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호국(護國)에 관한 사실. 영천은 일찍이 고대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국난 극복의 보루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영천이 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를 극복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영천인들의 국난 극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호국 여신(女神)...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세아(鄭世雅)의 본관은 영일.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고, 1535년(중종 30)에 태어났다. 고조는 사성(司成) 정종소(鄭從韶)이며, 증조는 찰방(察訪) 정이휘(鄭以揮), 조부는 정차근(鄭次謹)이다. 아버지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어머니는 의인 최씨(宜人崔氏)로 봉사(奉事) 최덕...
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의번(鄭宜...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백암(柏巖) 정의번(鄭宜藩)의 노비. 임진왜란 때 영천 지역의 의병들은 영천성 탈환의 여세를 모아 경주성 탈환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정의번은 늘 앞장서서 적을 공격했고, 그의 종 억수는 충실히 주인을 보필했다. 그러나 적군이 기병을 투입하여 아군의 뒤쪽을 공격하고, 앞쪽에 매복했던 병사들이 일시에 공격을 해오자 아군은 당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주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