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377
영어공식명칭 Dry-lacquered Se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and Excavated Relics of Pagyesa Temple, Daegu
이칭/별칭 대구파계사목관음보살좌상부복장유물(大邱把溪寺木觀音菩薩坐像附腹藏遺物)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4세기 말~15세기 초(조선시대) -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89년 4월 10일연표보기 -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제99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장처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지도보기
성격 불상|복장 유물
재질 목재
크기(높이,길이,너비) 1.081m[불상 높이]
소유자 파계사
관리자 파계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 원통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목재 불상과 그 불상에서 나온 복장 유물들.

[개설]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은 1989년 4월 10일 보물 제99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大邱把溪寺乾漆觀音菩薩坐)은 높이 1.081m로 삼베와 같은 천을 옻칠로 여러 번 덧붙여 만든 건칠불상이었다. 지금은 개금하여 금불상의 모습을 갖고 있다.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양감 있는 둥근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 상체는 장대하고 어깨는 둥글면서도 당당하다. 건장한 가슴은 양감은 없지만 조선 초기 양식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은 다음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에 놓은 모습의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아미타협시보살의 특징인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中指)를 맞대고 왼손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댐]을 보여주고 있다. 옷 주름이 간결하지만 전체적으로 장중한 두께 있는 통견의(通肩衣)를 입고 있다. 넓게 벌린 가슴에는 승각기가 가슴 위로 많이 올려져 수평을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띠 매듭으로 주름지게 묶고 있다. 이러한 승각기(僧脚崎)[가슴을 덮는 속옷] 표현은 왼쪽 팔꿈치의 옷주름과 함께 조선 초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정교한 연주문(連珠文)[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듯 연결시켜 만든 문양]과 세밀한 꽃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진 높다란 보관을 쓰고 있다.

[특징]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가슴· 팔·다리 등에 영락장식(瓔珞裝飾)[구슬장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1976년 개금불사(改金佛事)[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며 치르는 의식]를 할 때 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의 내용들로 인해 한국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447년(세종 29)에 불상을 수리할 때 세종대왕의 아들 영응대군 이염, 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 영해군 장이 대시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조선 왕실의 원찰이었던 파계사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복장기(腹藏記)는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조성 시기가 조선 초였음을 알려줘 고려 이래 전통을 계승한 14세기 말~15세기 초 불상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 『대구문화재사랑』 (대구광역시, 1997)
  • 문화재공간정보서비스((http://www.gis-heritage.go.kr)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파계사(http://www.pagyesa.org)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