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포란형의 동화사, 명당을 지키려 풍수 조치를 하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1455
영어공식명칭 Donghwasa Temple of bonghwangporanhyeong, he fit it for feng shui(geomancy) to protect the propitious sit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정의]

봉황포란형 명당에 자리잡고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동화사.

[개설]

동화사(桐華寺)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봉황형 터는 대단히 상서로운 길지로 봉황이 날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동화사에는 봉황을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 풍수적 조치로 여러 가지 비보(裨補)를 하였다.

[풍수지리설, 명당을 찾아 부귀영화를 염원하다.]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은 음양론(陰陽論)과 오행설(五行說)을 바탕으로 땅에 관한 이치, 즉 지리(地理)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주역』을 주요 준거로 삼는다. 풍수지리설의 궁극적인 목적은 길한 것을 좇고 흉한 것을 피하는 추길피흉(追吉避凶)이다.

풍수의 기본 원리는 땅속에는 정기(精氣)[또는 생기(生氣)]가 일정한 경로를 따라 돌아다니는데, 이것을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이다. 풍수는 흔히 양택풍수(陽宅風水), 양기풍수(陽基風水), 음택풍수(陰宅風水)로 나눈다. 땅속의 정기를 접한 사람은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정기가 모인 곳인 혈(穴)에 집을 지으면 집안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 양택풍수이고, 마을이나 도읍터를 정기가 왕성한 곳에 정하면 번성하게 된다는 것이 양기풍수이다. 그리고 정기가 넘치는 곳에 조상의 무덤을 쓰면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음택풍수이다. 산 사람은 땅 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땅의 생기를 간접적으로 받는 반면, 죽은 자는 땅 속에서 직접 생기를 받아들이므로 산 사람보다는 죽은 자가 생기를 더 많고 확실하게 받는다고 여긴다. 나아가 죽은 자가 받은 생기는 자손대대로 이어진다고 여겼는데, 이것이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論) 또는 친자감응론(親子感應論)이다.

우리나라 풍수는 크게 상지론(相地論)[또는 택지론(擇地論)]과 비보론(裨補論)으로 이루어져 있다. 풍수는 일반적으로 산(山), 수(水), 방위(方位)로 대별되는 자연적 요소의 상호조합으로 구성되는데, 비보풍수는 여기에 문화 요소를 더하여 4자의 상호조합으로 구성된다. 상지론은 정기가 넘치는 명당·길지가 어디인지 감별하고 찾는 논리체계로 간룡법(看龍法), 장풍법(藏風法), 득수법(得水法), 정혈법(定穴法), 좌향론(坐向論), 형국론(形局論)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완벽한 조건을 두루 갖춘 명당·길지를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명당이 분명하지만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흠결(欠缺)을 보완하고 적지(適地)로 조성하는 논리체계가 비보론이다.

간룡법이란 조산(祖山)으로부터 혈장(穴場)에 이르기까지의 산맥의 흐름을 살피는 것이다. 간룡의 용은 산 또는 산맥을 가리킨다. 장풍법은 모여든 정기를 잡아두려는 것으로 명당 주위의 지세인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가 대종을 이룬다. 득수법은 물을 얻는 방법으로 땅속의 정기는 물줄기를 타고 옮겨 다니므로 물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기가 있다는 것이다. 정혈법은 정기가 집중해 있는 곳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상지론의 요체이고, 좌향론은 방위에 관계되는 것으로 좌는 혈의 뒤쪽을, 향은 앞쪽을 향하는 위치이다. 그리고 형국론은 산의 모양이나 물의 흐름 등을 사물에 비겨 표현하는 것이다.

[최고의 명당, 봉황형]

풍수지리설에서는 누운 소형[와우형(臥牛形)], 떠가는 배형[행주형(行舟形)], 물에 뜬 연꽃형[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둥지에 든 봉형[봉귀소형(鳳歸巢形)], 반달형(반월형[半月形]) 등을 명당(明堂)·길지(吉地)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봉황형(鳳凰形)을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는다.

