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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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문화원에서 2007년에 발간한 향토지. 이동읍[편찬 당시는 이동면]은 용인시 3개구의 29개 읍면동 중 처인구에 속하는 읍으로 천리, 묵리, 서리, 덕성리, 시미리, 화산리, 송전리, 시미리, 묘봉리의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특히 역사 유적인 서리에 신라 말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러 백자를 생산하였던 서리백자요지가 있어 우리나라 도예사 연구에 큰 자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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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용인 지역에서 교육은 오래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실시가 되었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후이다. 조선시대에는 공적 교육기관인 향교나 재지 사족들이 선현의 제향을 위해 세운 서원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용인 지역에는 포은 정몽주 등 많은 선현의 유택이 있다. 따라서 그 학덕을 따르기 위해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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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놓은 것. 비는 내용에 따라 불교유적과 관련된 탑비(塔碑)와 유교유적과 관련된 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탑비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이고, 묘비와 신도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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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경기도 용인 지역의 사설 교육 기관. 우리나라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조선의 서원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서 큰 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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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성씨의 세거지와 집성촌. 성(姓)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일신라 이전에 일반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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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재가 지은 심곡서원의 규칙서. 「도암 이재 학규」로도 불리는 「심곡서원 학규」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재(李縡)[1680~1746]가 지은 심곡서원의 규칙서이다. 현재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 강당에 현액되어 있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인 1650년(효종 1) 사액(賜額)된 서원으로,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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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재가 조광조가 용인에 심은 은행나무를 소재로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심곡서원에 걸린 시판의 운에 따라」는 정암 조광조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에 작자의 감정을 이입하여 추모의 정을 술회한 작품이다. 심곡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으로,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를 봉안한 곳이다. 경기도 용인시에는 정암 조광조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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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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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조선 전기에 세워진 향교. 용인향교는 1400년(정종 2)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용인이란 지명이 1413년(태종 13)에 생겼으므로 그 이후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1986년 5월 31일 용인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9월 10일에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용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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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암 이재가 지은 향교·서원 등에서 지켜야 할 학칙서. 『용인향숙절목(龍仁鄕塾節目)』은 향교나 서원 등의 교육·의례를 행하는 학칙서로, 이재(李縡)[1680~1746]의 『도암집(陶庵集)』제25권 잡저편에 기록되어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우봉이씨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절목에는 용인현의 양 서원, 즉 충렬서원과 심곡서원, 그리고 관내의 서당에서 강회(講會)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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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정을 시조로 하고 이유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우봉이씨(牛峰李氏)의 선계는 신라 때 공신이 된 이두창(李頭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후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져서 이공정(李公靖)을 시조로 삼고 있다. 이공정은 고려 명종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벽상삼한공신(壁上三韓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잠성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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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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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 유복립의 정려각. 유복립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1558년(명종 13)에 출생하여, 종부시주부(宗簿侍主簿)로 관도에 올랐다. 유복립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의병장 김천일 등과 함께 순절하였다. 1719년(숙종 45) 대종백(大宗伯) 민진후(閔鎭厚)의 주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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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이재가 지은 임진왜란 의병장 유복립의 정려기.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유복립(柳復立)[1558~1593]에게 정려의 은전이 내려지자, 후손 유심(柳深)의 간청으로 이재(李縡)[1680~1746]가 지은 정려기(旌閭記)이다. 글씨는 이조참판 신만(申晩)이 썼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유복립 정려각 안에 현판으로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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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기계. 자는 사호(士鎬), 호는 대재(大齋)이다. 권상하(權尙夏)·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유일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 자의(諮議)가 되었다. 그 후 사헌부 지평, 집의, 경연관 등을 역임하였고, 이조·형조·호조의 참의를 거쳐 돈녕부도정에 이르렀다가 사직한 후 안성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782년(정조 6)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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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추(士秋), 호는 귀락당(歸樂堂)·행호거사(杏湖居士)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후에 사헌부 지평(持平)에 추증된 중부(仲父) 이흡(李翕)의 후사가 되었다. 부인은 안동김씨로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의 딸이다. 효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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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하(士夏)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병조판서를 지낸 이만성(李晩成)의 형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아버지이다. 외가인 부안에서 출생하였으며, 10세 전에 경사(經史)에 통달하는 총명함을 드러내었다. 1675년(숙종 1)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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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일경(一卿).