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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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道鶴洞北地藏寺大雄殿址 |
영어공식명칭 | Daeungjeon Hall Site of Bukjijangsa Temple in Dohak-dong, Daegu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43[도학동 620]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고소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학연구소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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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2년 8월 13일~8월 30일 -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학연구소 발굴 |
소재지 |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장길 243[도학동 620] |
성격 | 유적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있는 고려시대 북지장사의 옛 대웅전터.
[개설]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관봉 서쪽 지맥인 노적봉[600m] 남쪽 기슭에 있는 산지사지인 북지장사 쌍탑 북쪽 공지에 있었던 대웅전이다.
[변천]
북지장사 창건자와 창건 시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극달화상이 485년[신라 소지왕 7년] 창건하였다는 설과 보조국사 지눌이 1191년(명종 21)에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연기설화인 극달화상 창건설은 신라 법흥왕 때인 528년(법흥 15) 이전이라 믿기가 어렵다. 고려시대 창건설은 신라시대 창건설보다는 신빙성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천룡사 중창과 관련해 언급한 『삼국유사』권제3 「탑상」제4 천룡사조의 신서에 “공산 지장사[현 북지장사로 추정]의 납입전이 200결”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전부터 사찰이 존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이후 북지장사에 대한 상세한 문헌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 1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편에 적힌 ‘지장수도장(地藏藪道長) ’, 1731년 건립을 알려주는 ‘지장사유공인영세불망비(地藏寺有功人永世不忘碑)’ 등을 참고하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북지장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북지장사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관봉의 서쪽 지맥인 노적봉[600m] 남쪽 기슭에 있으며, 북지장사 내 쌍탑 북쪽 빈터가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두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 조사는 1996년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과 중앙승가대학 불교사학연구소에서 진행하였는데, 조사결과 2동의 건물지가 중복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 상층유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내진주의 적심은 확인되지 않았다. 적심석(積心石)[기둥을 올리기 위해 초석과 함께 건물 밑바닥에 까는 돌] 내부에서는 중호문계 와편 및 분청자편 등이 수습되어 조선중기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하층유구는 상층유구와 같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추정하였으나, 기단이 상층유구에 비해 동쪽으로 치우치고, 서편으로 일부 적심석으로 추정되는 적석군(積石群)[돌무지군]이 확인되어, 건물지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추정하였다. 기단부 판축토 내부에서 청자편, 토기편, 어골문 기와편, 귀목문 막새편[기와 한쪽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부분의 조각]이 출토되어 하층유구는 고려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차 발굴조사에서는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와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삼층석탑 간 중심축 불일치 및 시기적 차이 등을 들어 석탑 축조시기와 일치된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는 후대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 기단축조 과정 및 경내 마당 정지로 인해 관련 유구가 유실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2차 조사는 북지장사 대웅전을 복원하기 위한 유적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학연구소가 진행하였다. 조사기간은 2012년 8월 13일부터 8월 30일까지였으며, 조사결과 2동의 건물지 및 보도석렬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상부에 2차례 화재층과 적심 내부 및 건물지 하부에서 백자편이 포함된 화재층이 확인되어, 조선시대 중기 이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건물지 남쪽 보도석렬 상부에는 2차례 화재층이 있고, 건물지 남쪽에 위치한 쌍탑을 중심으로 연장된 것이 확인되어 연장조사를 통해 유구를 확인하였다.
2012년 10월 16일부터 10월 26일까지 연장조사를 통해, 동·서 삼층석탑의 이건(移建)시기는 1, 2호 건물지 초축시기와 일치하며, 동·서 삼층석탑의 중심에서 북쪽으로 연결되는 보도석렬은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 남쪽으로 1.2m정도 연결되다가 동서 방향의 장대석 석렬[길게 다듬은 돌이 열을 맞춰 늘어서 있는 것]에 연결됨을 확인하였다. 석렬의 출토유물은 조선시대 중호문 기와편[무지개무늬 기와 조각]과 범자문 수막새편[막새부분에 불교문자인 범문(梵文)이 있는 기와 조각] 등으로 조선시대 1, 2호 건물지와 동일시기에 설치되었고, 1단 정도가 유실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추가조사를 통해 동·서 삼층석탑의 중간에 통일신라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5.2m 내외 방형 집석시설이 확인되었다. 방형 집석시설 주변에서는 무문 기와편과 통일신라시대 선문계기와편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대구 도학동 북지장사 대웅전지는 1, 2차 및 연장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전각 건물지와 이전된 동·서 삼층석탑 및 동서방향 석렬 등이 모두 동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황]
현재 북지장사 경내에는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6호 삼층석탑이 쌍탑형태로 남아있다. 그 서편에 보물 제805호로 지정된 지장전, 영산전, 용호문, 산신각, 요사 등이 남아있다. 근·현대기 지장전이 대웅전으로 사용되다가 지장전 해체보수가 이루어지면서 임시법당이 건립되어 대웅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발굴조사를 위해 임시법당이 다시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