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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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東內洞忠孝閣 |
영어공식명칭 | Chunghyogak Hall of Donnae-dong, Daegu |
이칭/별칭 | 충효각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45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은석 |
건립 시기/일시 | 1864년 - 대구 동내동 충효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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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2010년 - 대구 동내동 충효각,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에서 내동으로 이전 |
현 소재지 | 대구 동내동 충효각 - 대구광역시 동구 노실길 390[내곡동 9] |
원소재지 | 대구 동내동 충효각 -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450 |
성격 | 정려각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성주배씨 괴암 문중 |
관리자 | 성주배씨 괴암 문중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에 있는 1864년 건립된 배이인의 정려각.
[개설]
배이인의 호는 묵옹(黙翁), 본관은 성주이며 어릴 적부터 효행으로 이름이 있었다. 부모의 병환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올렸으며, 시묘살이 6년 동안에는 호랑이가 곁에서 호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또한 조선 숙종·경종 두 임금의 국상 때에는 단을 쌓아 아침·저녁으로 북쪽을 바라보며 곡을 하였다고 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1864년 충신과 효자의 정려를 내리고, 1902년 가선대부 예조참판을 증직했다.
[위치]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에 있다. 숙천초등학교 입구에서 북쪽 초례봉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다락원기도원 방향으로 4㎞쯤 거리에 기도원 입구를 조금 앞두고 우측에 있다.
[변천]
배이인의 충효가 세상에 알려지자 1864년(고종 1)에 정려가 내려오자 충신이자 효자인 배이인을 기리기 위해 정려각을 세웠다. 대구 동내동 충효각은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450번지에 있었으나, 충효각 부지가 신서혁신지구에 편입되면서 성주배씨 문중 납골당과 함께 2010년 대구광역시 동구 내곡동 9번지로 자리로 옮겼다. 이 당시 미헌 배봉상의 유적인 오산재와 영정각은 철거되었다.
[형태]
대구 동내동 충효각은 단청을 입힌 목조 정려각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면 모두 홍살[붉은 색 살대]이 설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정려비·정려 편액·정려기문· 「포창완의문」 등이 있고, 외부에는 이수와 귀부를 갖춘 충효유적비가 있다.
[현황]
성주배씨 괴암 문중이 대구 동내동 충효각을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