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200556
한자 徐宇坤
영어공식명칭 Seo Ugon
이칭/별칭 천약(天若),향려(香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황동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8년 8월 17일연표보기 - 서우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2년 - 서우곤 통정대부 품계에 오름
몰년 시기/일시 1911년 5월 18일연표보기 - 서우곤 사망
거주|이주지 서우곤 거주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남성
본관 달성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출신 문인 학자.

[가계]

서우곤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천약(天若), 호는 향려(香廬)이다. 고려 때 판도판서를 지낸 서진(徐晉)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의 효자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의 8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서원복(徐元復), 할아버지는 서합(徐柙), 아버지는 서복렬(徐馥烈),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처사 이권(李綣)의 딸이다. 부인은 단양우씨(丹陽禹氏)로, 우해적(禹海績)의 딸이다.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서진구(徐鎭九)이며 딸은 채택기(蔡澤基)에게 시집갔다.

[활동 사항]

서우곤은 1828년(순조 28) 8월 17일에 태어났으며,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향산(香山)[지금 도동 측백나무 숲이 있는 산] 남쪽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성장하면서 공령문자(功令文字)[문과시험에서 보이던 여러 가지 문체]에 뛰어나 도동 일대뿐 아니라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명성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끝내 과거 시험에 급제하지 못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의 불합격을 안타까워하였다고 한다. 1856년(철종 7)에 아버지 서복렬이 세상을 떠나자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른 뒤에 홀로 남은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서우곤이 살던 곳에 향산(香山)이 있었는데 산수가 매우 아름다웠다. 그래서 자신의 호를 ‘향려(香廬)’라고 부른 뒤에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만든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를 모방하여 향리에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사람들과 함께 ‘향산구로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해 늦봄에 향산에 있는 산방(山房)에 모여 며칠 밤낮으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시문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서우곤은 1902년 노인을 우대하는 은전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올랐는데, 서우곤은 늙은이로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였다. 1911년 5월 18일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니 향년 84세였다.

[학문과 저술]

서우곤의 저술로는 2권 1책의 『향려유고(香廬遺稿)』가 있다.

[묘소]

서우곤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범증산(泛甑山)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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