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응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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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등지에서 왜적에 맞선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겸(郭再謙)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는 팔공산에서 초유사 학봉 김성일과 함께 병사 모집, 군량미 수집, 요충지 방비 등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의병을 이끌고 화왕산성에 가서 망우당 곽재우와 함께 왜적에 맞서 싸웠다. 곽재겸의 본관은 현풍(玄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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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성리학과 성리학자 그리고 유적·유물. 대구광역시 동구는 시내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신암동에서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안심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팔공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563년(명종 18)에 건립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 성리학의 출발점이자 산실이었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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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문학 작품들. 대구광역시 동구에는 영산(靈山) 팔공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아름다운 금호강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어 빼어난 풍광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은 그 승경을 감상하며 흥취를 시문으로 남겼다. 팔공산은 역사적 현장으로서도 중요한 곳이다. 예종이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벌인 동수전투[공산전투]와 관련하여 지은 「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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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문학 작품들. 대구광역시 동구에는 영산(靈山) 팔공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아름다운 금호강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어 빼어난 풍광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은 그 승경을 감상하며 흥취를 시문으로 남겼다. 팔공산은 역사적 현장으로서도 중요한 곳이다. 예종이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벌인 동수전투[공산전투]와 관련하여 지은 「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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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학 전체.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 작품을 말한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도 일찍부터 신화, 전설, 민담을 비롯하여 민중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르던 다양한 민요, 수수께끼와 속담 등 구비문학이 풍부하게 전승되어 왔다.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일어난 공산전투와 관련이 깊은 작품이다. 조선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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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배극념의 자는 염지(念之), 호는 우옹(愚翁),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진사 배진강(裵振綱)이고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아들은 달천(達川) 배경가(裵褧可)이다. 배극념은 경상북도 성주군 금원(琴院)에서 태어났다. 인천채씨와 혼인하였는데 처가에 후사가 없어 외손봉사를 위하여 성주에서 대구광역시 동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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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결성하여 왜적에 맞서 싸운 임진왜란 의병장. 서사원은 임진왜란 때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 결성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또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모당 손처눌과 함께 지역의 유생을 모아 선사재와 연경서원에서 강학하여 대구의 문풍을 진작시켰다. 서사원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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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인천채씨 성재 문중 서당. 성재서당은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의 인천채씨 성재 문중의 현조인 양전헌(兩傳軒) 채선견(蔡先見)[1574~1644]이 최초로 건립했다. 채선견은 이곳 성재정(盛才亭)에서 당시 대구의 대표적 유학자인 손처눌·도신수·정극준·최동집 등과 교유하였다. 채선견의 호인 양전헌은 정구와 조호익의 양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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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문암산에 있는 채응린을 기리기 위해 1922년에 세운 인천채씨 송담문중 정자. 채응린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인천채씨 송담문중 정자이다.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은 매암 이숙량·임하 정사철·계동 전경창과 더불어 조선 중기 대구 유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채응린이 생전에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문암산에 정자를 지어 거처한 일을 기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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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유교와 유학자, 대표적인 유적.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교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중년에 팔공산 자락에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으로 이거(移居)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거한 것은 그의 외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이전인 문종 때에 문과에 합격하여 좌찬성을 역임한 정수충(鄭守忠)이 있었으나 그는 오랫동안 한양에 기거하였으며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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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에 건립된 송담 채응린과 괴헌 곽재겸을 제향 사우 또는 서원. 유학자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과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1547~1615]은 생전에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었다. 이에 후학들이 1784년(정조 8)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건립한 유호리사(柳湖里祠)에 사우를 건립해 제향했다. 일명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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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영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세거한 성씨. 인천채씨는 고려 때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시조 채선무(蔡先茂)의 후손들이 인천에 세거하면서 채씨일문을 이루었다. 고려 말에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개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은거한 채귀하(蔡貴河)를 중조(中祖)로 하는데, 대구광역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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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문인학자. 채귀해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낙응(洛應), 호는 치헌(痴軒)이다. 조선 중기의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수곤(蔡壽坤), 아버지는 채석범(蔡錫範),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택승(宅承)의 딸이다.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석유(錫裕)의 딸이다.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채규식(蔡奎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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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학자인 조긍섭이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에 세거했던 인천채씨의 후손인 채화국을 위해 지은 묘갈명. 조긍섭(曺兢燮)[1873~1933]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자는 중근(仲謹), 호는 심재(深齋)이다. 타고난 성품이 매우 영특하여 일가의 학문을 이루었다. 시문에도 법도가 있어 당시 영남 사림에서 거목으로 지목되었다. 「채미피묘갈명」은 서문(序文)과 명(銘)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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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조선 후기 효자. 채백인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현경(顯卿), 호는 북암(北巖)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현조는 조선 중기의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 증조는 채선용(蔡先容), 조부는 채익(蔡榏), 부친은 채지영(蔡之瀛), 모친은 밀양박씨로, 박정(朴挺)의 딸이다. 배위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기(權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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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출신 문인학자, 교육자. 채상겸의 성씨는 인천(仁川)에서 나왔으며 고려 동지사(同知事) 채선무(蔡先茂)가 시조이다. 자(字)는 중유(仲游)이며 호(號)는 우공당(友恭堂)이다.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역임한 채귀하(蔡貴河)는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으며 시호는 정의(貞義)이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소감(少監) 벼슬을 지낸 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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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활동하며 달성십현에 속한 유학자. 채선각의 자는 임중(任仲),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아버지는 훈도(訓導) 채응구(蔡應龜)이다. 채선각의 이력은 3종손(從孫) 채원령(蔡元齡)이 지은 「행장」에 의거하여 하면, 1552년(임자)에 태어나 1598년 10월에 47세로 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채선각 묘소가 대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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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의 문인 학자. 채선견은 지산 조호익과 한강 정구 양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익혔고, 영남유생들과 함께 이이첨의 주참(誅斬)을 청하는 소를 직접 작성하여 올렸으며, 이괄(李适)의 난 때는 의병을 일으켰으나 난이 평정되어 모은 군량을 나라에 헌납하기도 하였다. 채선견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명보(明甫), 호는 양전헌(兩傳軒)이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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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으로 공산의진군에 참여한 문인 학자. 채선길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길중(吉仲), 호는 금탄(琴灘)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채홍(蔡泓), 아버지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관(申寬)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연안김씨(延安金氏)로, 김희복(金希福)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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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운 문인 학자. 채선수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경중(敬仲), 호는 달서재(達西齋)이며, 고려 때 금성백(錦城伯)에 봉해진 채보문(蔡寶文)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채윤주(蔡胤周), 할아버지는 채징찰(蔡澄察), 아버지는 채응원(蔡應黿),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훈도(訓導)를 지낸 권사공(權士恭)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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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배향된 문인 학자. 채응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서(君瑞), 호는 송담(松潭)이다.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를 지낸 채선무(蔡先茂)의 후손으로, 증조는 채희(蔡禧), 조부는 채윤주(蔡胤周), 부친은 채홍(蔡泓), 모친은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이형(李滎)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신관(申寬)의 딸이다. 7남 2녀를 두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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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출신 문인 학자. 채화국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덕중(德中), 호는 미피거사(渼陂居士)이다. 조선 중기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의 후손으로, 조부는 채상겸(蔡尙謙), 부친은 채윤복(蔡允復), 모친은 창원황씨(昌原黃氏)로, 황계승(黃啓升)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계렴(成啓濂)의 딸이다. 딸 셋만 두어 조카 수곤(秀坤)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