봉황은 상상 속의 신비로운 새이다.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키는 6척가량이며 목과 날개는 오색 빛이 찬란하고 다섯 가지의 울음소리를 내며 성품이 어질고 청결하여 새 가운데 왕으로 여겼다. 성인군자가 나야만 봉황이 나타난다고 하고, 봉황이 한 번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고 한다. 봉황은 천자(天子)를 상징하여 천자의 궁문과 수레 등에 봉황을 장식하여 봉궐(鳳闕), 봉문(鳳門), 봉거(鳳車), 봉련(鳳輦), 봉여(鳳輿)라고 했다. 또한 봉황을 상서로운 새로 여겨 좋은 벗을 봉려(鳳侶), 아름다운 누각을 봉대(鳳臺)·봉루(鳳樓), 아름다운 피리소리를 봉음(鳳音)이라고 하였다.

봉황은 모든 새의 우두머리이므로 풍수에서도 봉황형을 최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봉황의 모양을 닮은 터나 봉황의 기운이 깃든 터를 최고의 명당으로 여겼다. 우리나라에는 비봉산(飛鳳山)처럼 ‘봉황’이 붙은 산 이름이 많은데, 그런 산은 산세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좋은 정기가 서려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봉황과 관련된 마을이나 집터로 알려진 명당도 상당히 많다. 봉황형을 명당으로 보는 것은 신령스러운 봉황이 나오는 곳에는 성인과 군자가 태어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봉황형의 형국은 다양한데, ‘날아가는 봉황형(飛鳳形)’, ‘알을 품은 봉황형’[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 ‘봉황이 둥지로 돌아오는 형’[봉귀소형(鳳歸巢形)], ‘봉황 둥지형’[봉소형(鳳巢形)]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외에 ‘춤추는 봉황형’[봉무형(鳳舞形)], ‘오동나무에 깃든 봉황형’[오동귀서형(梧桐歸棲形)], ‘아침에 우는 봉황형’[봉명조양형(鳳鳴朝陽形)], ‘봉황이 편지를 물고 있는 형’[단봉함서형(丹鳳含書形)], ‘봉황의 꼬리형’[봉미형(鳳尾形)], ‘숲에서 잠든 봉황형’[비봉투림형(飛鳳投林形)] 등도 봉황형 길지이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鳳凰非梧桐不棲),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鳳凰非竹實不食)고 한다. 따라서 봉황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죽실과 오동나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봉황형 길지에는 봉황이 영원히 떠나지 않고 그곳에 머물기를 바라는 뜻에서 대나무와 오동나무를 많이 심는 등 풍수적 조치인 비보를 하였다.

봉황형 명당에 풍수적 조치를 한 경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선산의 진산(鎭山)은 비봉산(飛鳳山)으로 봉황을 머물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비보를 하였다. 선산읍 사방마을을 죽장(竹杖)이라 하여 대나무를 심었고, 고아의 황당산(凰堂山)에 봉황이 날아갈 수 없도록 그물을 친다는 의미로 마을 이름을 망장리(網障里)라 했으며, 봉은 수컷이고 황은 암컷이므로 물목동네 뒷산을 황산(凰山)이라고 하여 짝을 맞춰주기도 했다. 또한 화조리(花鳥里)는 봉황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온갖 꽃과 새가 있다는 뜻이며, 영봉리(迎鳳里)는 봉황을 맞이한다는 뜻이며, 무래리(舞來里)는 봉황이 날아오는 것을 뜻하는 마을 이름이다. 오로리의 산도 봉황을 보호하고 잡새들이 날아드는 것을 막기 위해 매를 놓아두었다는 뜻으로 응방산(鷹放山)이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화조리 남쪽 들판에 다섯 개의 봉황 알을 상징하는 오란산(五卵山)을 조성하여 비봉산의 기운을 고을에 머물게 하는 한편 지기(地氣)가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순흥의 진산도 비봉산으로, 봉황이 날아가는 것을 막고, 고을 앞의 허술한 지세를 보완하기 위하여 남쪽에 3개의 알봉[조산(造山)])을 만들었으며, 곁에 봉서루(鳳棲樓)를 세우고 둘레에 오동나무숲을 가꾸었다.

