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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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不老洞古墳群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ombs in Bullo-dong, Daegu |
이칭/별칭 | 해안면 고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35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배성혁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38년 - 대구 불로동 고분군 일인 학자가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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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3년~1964년 - 대구 불로동 고분군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8년 6월 23일 - 대구 불로동 고분군, 사적 제262호로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2002년 - 대구 불로동 고분군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대구 불로동 고분군, 사적으로 재지정 |
소재지 | 대구 불로동 고분군 -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35 |
성격 | 고분군 |
양식 | 구덩식 돌덧널무덤 |
소유자 | 국유|사유 |
관리자 | 대구광역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있는 삼국시대 대규모 고분군.
[위치]
대구 불로동 고분군은 팔공산에 연결되는 해발 426,4m의 문암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불로천에 접하는 능선 일대인 해발 53~83m의 동서로 길게 뻗은 능선과 북서쪽으로 뻗은 긴 능선의 정상부와 경사면 일대에 조영되어 있다. 이곳은 불로천과 경부고속도로 사이의 나지막한 능선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일본인 고고학자가 1938년에 학술조사 목적으로 제18호분[해안면 1호분], 제22호분[해안면 2호분]을 조사했다. 1963~1964년에는 학술조사 목적으로 경북대학교박물관가 대구 불로동 고분군 갑호분과 을호분을 조사했다. 2001~2002년에는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91·93호분 및 그 주변부에 분포하는 소형분 9기와 소형석곽 1기를 발굴 조사되었다.
[형태]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18호분[해안 1호분]과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22호분[해안 2호분]은 북서쪽 능선 정선부(頂線部)에 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갑호분과 을호분은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18호분과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2호분이 위치하는 구릉 선단부의 북쪽 사면에 있다. 갑호분은 봉토가 완전히 유실되었고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1기 확인되었다. 석곽의 규모는 장축 450㎝, 단축 70㎝, 깊이 100㎝이며, 깬돌로 쌓았으며 뚜껑돌[개석]은 부정형의 괴석을 덮었다. 부장품은 석곽의 양단에 부장하였으나 동쪽은 모두 도굴되었고 서쪽에서 토기 36점·철촉 7점·어골 다수가 출토되었다. 을호분은 봉토가 유실된 상태로 구덩식 돌덧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석곽의 규모는 장축 480㎝, 단축 95㎝, 깊이 85㎝로 깬돌로 쌓았으며 뚜껑돌은 부정형의 판석으로 덮었다. 부장품은 석곽의 북동쪽에서 토기 30점·은장 행엽 3점·재갈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91호분은 북서쪽 능선 정상부에 입지하는 대형 봉토분이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93호분은 북서쪽으로 뻗은 해발 71.7~74.2m의 주 능선 정상부에 위치하는 대형 봉토분이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18호분]
불로동 고분군의 최대급인 제18호분은 입지가 구릉의 대지상 능선부이며 봉분은 직경 25~20m, 높이 5~6m 규모에 이르는 타원형 성토분이다. 주체부는 동-서로 긴 지상식의 할석조 구덩식 돌방무덤이며 그 규모는 길이 8.05m, 너비 1.20m, 높이 2.20m 로 전형적인 평면 세장방형이다. 그런데 이 석실은 피장자 안치공간과 부장품용 공간을 석축 격벽으로 구분한 이른바 ‘일(日)’자형 주부식 공간구조로 부산 연산동 고분군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불로동 고분군 중에서 5세기 대형분의 주체부는 대개 이러한 구조로 추정된다. 석곽 중간에 40㎝ 정도의 격벽을 마련하여 주곽과 부곽을 구분한 주·부곽식 구조이다. 석곽은 상부로 갈수록 좁아지며 뚜껑돌은 5매의 대형 판석을 사용하였다. 주곽의 부장품은 모두 도굴되었고, 부곽에서 질그릇[대호]·굽다리접시[고배] 등의 토기와 금동제 말의 치레거리[행엽]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22호분]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18호분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져 있는 제22호분은 봉분이 직경 21m, 높이 4m인 원형 성토분이다. 주체부는 동-서로 긴 길이 5.50m, 너비 1.20m, 높이 1.90m 규모인 할석조 세장방형 구덩식 돌방으로 격벽으로 구분된 ‘일(日)’자형 공간구조이다. 격벽이 설치되어 동측이 주곽, 서측이 부곽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주곽에서 꺾쇠가 37점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내부에 목곽이 설치됨을 알 수 있다. 뚜껑돌은 6매의 대형 판석을 사용하였다. 주곽의 서벽 가까이에서 토기 50여 점과 철부 등, 중앙부에서 철도자 1점·꺾쇠 37점이 출토되었다. 부곽에서는 토기 61점이 출토되었다. 제22호분은 제18호분에 비해 봉분의 규모가 작은 만큼 주체부 규모는 너비만 같을 뿐 길이가 짧고 높이가 낮으며, 다수의 꺽쇠로 결구된 덧널이 설치되었다. 제18호분의 외형은 같은 대지상 능선부 서편에 있는 별도의 봉토분 때문에 발굴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표형분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91호분]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91호분은 북서쪽 능선 정선부에 입지하는 대형 봉토분이다. 봉분 규모는 장경 21.5m, 단경 19m, 높이 5.7m 정도이다. 지름 8~19m의 봉토분 4기가 차례로 겹치며 조영된 연접분인데, 제1~3곽은 장축 방향을 동서 방향으로 나란하게, 제4곽은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봉분에서 금제 귀걸이[수식부이식]·금제 귀걸이[태환이식] 등이 출토되었다.
