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십영」과 대구팔경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1457
영어공식명칭 Geumhogang River Scene that It appeared Daegusipyeong and Daegupalgye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전일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대구십영」과 「대구팔경」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 - 대구광역시 동구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대구십영」대구팔경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을 찬미한 글들.

[개설]

「대구십영(大邱十詠)」대구팔경(大邱八景)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을 묘사하려면, 먼저 대구광역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에 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금호강은 대구광역시 동구를 비롯하여 북구와 서구, 달서구 권역에 걸쳐 흐르는 강이다. 금호강은 낙동강의 지류이지만, 대구시내를 관통하며 흐르기 때문에 대구광역시의 팔공산과 더불어 대구광역시를 상징하는 강(江)과 산(山)이라고 할 수 있다. 금호강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거주민의 식수원이며 생활의 터전이었다. 때문에 생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측면, 문화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조명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금호강은 오늘날 시민들의 자연친화적인 생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금호강변을 활용하여 강변 공원이나 체육 시설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휴식하거나 체력을 단련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대구광역시 동구의 유명한 동촌유원지와 대구광역시 북구의 하중도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금호강의 대표적인 공원이며, 사계절 내내 풍광을 자랑하는 명소이다. 조선시대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한양[서울특별시]에서 고향인 대구[대구광역시]에 내려와서 대구의 대표적인 풍경 열 곳을 선정하여 노래한 시가(詩歌) 「대구십영」이 있다. 대구로서는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시가이다. 이를 시작으로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대구의 경치를 노래한 많은 시를 남기었다. 근대에 여러 시인들이 읊은 『대구팔경시집』 속에도 금호강을 묘사한 대구팔경(大邱八景)이 있다.

[금호강의 자연지리적 성격]

전영권이 쓴 『대구 여행』에 실린 「금호강」편을 보면, 금호강이 가지는 자연지리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낙동강의 지류인 금호강은 자체에 10여 개 지류를 가지는 큰 하천이다. 최상류부인 포항시 죽장면 가사령과 성법령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면서 영천군 임고면에서 고현천과 신령천이 합류한다. 다시 서쪽으로 흘러 대구시 달성군 성산리 화원유원지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유입한다. 금호강 수계의 북쪽은 위천 유역으로 팔공산, 화산, 보현산, 면봉산, 구암산을 분수령으로 하여 경계를 이룬다. 남쪽으로는 밀양천 수계와 삼성산을 잇는 산능성과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형산강 수계와 산지로 경계를 이룬다. 금호강(琴湖江)은 유역면적 2,053.3㎞, 총길이 117.5㎞로 낙동강 최대 지류에 해당한다. 금호강의 어원은 가야금과 호수가 합해진 이름이다. 금호강의 중류인 금호의 지세가 낮고 평평하여 이곳을 흐르는 금호강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의미와, 강가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소리가 가야금을 뜯는 소리와 같다고 한 데서 ‘금호’라는 지명이 유래된 것이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금호강은 주변 경관의 조화로움은 물론 물이 맑고도 풍부하여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즈넉한 금호강변 절벽에 위치했던 정자인 소유정, 압로정, 세심정, 환성정, 관어대에서는 많은 선비들이 시문을 나누었다고 한다.

금호강 맑은 물에는 어종도 다양하고 풍부하여 강태공들이 끊일 날이 없었으며, 맑은 날 달밤에는 손님을 실은 놀잇배가 제법 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대구 분지를 동에서 서로 흘러가는 금호강은 대구의 중심 하천이다. 금호강은 하천습지의 천국이다. 특히 안심습지, 팔현습지, 달성습지는 금호강을 대표하는 습지로 지역민들에게는 훌륭한 생태공간을 제공해 준다. 습지란 연중 물에 잠겨 있거나 주기적으로 물에 잠기는 땅을 말한다. 1971년 이란의 람사에서 채택된 람사협약에 의하면, 물의 깊이가 6m를 넘지 않는 모든 지역을 습지로 규정하고 있다. 습지는 물과 육지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여 유전자자원의 보고이며,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생물학적으로 깨끗하게 걸러주므로 지구의 콩팥에 비유되기도 한다. 또한 습지는 물을 저장함으로써 홍수와 가뭄을 방지하는 구실을 하며, 천연의 자연경관을 유지하여 생태관광지로서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

