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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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興洙 |
영어공식명칭 | Yoo Heungsu |
이칭/별칭 | 산남(山南)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 시기/일시 | 1921년 6월 22일 - 유흥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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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0년 - 유흥수 대구사범학교 4학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 유흥수 대구사범학교 윤독회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2월 15일 - 유흥수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다혁당 결성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8월 - 유흥수 일제 경찰에게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2월 8월 - 유흥수 징역 5년형 언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 유흥수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
몰년 시기/일시 | 2016년 2월 12일 - 유흥수 사망 |
출생지 | 서산 고산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
학교|수학지 | 대구사범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다혁당 당원|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유흥수(柳興洙)[1921~2016]는 1921년 6월 22일 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윤독회(輪讀會)·문예부·다혁당(茶革黨)에서 활동하여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호는 산남(山南)이다.
[활동 사항]
1939년 백의단(白衣團) 결성을 시작으로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교내 비밀결사 조직을 통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유흥수는 고인옥(高麟玉)·박효준(朴孝濬)·강두안(姜斗安)·이태길(李泰吉)·문홍의(文洪義) 등과 함께 매월 1회 또는 2회 정도 기숙사에 모여 역사 소설 또는 문학 작품을 토론하면서 민족의식을 함양하고자 윤독회를 결성하였다. 1940년 1월에는 항일 민족의식을 담은 문예지 『반딧불』을 약 200부 간행하여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이후 11월에 박효준·이태길 등과 함께 문예부를 조직하였으며, 1941년 1월에는 또 다른 비밀결사인 연구회 조직에 참여하였다.
1941년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던 학생들의 졸업이 다가오자 유흥수는 문홍의·권쾌복(權快福)·배학보(裵鶴甫)·서진구(徐鎭九)·문덕길(文德吉)·이동우(李東雨)·이주호(李柱鎬)·박우준(朴祐雋) 등과 함께 기존의 문예부·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확대 개편하여 2월 15일에 비밀결사 조직인 다혁당을 결성하고 문예부의 문예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다혁당원들은 역사와 문화 관련 서적을 돌려보고 독후감을 발표하였으며, 국내외 정세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또한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대구 앞산 등지에서 학교에서 배운 교련 내용을 바탕으로 군사훈련을 하였으며,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교사가 되어 제자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유능한 인재를 길러 독립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941년 7월 말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가택 수색 과정에서 『반딧불』이 발각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 드러났다. 그 결과 경찰의 수사가 확대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백의단·윤독회·문예부·연구회·다혁당에서 활동한 교직원·학생·동문·학부형 등 3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유흥수도 1941년 8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3년 2월 8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유흥수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출옥하였고, 1946년부터 1949년까지 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을 역임하였다. 2016년 2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유흥수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1998년 3월 1일 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대구사범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