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17 |
---|---|
한자 | 朴麟祐 |
이칭/별칭 | 초암(草庵),지정(芝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간양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민희 |
[정의]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예산에 은거한 고려의 충신.
[개설]
박인우(朴麟祐)[1338~1410]는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자 불사이군의 절개로 관직을 버리고 예산 지역에 은거한 충신이다.
[가계]
박인우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초암(草庵)·지정(芝亭)이다. 아버지는 판사를 역임한 박천응(朴天應)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예산읍 간양리 밀양박씨(密陽朴氏) 입향조이다.
[활동 사항]
박인우는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교류하였다. 고려 말에 문·무과에 모두 합격하였다. 내포 지역에 왜구 침략이 극심하자 최영(崔瑩) 장군의 휘하로 전장에 나서서 1376년(우왕 2) 홍산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예산·덕산·면천 일대의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새웠다. 또한, 수군도만호 재임 시 삼정(三丁)을 1호(戶)로 수군을 편성하는 법을 만들었으며, 바닷가 왜구 침탈 지역의 양인에게는 토지세를 받지 않았고 수군의 처자식을 관이 대신 양육하도록 하였다.
1474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예산읍 신례원 덕방산 아래에 초막을 짓고 은거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병조판서에 임명하여 박인우를 불렀으나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묘소]
박인우의 묘소는 예산군 예산읍 신례원 2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인우는 1987년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