[「대구십영」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

「대구십영」은 조선 초기 문신인 서거정이 읊은 칠언절구로 10수이다. 「대구십영」은 다른 명칭으로 「대구십경(大丘十景)」, 「달성십영(達城十詠)」, 「달성십경(達城十景)」으로도 일컬어진다. 열 수의 시 가운데 금호강에 관련된 한시는 세 수로, 「금호범주(琴湖泛舟)」, 「노원송객(櫓院送客)」, 「침산만조(砧山晩照)」이다.

제1경. 「금호범주(琴湖泛舟)」[금호강에서 뱃놀이]

금호청천범난주(琴湖淸淺泛蘭舟)[금호강 맑은 물에 놀잇배를 띄우고]/취차한행근백구(取此閑行近白鷗)[한가롭게 오가니 갈매기와 가깝구나.] /

진취월명회도거(盡醉月明回棹去)[흠뻑 취해 달 밝을 때 노 저어 돌아가니 ]/풍류불필오호유(風流不必五湖遊)[중국의 오호에 노니는 풍류 못지않구나.]

「금호범주」는 금호강의 맑은 강물에 배를 타고 뱃놀이 하다가 달밤에 귀가하니, 중국의 오호에 노니는 풍류와 다를 바가 없다고 묘사하였다. 「금호범주」를 본받아 후대에도 많은 시인 묵객들이 금호강을 노래한 시를 지었다. 끝구절의 ‘오호(五湖)’는 중국 장쑤성[江蘇省] 우시시[無錫市]에 있는 경치가 좋은 호수를 말하는데, 범려가 은거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제8경. 「노원송객(櫓院送客)」[노원에서 나그네를 전송하네]

관도년년유색청(官道年年柳色靑)[도로에는 해마다 버드나무 잎은 푸르고]/단정무수접장정(短亭無數接長亭)[작은 주막집 수없이 장정에 잇닿아 있네.] /

창진양관각분산(唱盡陽關各分散)[양관곡(陽關曲)을 부르며 서로 이별한 뒤에 ]/사두지와쌍백병(沙頭只臥雙白甁)[모래 언덕에는 두 개의 흰 술병만 두개 누워 있네.]

노원(櫓院)은 지금 대구광역시 서구와 대구광역시 북구에 걸쳐 있는 팔달교 부근이다. 이곳 나루터에서 나그네를 전송하면서 노래한 시가 곧 「노원송객」이다.

노원은 대노원(大櫓院)의 약칭인데, 당시 대구의 북쪽 관문인 이곳 대노원에서 석별의 정을 노래한 것이다. 원래 도로변에 행인들이 쉬어가게 해 놓은 곳을 원(院) 또는 정(亭)이라 하였는데, 거리가 먼 곳을 장정(長亭), 가까운 것을 단정(短亭)이라 했다. 이곳이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의 첫 나루터여서 길손들이 쉬어 감은 물론 이별과 만남의 애환이 교차되던 곳이다. 이 대노원 앞이 팔달진이어서, 그곳이 대구의 관문으로 되어 있었다.