경상남도 진주시와 함안군에도 풍수적 조치를 하여 봉황이 영구히 그곳에 머물게 하려고 했다. 진주시의 진산은 비봉산으로 안산(案山)인 망진산(網鎭山)은 봉이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물을 의미하고, 또 까치가 있으면 봉이 날지 못한다고 여겨 들 이름을 작평(鵲坪)이라고 불렀다. 객사 앞 누각의 이름을 봉명루(鳳鳴樓)라 하여 봉이 우는 상스러운 일이 있도록 기원하고, 그 동편 집을 조양각(朝陽閣)이라 하여 아침의 서기를 맞도록 하였다. 가까운 골짜기에는 봉의 조롱(鳥籠)이 된다는 대롱사(大籠寺)와 소롱사(小籠寺)를 두었으며, 비봉산에서 바라보이는 마을 이름을 죽동(竹洞)이라고 하고 봉의 먹이인 대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함안에는 정구(鄭逑)가 고을 원으로 있을 때 읍치의 뒷산이 비봉형(飛鳳形)이라고 해서 봉란(鳳卵)을 만들고 동북방에 벽오동 천 그루를 심고 대숲을 조성하였다.

[동화사, 봉황포란형 명당에 자리 잡다.]

『금낭경(錦囊經)』에는 “산봉우리가 높고 험준하면 그 아래 구불구불한 뱀이 굽어서 돌아 지나가듯이 자취가 드러나는데, 산이 명당을 포근하게 안은 듯, 문을 자물쇠로 잠근 듯, 좌우의 산이 마주 응하듯, 높은 산이 우뚝 솟아 빼어난 듯, 숨은 듯 드러난 듯해야 전기(全氣)의 땅이 된다.”고 하였다. 전기의 땅이 바로 온전한 기운이 갈무리된 명당이다.

팔공산의 주능선은 험준하지만 남으로 뻗어 내린 용맥이 내려오면서 점차 부드러워지다가 동화사 대웅전 뒤편에 멈춰 길지를 이루었다. 동화사가 자리 잡은 터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황포란형으로 대단히 상서로운 곳이다. 봉황형은 주로 산세가 단정하고 수려하며, 좌청룡과 우백호가 여러 겹으로 명당을 잘 감싸 안아 좋은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청룡이나 백호가 여러 겹으로 에워싸면서도 터의 특성이 유순함과 단정함을 잃지 않을 때 봉황에 비유되는 것이다.

동화사가 봉황형 명당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도 봉황이 떠나지 않고 영원히 머물기를 염원하는 뜻에서 여러 가지 비보를 하였다. 일주문(一株門)에 해당되는 문을 봉황문(鳳凰門)이라 하고, 대웅전으로 진입하는 누각의 이름을 봉황이 깃드는 누각이란 뜻의 봉서루(鳳棲樓)라고 하였다. 봉서루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는 봉황 알을 상징하는 둥근 알 3개를 올려 두었다. 그리고 1808년(순조 8)에 세운 인악대사비(仁嶽大師碑)는 받침돌이 일반적인 거북 모양이 아니라 봉황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모두 봉황포란형 형국에 맞춰 비보를 한 것이다. 그리고 대웅전 뒤편에는 대나무 숲이 무성하며, 지금은 오동나무가 많지 않지만 신라 때는 오동나무가 아주 많아 애초에 절 이름도 오동나무 숲이란 뜻의 동수(桐藪), 혹은 오동나무 절이란 뜻의 ‘동사(桐寺)’로 불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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