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200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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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勞黨慶北道黨 |
영어공식명칭 | Gyeongbukdo Party of South Korea Labor Party |
이칭/별칭 | 남로당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6년 8월 - 남로당 경북도당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활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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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남로당 경북도당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
성격 | 사회단체|좌익단체 |
[정의]
1946년 8월 이후부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활동한 좌익정당의 경북조직.
[개설]
1946년 11월 23일 서울[지금 서울특별시]에서 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의 합당으로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남조선노동당 경북도당은 1947년 2월 14일 대구[지금 대구광역시]에서 이목·채충식·이선장·백기만·박중조·유지화·백현우·조봉석 등이 결당 준비위원회를 갖추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런데 준비위원회 구성원들 대부분은 좌익 성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백기만과 같은 인물은 민족주의적 성향의 인물이었다. 좌익 성향이라 할지라도 조선공산당을 핵심적으로 이끈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시월사건 이후 항쟁을 이끌었던 좌익지도부는 체포, 피신 등으로 공개적 활동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설립 목적]
1946년 8월 북한지역에서 북조선노동당의 결성을 계기로 남한 내 좌익세력을 통일적으로 재정비하고, ‘신전술’[8월테제]를 적절히 수행하기 위할 목적에서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남조선노동당의 창당 이후 경북지역의 좌익 3정당도 중앙의 변화에 보조를 맞춰 남조선노동당 경북도당을 결성하였다.
[변천]
1948년 8월부터 10월까지 이구형이 남조선노동당 경북도당 위원장이 되었다가 배철이 후임을 맡았다. 1949년 6월 24일 북조선노동당에 흡수되었고, 1949년 6월 30일 조선노동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중앙위원회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는 박헌영이 선출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남조선노동당 경북도당은 중앙의 방침에 따라 내부적으로 좌익세력의 통일과 당원배가운동을 전개하였다. 외부적으로는 1947년의 3·1절 충돌사건, 8·15폭동, 1948년의 2·7투쟁, 6연대 사건 등을 펼쳤다. 또한 유격전구의 편성에 따라 팔공산을 무대로 유격투쟁[빨치산]을 전개하였다. 그 가운데 6·25전쟁 때인 1950년 7월 27일 남로당경북도당위원장 배철이 지도하는 7명으로 구성된 유격대가 대구 동촌비행장을 이틀간 점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후 배철은 중앙당으로 소환되어 1951년 4월부터 조선인민군 총사령부작전국 소속 유격지도처를 관장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현황]
남조선노동당 경북도당 결성 이후 좌익 세력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강화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와 약화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나뉜다.
[의의와 평가]
남조선노동당 경북도당의 결성으로 좌익세력의 전술은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특히, 합법노선에서 비합법노선으로 전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