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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문신 곽후창(郭後昌)의 자는 흥숙(興叔), 호는 농포(農圃), 본관은 현풍(玄風)이다. 아버지는 생원 곽용(郭涌)이고 어머니는 분성김씨(盆城金氏)이다. 조부는 임진왜란 때 팔공산에서 창의(倡義)한 통정대부 곽재겸(郭再謙)이다. 곽후창은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선생의 문인이다. 학문은 성경(誠敬)을 근본으로 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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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부터 개항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신평동에서 활동한 유학자. 구연우의 자는 문극(文極), 호는 금우(琴愚),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아버지는 처사 구욱조(具郁祖)이고 어머니는 성주도씨(星州都氏)이다. 아들은 돈와(遯窩) 구태서(具泰書)이다. 구연우는 어릴 때부터 문재(文才)로 이름이 났었다. 구경(九經)과 삼사(三史)에 통하였으며 삼례(三禮)와 삼전(三傳) 공부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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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대구광역시 동구 신평동 신덕서당 등에서 50여 년간 인재를 양성한 유학자. 구태서의 자는 명원(明遠), 호는 돈와(遯窩), 본관은 능성(綾城)이다. 아버지는 홍문관 시학(侍學) 구연우(具然雨)이고 어머니는 숙부인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구태서는 문중의 서당인 화수정(花樹亭)에서 학업을 익혀, 향시(鄕試)와 초시(初試)에 합격하였다. 1893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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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성리학과 성리학자 그리고 유적·유물. 대구광역시 동구는 시내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신암동에서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안심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팔공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563년(명종 18)에 건립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 성리학의 출발점이자 산실이었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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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배극념의 자는 염지(念之), 호는 우옹(愚翁),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진사 배진강(裵振綱)이고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아들은 달천(達川) 배경가(裵褧可)이다. 배극념은 경상북도 성주군 금원(琴院)에서 태어났다. 인천채씨와 혼인하였는데 처가에 후사가 없어 외손봉사를 위하여 성주에서 대구광역시 동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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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부동 출신으로 활동한 유학자. 여사백의 자는 사백(師伯), 호는 눌암(訥菴),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아버지는 부호군 여종대(呂鐘大)이고 어머니는 능성구씨(綾城具氏)이다. 여사백은 일찍이 진사시에 응시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권세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려고 하니, “입신(立身)을 하려고 뜻을 굽히는 것이 옳겠는가”라고 하고 돌아와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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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유교와 유학자, 대표적인 유적.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교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중년에 팔공산 자락에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으로 이거(移居)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거한 것은 그의 외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이전인 문종 때에 문과에 합격하여 좌찬성을 역임한 정수충(鄭守忠)이 있었으나 그는 오랫동안 한양에 기거하였으며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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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출신 청백리로 이름난 무신. 이영(李榮)의 자는 현보(顯父), 호는 괘편당(掛鞭堂), 본관은 영천이다. 아버지는 증병조참판(贈兵曹參判) 이순손(李順孫)이고 어머니는 증정부인(贈貞夫人) 월성최씨(月城崔氏) 참군(參軍) 최한(崔瀚)의 딸이다. 이영은 1514년(중종 9) 21세에 무과에 합격하였다. 1545년(인종 1) 정평부사로 치적(治績)이 크게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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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조선에 쳐들어온 일본과 싸운 전쟁 가운데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치뤄진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일본군[왜적(倭賊)]이 1592년(선조 25) 5월 23일에 대규모 병력으로 부산포(釜山浦)[지금 부산광역시]에 진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북상하였다. 선조는 1592년 6월 9일에 한양[지금 서울특별시]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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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활동하며 달성십현에 속한 유학자. 채선각의 자는 임중(任仲),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 채응구(蔡應龜)이다. 채선각의 이력은 3종손(從孫) 채원령(蔡元齡)이 지은 「행장」에 의거하여 하면, 1552년(임자)에 태어나 1598년 10월에 47세로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채선각 묘소가 대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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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으로 활동한 유학자. 채헌식의 자는 정여(定汝), 호는 후담(後潭),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아버지는 채농(蔡瀧)이고 어머니는 성주도씨(星州都氏)이다. 채헌식은 18세에 한양[서울특별시]에 올라가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이후 자신의 학문이 정밀하지 못하다고 여겨,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와 파계사 등에서 공부하였다. 31세이던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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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출신 유학자. 최동직의 자는 진숙(鎭叔), 호는 향암(香巖),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버지는 만경현령 증 병조참판 최계(崔誡)이고 어머니는 순창설씨(淳昌薛氏)이다. 두 형은 진사 최동률(崔東律), 사부(師傅) 최동집(崔東㠍)이다. 최동직은 부친 최계 밑에서 공부했는데 부지런히 공부하여 문명(文名)이 있었다. 1622년(광해군 14)에 최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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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및 개항기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출신 문인. 최정한은 조선 후기 대구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로 낙육재 재생(齋生)이다. 최정한의 자는 계응(季鷹), 호는 만오(晩悟),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버지는 최명발(崔溟發)이고 어머니는 중화양씨(中和楊氏)이다. 대암(臺巖) 최동집(崔東㠍)의 후손이다. 최정한은 어릴 적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심경』, 『근사록』을 깊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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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창의한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출신 의병장. 황경림의 자는 경서(景瑞), 호는 면와(勉窩),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아버지는 황인(黃認)이고 어머니는 김해배씨(金海裵氏)이다 황경림은 11세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고모를 어머니와 같이 섬겼다. 19세에 한성에 올라가 과거를 보았으며 22세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과거를 포기하고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하였다. 모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