제18호분과 제22호분보다 높은 레벨의 경사진 능선부에 입지한 제91호분은 봉분 규모가 직경 21.5~19m, 높이 4.5m인 원형 성토분이다. 제91호분 안에는 각각의 봉분과 호석[무덤의 외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돌을 이용하여 만든 시설물]을 지닌 고분 4기가 차례로 연접되었는데, 두 번째 이후 고분들은 각기 선축분의 봉토를 약 1/3 가량 절토해 낸 자리에 주체부를 설치하고 봉분은 이전의 봉분을 포함하여 하나의 더 큰 형태가 되도록 성토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이 고분은 외관상 하나의 봉분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봉토분 4기가 추가로 연접 증축된 이른바 단봉형 복수분이다.
그중 초축분은 직경 8m인 타원형 성토분이며 주체부는 지하식으로 설치된 옹관석곽이다. 돌덧널의 축조과정에서 옹관이 설치된 동시 공정과 그 과정에서 피장자를 매장하고 돌덧널 상반부를 완성하였다는 것은 이례적이라 주목되는 사례이다. 더구나 옹관의 입구를 서쪽에 두고 매장 후 거기에 세운 막음돌을 서쪽의 부장공간과의 칸막이용으로 활용한 부분도 독특한 구조이다. 비록 규모는 아주 작으나 칸막이를 통한 부장공간을 지녔기 때문에 이 고분의 공간구성은 주부식 구조의 범주에 해당한다. 또한, 옹관 안에 피장자 안치용 자갈을 깐 것은 위의 두 대형분에서도 구비되어 불로동 고분군의 묘제요소라고 할 수 있다. 피장자는 금동제 귀걸이와 유리구슬 목걸이를 착용하고 머리를 서쪽에 둔 어린아이다.
내부의 두 번째 고분은 초축분의 봉분 동북부를 삭토[깎아냄]하고 거기에 반지하식의 할석조 구덩식 돌덧널과 그 서쪽에 별도의 작은 판석조 제사곽을 설치하였다. 봉분은 초축 봉분에 잇대어 크게 성토[흙을 쌓음]함으로써 규모가 직경 12m, 높이 4m로 확대된 약한 타원분이 되었다. 주체부는 길이 4.4m, 높이 0.8m 규모의 할석조 구덩식 돌덧널이며 공간 구성은 격벽으로 구분된 ‘日’자형 주부식이다. 덧널 외면에 붙여 벽체를 수직으로 축조한 동편의 주공간에 비해 부장공간은 벽면이 내경하고 서단벽을 말각[모서리의 각을 죽이거나 없애는 것] 상태로 축조한 부장공간은 길이와 너비를 약간 줄인 형태이다. 머리를 서쪽으로 둔 피장자는 금제 태환 귀걸이와 유리구슬 목걸이를 착용한 성인이며 그 곁에 유자이기, 화살촉, 도자, 토기류를 두었고 부장공간에는 철창, 마구류, 축소모형철기 및 각종 토기류를 두었다. 작은 제사곽 안에는 가금류[닭, 오리, 거위 등 조류]를 넣어두었다.
