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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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魯敬 |
영어공식명칭 | Kim Nokyung |
이칭/별칭 | 가일(可一),유당(酉堂),정헌(靖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출생 시기/일시 | 1766년 - 김노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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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01년 - 김노경 선공부정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805년 - 김노경 증광문과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809년 - 김노경 동지부사 겸 사은부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819년 - 김노경 예조판서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822년 - 김노경 동지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827년 - 김노경 판의금부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830년 - 김노경 지돈령부사 재직 중 탄핵 |
활동 시기/일시 | 1830년 - 김노경 강진현 고금도에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837년 - 김노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57년 - 김노경 신원·복권 |
출생지 | 김노경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
거주|이주지 | 김노경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
부임|활동지 | 김노경 부임지 - 평안도 |
유배|이배지 | 김노경 유배지 - 전라남도 강진군 고금도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대표 관직 | 예조판서|판의금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신.
[개설]
김노경(金魯敬)[1766~183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할아버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예산군 신암면 일대에 입향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노경은 신암면 용궁리에서 추사 김정희를 낳았으며, 1809년(순조 9) 동지부사의 직책으로 연경에 갔을 때, 아들 김정희가 수행하도록 하여 옹방강, 완원과 같은 거유와 접촉하고 금석학, 문자학 등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가계]
김노경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가일(可一), 호는 유당(酉堂)이다. 할아버지는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이고, 아버지는 판서 김이주(金頤柱)이며, 어머니는 윤득화(尹得和)의 딸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부인은 기계유씨(杞溪俞氏)이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맏아들이다.
[활동 사항]
김노경은 1801년(순조 1) 선공부정을 지내고 1805년(순조 5) 현감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지평을 거쳐 승지, 이조참판 및 경상도와 평안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또 1819년 예조판서를 비롯하여 이조, 공조, 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그 뒤 대사헌을 거쳐 1827년 판의금부사, 광주부유수, 지돈령부사 등의 요직을 거쳤다.
김노경은 1809년 동지부사 겸 사은부사로, 1822년(순조 22)에는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왔다. 동지부사로 연경에 갔을 때에는 아들 김정희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 김정희가 연경에 체류하면서 옹방강, 완원 같은 거유와 접촉할 기회를 주었다. 이 시기의 연경 학계는 고증학의 수준이 최고조에 달하여 본래 경학의 보조 학문으로 존재하였던 금석학, 사학, 문자학, 음운학, 천산학, 지리학 등의 학문이 모두 독립적으로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금석학은 문자학과 서도사 연구와 더불어 독보적 학문 분야로 큰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금석학은 아버지 김노경의 동지부사 수행 때 결정적인 계기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김노경은 익종의 대리청정을 할 때 김로(金路), 홍기섭(洪起燮) 등과 같이 증직에 있으면서 전권을 행사하고, 이조원(李肇源)의 옥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1830년(순조 30) 지돈령부사 재직 중 삼사와 의정부의 탄핵을 받아 강진현의 고금도에 유배되었다가 1837년(헌종 3)에 사망하였다.
글씨를 잘 써 아들인 추사 김정희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신라경순왕전비(新羅敬順王殿碑)」, 「신의왕후탄강구묘비(神懿王后誕降舊墓碑)」 등의 글씨가 전한다.
[묘소]
김노경의 묘소는 경기도 과천시에 있던 것을 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로 이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9년 후손이 화장 후 파묘해 갔다는 설과 예산으로 옮겨졌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