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870
한자 佛敎
영어공식명칭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병선

[정의]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전파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

[개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로, 372년(소수림왕 2)이며,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신라는 가장 늦은 527년(법흥왕 14) 불교가 공인되었다. 대구광역시 동구의 팔공산은 신라 5악의 하나인 중악(中岳)으로 신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파되기 전부터 사찰이 건립되었다는 구전(口傳)이 있을 정도로 불사가 많이 일어난 지역이다. 현재 동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찰의 수는 약 160여 개로 종파는 대부분 조계종(曹溪宗)이며, 6개 전통 사찰을 보유하고 있다.

[삼국시대]

현재 전해지는 동화사(桐華寺) 연기설화(緣起說話)에 따르면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 가장 먼저 창건된 사찰은 동화사(桐華寺)북지장사(北地藏寺)로 493년(소지왕 15)이다. 동화사는 『동화사사적기(桐華寺寺蹟記)』(1727)에 의하면 493년(소지왕 15)에 보조(普照)가 창건하였다고 하고, 『동화사사적비(桐華寺寺蹟碑)』(1931)에는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가, 832년(흥덕왕 7)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고 동화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불교 공인 이전에도 신라에 불교 전파와 관련된 연기설화들이 전해지고 있어 소지왕 당시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도 있지만, 신라 소지왕 때는 아직 신라에 불교가 전래되기 전이므로 심지왕사동화사의 개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지장사는 신라 소지왕 7년(493)에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였다는 북지장사 연기설화와,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의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1191년(명종 21)에 창건하였다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1191년(명종 21)에 창건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그다음으로 부인사(符仁寺)는 여왕이 친히 신라의 오악(五岳) 중에서 중악팔공산에 와서 기도하니 도인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어 국난을 물리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루라 했고, 이에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고 이듬해 부인사를 창건하였다는 연기설화가 전한다. 또 옛날부터 선덕묘(善德廟)라는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로 추측되지만, 개창 시기나 연혁은 알려지지 않았다.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에는 관음사(觀音寺), 미리사(美里寺), 금당암(金堂庵), 관암사(冠巖寺), 파계사(把溪寺), 비로암(毘盧庵), 염불암(念佛庵) 등 많은 사찰이 창건되었다. 통일신라시대 팔공산 지역의 사찰 창건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배경은 아마도 통일 이후 넓어진 영토와 늘어난 인구, 안정된 정치와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미래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불교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사찰 창건도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구팔공산도동낙가산관음사사적비명(大邱八公山道洞洛迦山觀音寺蹟碑銘)』(2006)에 관음사는 670년(문무왕 10)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전통사찰로, 9세기 초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에 고려시대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의 어록에 관음사가 있다고 하였음을 보아 고찰인 관음사가 있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미리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연기설화가 전해지기는 하나,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미리사(美理寺)’,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사(高麗史)』에는 ‘미리사(美利寺)’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미리사해안현에 있으며, “해안(解顔)을 미리(美理)”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는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의 공산전투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왕건미리사 앞 전투에서 자신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신숭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이곳 미리사에 위패를 봉안하여 명복을 빌게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금당암은 현재 동화사의 선원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심지왕사동화사를 창건하는 무렵에 함께 개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에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고 하고,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는 1465년(세조 11)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극락전 기단의 구조나 극락전 앞 상단 축대 아래쪽 정면 중앙에 있는 배례석(拜禮石)은 모두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다. 또 『동화사사적비』에 9세기 후반에 금당암 삼층석탑을 조성하였다고 함을 보아 금당암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파계사는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 및 팔공산파계사사적비(八公山把溪寺事蹟碑)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애장왕 5년(804)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 기록이 없다가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전소된 이후에 오히려 불사가 활발히 이루어져 중흥을 맞게 되었다.