제91호분 내부의 세 번째 고분은 두 번째 고분의 봉분 동북부를 삭토하고 그 범위에 반지하식 주체부를 설치한 뒤에 이전 봉분을 포괄 성토함으로써 봉분은 장경 16.5m, 단경 13.0m 규모로 커진 확연한 타원분이 되었다. 덧널의 외면에 붙여 축조한 할석조 주체부는 길이 3.6m, 높이 1.5m의 구덩식 돌방이며 공간구성은 격벽에 의한 ‘日’자형 주부식이다. 주공간과 부장공간의 형태는 두 번째 내부 고분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주공간에 비해 부장공간이 매우 작아졌고 바닥 레벨을 낮추었다는 점이 다르다. 역시 머리를 서쪽으로 둔 피장자는 금제 세환 귀걸이와 구슬 목걸이를 착용하였고 곁에 도자, 화살, 각종 토기류를 두었다.
제91호분 내부의 네 번째 고분은 기존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내부 고분들의 서북편 봉분을 삭토하고 거기에 지상식의 구덩식 돌방을 축조한 다음에 삭토면에서 연접 포괄하여 전체가 원형분에 가깝도록 크게 성토하였다. 주체부는 역시 격벽으로 구분된 ‘일(日)’자형의 주부식 할석조 구덩식 돌방으로 전체 길이 5.7m, 높이 2m이다. 공간 구성은 두 번째와 세 번째 고분의 주체부와 유사한 양상이며 피장자 두향도 역시 서남쪽이다. 출토유물은 주공간의 유자이기와 꺾쇠이고 부장공간의 질그릇을 비롯한 각종 토기류이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제93호분]
제93호분은 제91호분에서 27m 떨어진 능선의 상위에 위치함으로써 발굴분 중에서는 위치가 가장 높다. 봉분은 직경 18~14.3m, 높이 4.32m의 타원형 성토분이며 주체부는 반지하식의 길이 5.75m, 높이 2.1m 규모의 할석조 구덩식 돌방이며 공간은 격벽으로 구분된 ‘일(日)’자형 주부식 구조이다. 자갈을 깔고 꺾쇠로 결구한 덧널을 지닌 동편의 주공간에 비해 서편의 부장공간 규격이 작은 점, 주공간의 벽면이 수직인데 비해 부장공간의 그것은 내경하면서 모서리가 둥글게 말각된 점도 역시 제93호분 내부 고분 4기의 그것들과 같은 양상이다.
[출토 유물]
대구 불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질그릇, 바리모양 그릇 받침[발형기대], 굽다리목긴항아리[대부장경호], 목긴항아리[장경호], 곧은입항아리[직구호], 목짧은항아리[단경호], 장동옹, 굽다리접시, 뚜껑접시[개배], 각종 소형 토기류 등과 칼자루 끝을 둥글게 만든 칼[대도], 철제무기[철모], 쇠도끼[철부], 쇠낫[철겸], 칼모양의 몸통에 뾰족한 날이 드문드문 서있는 철제도구[유자이기], 축소모형철기, 도자, 철촉, 꺾쇠 등의 철기류, 금동제 행엽, 은장 행엽, 재갈, 허리띠 장식[교구] 등의 마구류, 귀걸이[태환이식], 귀걸이[세환이식], 목걸이[경식], 곡옥 등의 장신구류 등 다양하다. 대부분 유물은 동시기 대구분지의 소규모 고분의 출토품들과 유사하다. 다만 바닥에 뾰족한 돌기가 달린 파수부 토기는 낙동강 최하류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대구 불로동 고분군에서 다수가 출토되어 주목된다.
[현황]
대구 불로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11월 조사 때 입석동 고분 2기를 조사한 후 ‘해안면 고분’으로 보고되었다. 이후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불로동 고분 2기를 조사한 이후 입석동 고분을 포함해 ‘대구 불로동 고분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일대에서 확인된 봉토분은 212기이며, 이 중 가정집에 있는 1기를 제외한 211기가 정비된 상태이다. 1978년 6월 23일 사적 제262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된 후 211기에 대한 봉토분이 복원되고 주차장을 만드는 등 정비작업을 마무리하고 불로동 고분 공원으로 꾸몄다.
[의의와 평가]
대구 불로동 고분군은 대개 5세기 전후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세력의 집단무덤으로 추정된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은 입지가 구릉이라는 점, 석곽이 지나치게 가늘고 긴 점, 중·대형 구덩식 돌방이 축석된 격벽에 의해 분리된 주부곽식 공간구조인 점, 신라계 유물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낙동강 중류 지역 계통임을 알게 해 준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 일대를 지배하던 해안현 세력과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