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89 |
---|---|
한자 | 文鶴洞支石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세호 |
성격 | 고인돌 |
---|---|
크기(넓이 | 340×220㎝ |
높이) | 35~60㎝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2년 - 문학동 고인돌 약식 발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5년 - 문학동 고인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미추홀 근린공원으로 이전 |
소재지 | 미추홀 근린공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고인돌.
[개설]
인천광역시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유적으로는 간 돌도끼, 간 돌살촉, 반월형 돌칼 및 토기 조각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역시 고인돌 떼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지역 외에 원인천(原仁川) 지역인 학익동에 7~8기, 주안동에 2기, 문학동에 1기가 조사·보고되었지만 현재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건 학익동 고인돌 2기, 주안동 고인돌 1기, 문학동 고인돌 1기뿐이다.
[위치]
문학동 고인돌은 원래 문학산 서북쪽 도천현(禱天峴) 남쪽 밭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굄돌은 없고 3m 가량의 뚜껑돌이 남아 있던 것을 1962년 인천 시립 박물관 관장이었던 우문국과 이화 여자 대학교의 이경성이 약식으로 발굴하였다.
[형태]
마름모형 뚜껑돌의 크기는 길이 3.4m×너비 2.2m이며, 두께는 35~60㎝로 뚜껑돌 윗면에는 채석을 위한 흔적이 일렬로 남아 있다.
[출토 유물]
발굴 조사 결과,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현황]
발굴 조사 이후 택지 조성으로 인해 훼손되어 방치되었던 것을 1979년 8월에 수봉 근린공원으로 이전하였으며, 2005년에 다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미추홀 근린공원으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