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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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泰碩 |
영어공식명칭 | Choi Taeseok |
이칭/별칭 | 최대석(崔大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시용 |
출생 시기/일시 | 1920년 4월 11일 - 최태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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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9년 8월 - 최태석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백의단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2월 15일 - 최태석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다혁당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7월 - 최태석 일제 경찰에게 체포 |
수학 시기/일시 | 1941년 12월 31일 - 최태석 대구사범학교 5학년 재학 중 퇴학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11월 30일 - 최태석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8월 - 최태석 출옥 |
활동 시기/일시 | 1962년 - 최태석 경상북도 모계중고등학교 교사 부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 최태석 대통령표창 수훈 |
몰년 시기/일시 | 1995년 10월 9일 - 최태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9년 - 최태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청도 송원리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송원리 |
학교|수학지 | 대구사범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묘소 | 국립신암선열공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북로71길 33[신암동 산27-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다혁당 당원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태석(崔泰碩)[1920~1995]은 1920년 4월 11일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송원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백의단(白衣團)과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최대석(崔大碩)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최태석은 1939년 8월 권쾌복(權快福)·최영백(崔榮百)·조강제(趙崗濟)·문덕길(文德吉)·배학보(裵鶴甫)·김성권(金聖權) 등 20여 명과 함께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백의단을 조직하였다. 백의단은 당시 근로보국대라는 이름의 학생 강제 동원에서 비롯된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들이 충돌한 이른바 ‘왜관 사건’의 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보다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운동을 지속하려는 의도로 조직되었다.
최태석은 1941년 2월 15일 권쾌복·조강제·문덕길·김성권·김효식(金孝植)·이동우(李東雨)·유흥수(柳興洙)·이종악(李鍾岳)·이홍빈(李洪彬)·박호준(朴祜雋)·문홍의(文洪義)·이주호(李柱鎬)·서진구(徐鎭九)·이도혁(李道赫)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 다혁당을 결성하였다. 다혁당은 기존에 결성되어 있던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문예부와 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확대 개편하여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독립을 위한 실력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최태석은 다혁당의 육상경기부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다혁당원들은 역사와 문화 관련 서적을 돌려보고 독후감을 발표하였으며, 국내외 정세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또한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대구 앞산 등지에서 학교에서 배운 교련 내용을 바탕으로 군사훈련을 하였으며,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교사가 되어 제자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유능한 인재를 길러 독립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941년 7월 말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가택 수색 과정에서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윤독회(輪讀會)[문예부의 전신]가 발간한 항일 문예지 『반딧불』이 발각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 드러났다. 그 결과 경찰의 수사가 확대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백의단·윤독회·문예부·연구회·다혁당에서 활동한 교직원·학생·동문·학부형 등 3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최태석도 이때 체포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12월 31일 대구사범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이어 1943년 2월 8일 예심에서 재판 회부 결정이 났고, 11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태석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출옥하였고, 청도에서 교직에 종사하였다. 1995년 10월 9일 사망하였다.
[묘소]
최태석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북로71길 33[신암동 산27-1] 국립신암선열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태석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고,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