비로암은 통일신라시대 863년(경문왕 3)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 그런데 『동화사사적기』에는 지금의 ‘비로암’을 ‘비로전(毘盧殿)’이라 이름하고, 1591년(선조 25)에 서일화주(瑞一化主)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비로암에 남아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나 삼층석탑의 성보 유물로 볼 때 창건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동화사와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비로암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호(舍利壺)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통일신라 경문왕 3년(863)에 민애왕의 명복을 빌고자 이 탑을 세웠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863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화사사적비』에 의하면, 염불암동화사 산내 암자로 통일신라시대 928년(경순왕 2) 영조선사가 창건하고, 934년(경순왕 8)에 영조선사가 중창하였으며, 고려시대 보조국사가 중창하였다. 관암사는 태고종 소속 사찰로 신라시대 고찰이라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백암대종사(栢巖大宗師)가 기도 중 불상을 발견하고 터만 남은 곳에 중생들의 안식처가 되도록 서원(誓願)을 세우고 1962년 3월에 재창건한 전통사찰이다.

[고려시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는 기록상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은 없다. 고려시대는 불교 전성시기로 사찰의 창건이 매우 활발하여 국가적인 비보사찰(裨補寺刹)만 삼천 곳에 건립될 정도였다. 고려의 수도와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고려시대 창건 사찰이 없다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고려시대 사찰의 창건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는 상태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조선 초기 기록으로 추정할 뿐이다. 조선시대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팔공산에는 동화사·파계사·부인사·자화사(慈華寺)·보리사(菩提寺)·미리사·은해사(銀海寺)·거조사(居祖寺)·원명사(圓明寺)·안흥사(安興寺)·상원사(上元寺)·부귀사(富貴寺) 등 12사(寺)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현재 행정 구역인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사찰은 동화사·파계사·부인사·미리사 등으로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보다 오히려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후기인 1203년(신종 6)에 무신 정권에 반대하는 ‘부인사 승도의 난(僧徒의 亂)’으로 사찰 창건이나 지원에 악영향을 받기도 하였으며, 몽골과 긴 전쟁으로 사찰의 존재가 어려워진 영향도 있으리라 추정된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로 사찰은 점차 4대문 밖으로 밀려나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도첩제(度牒制)의 실시로 승려의 수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정조 이후부터 사찰의 신창(新創)이 금지되면서 사찰 창건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시대 동구 지역에 창건된 사찰은 내원암(內院庵), 부도암(浮屠庵), 성전암(聖殿庵), 양진암(養眞庵) 등으로 모두 조선후기에 창건되었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전기에는 사찰 창건이나 불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가 임진왜란 이후 사찰의 창건이나 중수·중창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동화사임진왜란 때는 유정(惟政)이 승군을 지휘하였던 곳이며, 헌종의 아버지 익종(翼宗)의 능인 수릉(綏陵)의 향탄봉산(香炭封山) 및 조포사(造泡寺)로 기능하였다. 파계사영조의 원당(願堂)으로 지정되어 이 지역 불교 중흥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이 지역의 사찰은 동화사·파계사·부인사·미리사 등 4곳에 불과하였으나, 1832년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는 동화사와 속암(屬庵)인 내원암·염불암·양진암·삼성암(三聖庵)·부도암·금당암·부인암(夫人庵)·하선암(下仙庵)·북지장암(北地藏庵)·청련암(靑蓮庵)·도명암(道明庵) 등 12사 및 파계사와 속암인 금당암·칠성암(七星庵) 등 3사를 포함하여 모두 15개 사암(寺庵)이 존재하였다. 이 중에서 새로 창건된 사찰은 모두 산내암자이지만, 말사가 암자로 퇴락한 사찰도 있다. 그러나 동화사나 『파계사의 사적기』를 보면 조선후기에는 새로운 사찰의 창건보다는 기존 사찰의 중수·중창과 같은 불사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내원암동화사의 산내암자로 『동화사사적기』에 의하면, 조선시대 1626년(인조 4)에 유찬(留贊)이 창건하고, 1827년(순조 27)에 무월대사(霧月大師)가 재창하였으며, 1937년 보월대사(寶月大師)가 삼창한 비구니 참선 도량이다. 부도암동화사의 산내암자로 『동화사사적기』에 의하면, 조선시대 1658년(효종 9) 도오(道悟)가 창건하였고, 1790년(정조 14) 춘파(春坡)가 중수하였으며, 현재는 비구니 참선 도량이다. 성전암파계사의 산내암자로 창건은 미상이나, 파계사 연기설화에 의하면, 파계사현응대사(玄應大師)영조 탄신 기도로 왕실의 원찰(願刹)이 되고 왕실의 위패를 모시는 기영각(祈永閣)이 1696년(숙종 22)에 조성되면서 함께 건립되었다고도 한다. 창건 이후 한동안 사적의 기록 없다가 『파계사사적기』에 1857년(철종 8) 계정상인(戒正上人)이 성전암을 보수하였으나, 1914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다음 해인 1915년에 보령(保寧)·관해(寬海) 등이 중창하였다. 양진암은 『동화사사적기』에 의하면, 조선시대 1743년(영조 19)에 무주대사(無住大師)가 창건하고, 1898년(광무 2)에 춘파화상(春坡和尙)이 중수하였으며, 현재는 비구니 참선 도량이다.

