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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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인 홍여하가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소재한 백원서원에 배향된 서시립의 장수를 축하하며 지은 시. 홍여하(洪汝河)[1620~1674]의 본관은 부계(缶溪)로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木齋) 혹은 산택재(山澤齋)이다. 홍여하는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이 되었다가 대교(待敎), 봉교(奉敎) 등을 거쳐 사간원 정언에 올랐다. 정언으로 있을 때 효종에게 시사(時事)를 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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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문신 곽후창(郭後昌)의 자는 흥숙(興叔), 호는 농포(農圃), 본관은 현풍(玄風)이다. 아버지는 생원 곽용(郭涌)이고 어머니는 분성김씨(盆城金氏)이다. 조부는 임진왜란 때 팔공산에서 창의(倡義)한 통정대부 곽재겸(郭再謙)이다. 곽후창은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선생의 문인이다. 학문은 성경(誠敬)을 근본으로 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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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성리학과 성리학자 그리고 유적·유물. 대구광역시 동구는 시내의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신암동에서 동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안심지역을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팔공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563년(명종 18)에 건립된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 성리학의 출발점이자 산실이었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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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있는 달성서씨 문중의 서원. 백원서원은 효자로 이름이 났던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1578~1665]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서시립의 자는 입지(立支), 호는 전귀당이며, 달성서씨 감찰공파 파조인 서근중의 6세손이다. 서시립의 호 전귀당은 임진왜란 이후 오봉 이호민이 왕자 태실사(胎室使)로 대구지역에 들렀다가 서시립의 효행을 듣고 지어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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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효자. 서시립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입지(立之), 호는 전귀당(全歸堂)이다. 고려 때 판도판서를 지냈으며 달성군에 봉해진 서진(徐晉)의 후손이다. 서시립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한강(寒岡) 정구(鄭逑),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지극정성으로 조부모와 부모를 봉양했는데, 특히 어떤 음식이라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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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위치한 전귀당 서시립에 얽힌 이야기.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글누림출판사, 2009) 김기현,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문화원, 2013) 서시립[1578~1665]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방손[방계(傍系)에 속하는 혈족의 자손]이다. 서시립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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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출신 문인 학자. 서우곤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천약(天若), 호는 향려(香廬)이다. 고려 때 판도판서를 지낸 서진(徐晉)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의 효자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의 8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원복(徐元復), 할아버지는 서합(徐柙), 아버지는 서복렬(徐馥烈),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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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의 유교와 유학자, 대표적인 유적.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교는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중년에 팔공산 자락에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으로 이거(移居)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거한 것은 그의 외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이전인 문종 때에 문과에 합격하여 좌찬성을 역임한 정수충(鄭守忠)이 있었으나 그는 오랫동안 한양에 기거하였으며 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