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1233
영어공식명칭 Lunar New Year’s Day
이칭/별칭 원단(元旦),원일(元日),세수(歲首),연수(年首),신일(愼日)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철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풍속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일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에 지내는 세시풍속.

[개설]

은 새해의 첫날인 음력 1월 1일이다. 새해의 첫머리라는 뜻에서 원단(元旦),원일(元日), 세수(歲首), 연수(年首) 등이라고도 한다. 에는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이니 경거망동을 삼가야 한다고 하여 신일[愼日, 근신하는 날]이라고도 하였다. 에는 설빔이라고 하여 새 옷을 입고 조상에게 정조차례(正朝茶禮)를 지낸다. 그리고 웃어른에게는 세배(歲拜)를 드린다. 설음식으로는 떡국을 만들어 먹는다.

[연원 및 변천]

에 대해서는 7세기에 쓰여진 중국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 신라에서 을 보냈다는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다. “매년 정월원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인다.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라고 적혀있다. 『고려사』에 고려 9대 명절 중 하나로 원단[元旦, 설날 아침]을 소개하고 있다. 19세기에 쓰여진 『동국세시기』에도 원일에 행하여지는 다양한 풍속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은 고대로부터 중요한 세시풍속으로 자리를 잡아 왔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대표적인 명절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절로 자리 잡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이 다가오면 새 옷을 만들어서 미리 준비하였다가 설날 아침이 되면 가족들에게 입힌다. 설날 밤에는 귀신이 내려와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맞는 것이 있으면 신고 간다. 이때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해에 죽는다고 하여 신발을 방에다 들여놓는다. 설날부터 보름 사이에는 과일나무가 있는 집에서는 그 해의 과일 풍년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두는 ‘나무 시집보내기’ 풍습이 있다. 설날 이른 새벽에 조리를 사두면 1년 동안 복이 끊이지 않고 들어 온다고 하여 복조리라 부르고 이때 각 가정에서는 1년 동안 쓸 조리를 산다. 일찍 살수록 좋다는 속신이 있어 남보다 먼저 사려고 한다. 아침에는 큰집부터 작은집 순서로 친족집단별로 함께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다 지내면 마을의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러 다닌다. 음력 1월 3일~4일까지는 세배를 다녔고 길게는 음력 1월 내내 주변 지역의 친지들에게 세배를 하러 다녔다.

[동구 지역 설날 문화]

대구광역시 동구 백안동의 경우에는 집집마다 세배를 하러 다니는 것이 번거롭다 하여 마을회관[동회관]에 모여서 합동 세배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설날추석과 함께 가족주의에 편승하여 비교적 그대로 전승되어 왔지만, 서구화와 도시화로 인해 그 모습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도 1960년대부터 대구의 산업화로 인한 이촌 향도로 타지역의 이주민이 늘어나고 1990년대부터 대단위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설날의 지역적 특색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팔공산 산간지역의 경우에도 1990년대 이후에는 에 행했던 고유의 풍습들이 거의 사라졌고 외지인들의 이주가 늘어난 뒤로는 마을 단위로 함께했던 행사들도 거의 없어졌다.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위치한 옻골마을경주최씨(慶州 崔氏) 광정공파(匡靖公派) 종가집의 경우에도 떡을 별도로 올리지 않는 떡국 중심의 차례상을 준비하고 4대 조상과 불천위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현재까지 전통을 지키고 있지만, 그 이외의 과거에 행했던 풍속은 1980년대가 되면서 거의 행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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