[근·현대]

1905년에 승려의 도성출입이 전면 허용되면서 사찰 창건도 보다 용이하여 졌으며, 일본 불교의 침투를 물리친다는 민족 종교 의식으로 불교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반면에, 대구[대구광역시] 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 불교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과 더불어 일제의 종교 탄압의 상징이었던 신사(神社)가 헐리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진각종(眞覺宗)을 비롯하여 성덕도(聖德道), 대한도덕회(大韓道德會), 도덕회(道德會), 일관도(一貫道) 등 신종교 교단이 대구광역시·경상북도를 중심으로 성립 발전하고 있다. 이 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창건된 사찰은 많지만 그중에서 통천사(通天寺), 아미사(阿彌寺), 보은사(報恩寺), 대비암(大悲庵), 도림사(道林寺), 보림사(寶林寺), 시복심인당(施福心印堂), 만불회 포교원(萬佛會布敎院) 등은 모두 광복 이후에 창건된 사찰이다.

통천사는 1953년 이운경 화상이 옛 구산사 터에 통천사를 창건하고, 그해 요사 1동을 건립하여 팔공산 선본암 아미타불 1위를 가져와 봉안하였으며, 1955년에 일주문을 건립하고, 1956년에 법당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1968년 승려 태일에 의해 법당이 중건되었으며, 2002년에는 선지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미사는 1960년경에 창건되었으며, 현재의 아미사는 통일신라시대에는 미리사(美里寺),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지묘사(智妙寺)가 존재하였던 곳이라고도 한다. 보은사는 태고종 종단 사찰로 1964년에 어떤 보살이 선대 조상의 극락왕생을 바라거든 갓바위에 절을 창건하라는 현몽을 받고 현재 위치에 아미타불 도량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1972년에 재창건되고, 1988년에 현재 주지 혜담 대종사가 주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비암파계사의 산내암자로 참선 도량이다. 1987년에 토굴과 같은 초가집이 있던 것을 법준이 불사를 일으켜 2000년에 현재와 같은 선원과 대웅보전(大雄寶殿) 및 요사를 건립하였다. 도림사환성산 정족봉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로서 대구지역의 포교를 목적으로 1996년 도림법전 대종사(道林法傳大宗師)가 세운 대표적인 힐링(healing) 사찰이다. 보림사는 비구니 근우(根宇)가 2003년에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大雄殿), 삼성각(三聖閣), 요사 등 전각을 건립하고 새롭게 사역(寺域)을 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복심인당은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 있는 진각종의 사찰이다. 진각종은 1947년 회당 손규상 대종사(悔堂孫珪祥大宗師)에 의해 창도되었고,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시복심인당은 1962년에 창건되었으며, 1991년에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여 도심 포교를 하고 있다. 만불회 포교원은 만불 회주 승려 학성이 1981년에 만불산(萬佛山) 건립을 구상하면서 기존의 불교와 다른 현대 불교의 서원을 이루고자 1987년 6월에 최초로 대구에 포교원을 개원하면서 시작되었다. 만불회 포교원은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만불사의 대구 포교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015년 7월에 재단법인 만불회는 조계종 종단에 등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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