信洽)·최도흡(崔道洽) 4명의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최응담은 1564년(명종 19)에 대구광역시 동구 반계리(磻溪里)[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대장이라 부르며 아이들을 지휘하기를 좋아하였다. 성장해서는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다양한 학문을 널리 배웠는데, 특히 무예에 뛰어났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정변함(鄭變咸)·정변호(鄭變頀)·정변문(鄭變文) 등과 합세하여 대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진섬(陳暹)·진엽(陳曄)·남중옥(南仲鈺) 등과 합세하여 성현(省峴)의 적을 습격하여 크게 이기고, 수급 30급과 군마 14필 등을 노획하였다. 또 금곡(金谷)의 적을 공격하여 크게 이겼으며, 식량과 무기를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연이어 자인현(慈仁縣)[지금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읍]에서 쳐들어온 적을 남천면 삼성리 연화봉 아래에서 섬멸하였다.

이후 영천 좌도의병장인 권응수(權應銖) 휘하에 들어가서 영천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최응담은 여러 의병장들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적을 선제공격하여 수십 급을 베었다. 이때 마침 동남풍이 불자 화공을 사용하여 왜적이 감히 성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를 틈 타 성문을 깨부수고 들어가서 여기저기에 불을 놓고 분전하여 수많은 왜적을 무찔렀다. 영천성 전투의 승리로 인해 훈련원 부정에 임명되었다. 1592년 8월에 삼려(三閭)의 적을 공격하여 적장 평의훈(平義訓)을 베어 죽이는 등 왜적을 크게 무찌르자, 자인현에 주둔한 왜적이 그날로 경주로 달아났다. 1592년 겨울에 지난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휘하 의병을 권응수 의병장에게 보내고, 1593년(선조 26) 3월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30세였다.

[묘소]

최응담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釜洞)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구광역시 동구 율하동최응담을 추모하는 회당유허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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