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인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이문주(李文柱)의 손자이며, 금구(金溝) 이준생(李俊生)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후(李詡)이며, 부인은 통덕랑(通德郞) 안두극(安斗極)의 딸이다. 이수민(李壽民)[1651~1724]은 숙종 대에서 경종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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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이재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영조의 탕평정치(蕩平政治)에 맞선다는 이유로 자주 파직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용인의 한천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등 정계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한천(寒泉). 진사 이만창(李晩昌)의 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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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인 이재의 초상화. 이재 초상은 초상화의 전신(傳神)기법을 매우 잘 포착한 뛰어난 그림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특히 관복이 아닌 일반 편복을 입고 있는 초상화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안면과 신체의 비율이 적절하여 능숙한 화가의 솜씨가 엿보인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재(李縡)[1680~1746]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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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학자. 이행상은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학자이다. 후대에 학문 성과를 인정받아 송단(宋湍)·성덕명(成德明) 등과 함께 이재 문하의 삼처사(三處士)로 불리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골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부터 사서삼경에 통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리(公履), 호는 왕림(旺林). 문강공(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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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유생. 정규채(鄭奎采)는 한천서원(寒泉書院)이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는 데 기여하였다. 정규채 등은 이재(李縡)가 제향된 한천서원의 사액을 바라는 상소를 올렸으며, 당시 영중추부사였던 이병모(李秉模)의 추천으로 한천서원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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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재가 조광조를 모신 정암사를 배알하고 나서 지은 칠언절구의 한시. 「정암사(靜庵祠)」는 이재(李縡)[1680~1746]의 문집인 『도암집(陶庵集)』에 수록되어 있는데, 1987년 『용구문화』의 「옛 문헌 속의 용인」에서 「정암사당에서」로 번역 소개되었다. 정암사 주변의 경관을 산수화를 그리듯 묘사하고, 정암 조광조 선생에 대한 추모의 정을 술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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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1929년 간행된 조광조의 문집. 『정암선생문집(靜庵先生文集)』의 정고본(定稿本)은 조선 중기에 이기주(李箕疇)가 수집한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유문(遺文)·사적과 이선(李選)이 수집한 유문, 5대손 조위수(趙渭叟)의 가장초본(家藏草本)을 모아 박세채(朴世采)가 교정·편차하고 부록과 연보를 붙인 것을 말한다. 그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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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이곳에 찬 샘이 있으므로 샘골·생골 또는 천동이라 하였다. 본래 용인군 상동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통적골·구시울·노루실을 병합하여 천리라 하여 이동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도농복합으로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었고, 2005년 10월 31일 구가 신설되면서 처인구 이동면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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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초하리와 부곡리를 병합하여 초하리에서 ‘초’자와 부곡리에서 ‘부’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연혁대장』에는 약 200여 년 전 승지를 지낸 정건의 분묘가 ‘달리는 말이 안장을 벗어놓고 풀을 향하여 나가는 지형(走馬脫鞍 向草之形)’이라는 뜻에서 ‘초’자를 따고 인근 마을의 지명을 합하여 초부리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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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대(子大), 호는 이재(頤齋). 증조부는 최업(崔嶪), 조부는 최수준(崔秀俊), 외조부는 유영입(柳永立)이고, 아버지는 부사(府使) 최기남(崔起南)이다. 동생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인 최명길(崔鳴吉)이고, 부인은 익성군(益城君) 이형령(李亨齡)의 딸이다. 최내길(崔來吉)[1583~1649]은 1606년(선조 39)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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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충렬서원 역대 원장을 기록한 책첩. 충렬서원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배향한 서원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 1609년(광해군 1)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1년에 복원되었다. 『충렬서원 선생안(忠烈書院 先生案)』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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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이재가 충렬서원 유생들이 원내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정리한 고문서. 『충렬서원학규』에 기록 된 절목(節目)은 서원 이외에 용인 지역에 있던 각급 향숙(鄕塾)에서도 본받아 유생의 교육 규범으로 활용되었다. 이재(李縡)[1737~1748]가 성책하면서 『소학』 등의 교재를 읽기 전에 먼저 정몽주의 글을 읽을 것을 권면하는 글을 서문에 남긴 것이 다른 학규에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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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상징이요,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동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영천이씨인데, 임신 중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려 깜짝 놀란 꿈을 꾸고 나서 낳은 아이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 포은 선생이 아홉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영천이씨가 낮잠을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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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서원. 이재(李縡)[1680~1746]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 노곡(노루실)에 있었던 서원이다.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노론의 중신이자 학자로 활동하던 도암(陶菴) 이재(李縡)[1680~1746]는 만년에 고향인 경기도 용인의 선영 아래로 퇴거하여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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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기호 지역에서 일어난 심성(心性)에 관한 학설 논쟁.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이라고도 한다. 이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 등을 지지한 이들이 충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으므로 호론(湖論)이라 하며,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이간(李柬)·이재(李縡)를 지지한 이들은 서울·경기 낙하(洛下) 지역에 주로 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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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아버지는 참판 홍우전(洪禹傳)이며, 어머니는 대사헌(大司憲) 이상(李翔)의 딸이다.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1703~1771]는 영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시무에 밝고 경세치용(經世致用)에 관심이 많았던 개혁 실천주의자이다. 스스로 노론 이재(李縡)의 문인이라 했으나 대다수의 이재 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