노원은 현재 3공단이 있는 금호강 언덕과 팔달교 남쪽에 해당된다. 노원은 과거에는 나루터와 주변의 넓은 백사장과 팔달교의 밤 숲, 주막 등이 어우러져 길손들의 휴식처로서 그리고 대구 북부지역의 관문으로서 중요한 곳이었다. 또한 이곳은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떠나가는 배를 보면서 또는 나무다리 위에서 떠나가는 님을 보내던 이별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제8경에서 제2구의 단정(短亭)과 장정(長亭)은 작은 숙사와 큰 숙사를 말한다. 옛날에는 2㎞[5리]마다 단정을 두었고, 4㎞[10리]마다 장정을 두었다. 제4구의 양관(陽關)은 중국의 관문 이름으로 지금 중국 간쑤성[甘肅省] 돈황현(敦煌縣)에 있었다. 당나라 때 왕유(王維)의 「위성곡(渭城曲)」으로 유명하며, 전송하며 이별하는 노래의 상징이 되었다.

제10경. 「침산만조(砧山晩照)」[침산에 비친 저녁노을]

(수자서유산진두)水自西流山盡頭[물은 서쪽으로 흐르고 산봉우리는 여기서 머물러]/(침만창취속청추)砧巒蒼翠屬凊秋[푸르른 침산에 가을이 왔구나.] /

(만풍하처춘성급)晩風何處春聲急[저녁녘 어디서 급한 방아소리 들리니]/(일임사양도객수)一任斜陽搗客愁[석양에 하염없이 나그네 시름을 찧도다.]

제10경인 「침산만조」에서 침산도 금호강가에 자리한 산이다. 침산에서 금호강을 바라보면 강물이 유유히 서쪽으로 흐르고 저녁에는 노을이 아름다운 풍경을 잘 묘사하였다. 침산은 대구의 신천 하구를 지키는 속칭 수구막이 산이라 하고, 방망이를 닳았다 하여 일명 방망치산이라고도 하였다. 높이 144m의 평지에 솟은 독산이다. 조선시대 때는 대구부의 여제단(女祭壇)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침산공원이 되어 있다.

[「대구십경」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 ]

20세기에 와서 서거정이 지은 「대구십경」의 운자(韻字)를 빌려서 대구십경을 노래한 사람이 있다. 바로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에 살았던 일화(一和) 최현달(崔鉉達)이다. 최현달은 28세에 벼슬길에 나아가 경상남도 시찰사(時察使), 칠곡 군수, 대구 판관, 청도 군수를 지냈다. 저서로 「역수설(易數說)」, 「주지유언(周旨孺言)」 등과 후학들이 펴낸 『일화선생문집』이 있다. 최현달의 「대구십경」에서 금호강 관련 시를 소개하기로 한다.

제1경 「금호강의 뱃놀이」

금호강 봄물 올라 배를 띄워 노니는데/피리소리 북소리에 흰 갈매기는 놀라서 달아나네. /차라리 가을 달 밝은 밤에 고깃배 올라타고/흰 갈매기와 벗을 삼아 한가로이 놀리라.

제8경 「노원에서 나그네를 전송하며」

노원(櫓院)의 버드나무 해마다 푸르니/예로부터 이곳은 이별하는 곳이라네./왜가리 동으로 가고 제비는 서로 날고/주막집 술병은 이별주로 모두 나가네.

[『대구팔경시집』에 나타난 금호강 풍경]

『대구팔경시집』은 1949년 봄에 대구향교에 출입하던 선비들이 당시 대구의 명승지 8곳을 선정해 그림을 그리고 운자를 내어 지은 한시를 모았던 한시집이다. 『대구팔경시집』에는 금호강과 관련된 시를 많은 사람들이 읊었다. 그 가운데 오정(梧亭) 김연석(金淵錫)이 지은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제3경 「금호어적(琴湖漁笛)」[금호강의 어부 피리]

강중풍랑근하여(江中風浪近何如)[강물에 이는 풍랑은 너무나 가깝고]/적리호산저태허(笛裡湖山抵太虛)[호산의 피리소리는 태허에 닿았네.]/

수곡성성귀차만(數曲聲聲歸且晩)[몇 곡조 소리에 귀가마저 늦으니]/어량십리흥유여(漁梁十里興猶餘).[십리 뻗은 고기잡이 다리엔 흥이 넉넉하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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