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용계리에 진주인 강영두(姜永斗)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비와 비각. 강영두[1846~1907]의 자는 성구(性九)이고, 고구려 말 백마원수(白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는 진주 강씨 후손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용계리 달산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약주를 좋아했던 아버지를 위해 10리 길을 날마다 장작을...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의 효자. 강창언(姜昌彦)은 고구려 말 백마원수(白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는 진주 강씨 후손으로 1811년(순종 원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강우석(姜遇錫), 어머니는 청도 김씨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 이달주(李達周)의 딸로, 슬하에 네 아들이 있으니 강재정(姜在廷)·강재하(姜在夏)·강재익(姜在翊)·강재주(姜在朱)이다...
-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하며, 이옥삼(李玉三)과 이응백(李應伯)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이옥삼은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천(李蒨)을 파조로 하는 국당공파(菊堂公派)로 경상북도 영천의 신녕현(新寧縣) 지역에 입향을 하였으며, 이응백은 이제현(李齊賢)을 파조(派祖)로 하는 익재공파(益齋公派)로 임진왜란 전...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권성필(權成弼)의 부인 열녀 이씨(李氏)는 연산군(燕山君) 때에 남편이 죽임을 당하자 몰락하여 관비(官婢)가 되었다. 이씨는 남편은 죄 없이 죽었다고 여겨 스스로 목을 매고자 하였지만 시어머니가 말려 뜻을 이루지 못 했다. 사람들이 그를 범하고자 하였으나 이씨는 늘 차고 다니던 작은 칼로 스스로를 찔러 죽음으로써 범할 수가 없었다....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권응수(權應銖)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소 앞에 세운 묘표(墓表). 권응수[1546~1608]의 본관은 안동, 호는 백운재(白雲齋)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별시 무과에 급제한 후 수의부위권지(修義副尉權知)·훈련원부봉사(訓鍊院副奉事)를 지냈으며, 경상좌수사 박홍(...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김두황은 가야(加耶)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과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등을 배출한 김해 김씨(金海 金氏) 삼현파(三賢派) 후예이다. 자는 원서(元瑞), 호는 성암(省菴)이며, 1817(순조 17) 5월 7일에 태어나 1869(고종 6) 3월 11일 53세를 일기로 세...
-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김언태(金彦泰)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는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후손이며, 18세(世) 김을초(金乙軺)를 파조(派祖)로 하는 규정공파(糾正公派)이다. 초명(初名)은 김종언(金鍾彦), 자는 응률(應律), 호는 우헌(愚軒)이다. 1...
-
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이자희(李慈喜)는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집원(李集元)과 의성 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1886년(고종 23) 12월 19일에 태어나 1963년 8월 24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김태곤(金台坤)으로, 아버지 종사랑(從仕郞) 김기호(金棋昊), 어머니 전주 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1886년 5월 10일에 태어나 1939년 1...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열부. 증(贈) 정부인(貞夫人) 월성 손씨(月城孫氏)는 손영덕(孫永德)의 딸이며, 1838년(헌종 4)에 태어났다. 남편은 김찬식(金燦植)의 아들 김현학(金顯學)이며, 어머니는 영양 최씨(永陽崔氏)이다. 후사(後嗣)가 없어 아우 김현인(金顯仁) 아들 증(贈)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김관배(金寬培)로 뒤를 이었다. 김현학의...
-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문에 뛰어난 사람. 영천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이후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배출된 고장으로, 특히 조선 시대에는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1. 조선 전기 조선 초기 영천으로 유배를 온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이 팔공산(八公山) 아래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하여, 대전(大田) 이보흠(李甫欽)과 경재(警齋) 곽순(郭珣)...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본관(本貫)을 밀양(密陽)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재상에 오르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대광보...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장가 박인로(朴仁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묘표(墓表). 박인로[1561~1642]의 본관은 밀양,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나 13세에 「대승음(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 절구(七言絶句)를 지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정세아(鄭世雅)의 휘하에서 별시위로 전공을 세우고,...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월성 정씨(月城鄭氏)는 정필용(鄭弼容)의 딸로 부군(夫君)은 방일로(方逸老)이다. 방일로는 온양 방씨로 영천 입향조인 방이복(方以福)의 후예이다. 방일로의 고조는 방이복의 5세손 방덕흡(方德洽)이며, 증조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부사(中樞府使) 방세적(方世迪),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방선원(方善圓)이다. 아버...
-
한말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방학기의 본관은 온양, 1879년(고종 16)에 태어났다. 고조는 방일만(方日萬)이며, 증조는 방후룡(方厚龍), 조부는 방덕환(方德煥)이다. 아버지는 방원규(方圓奎)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 金氏)로 김진채(金振彩)의 딸로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 방형식(方亨植)과 사위 정원덕(鄭源德)·이종대...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영산 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으며, 8세(世)...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안영중(安榮重)의 처 열녀 월성 손씨(月城 孫氏)는 손성도(孫星度)의 딸로 1786년(정조 10)에 태어났으며, 1814년(순조 14) 9월 24일 2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안영중은 고려의 매염진국장군(梅塩鎭國將軍)이며 광릉군(廣陵君)인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하는 광주 안씨(廣州 安氏)로 좌랑(佐郞) 안증(安嶒)이...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양실근(楊實根)의 본관은 청주. 1867년(고종 5) 9월 7일에 태어났고, 사망한 해는 알 수 없으나 11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양영상(楊永尙)이며, 증조는 양귀천(楊貴天), 조부는 양손업(楊遜業)이다. 아버지는 양우덕(楊遇德)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영인(令人)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규일...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황보성(皇甫星)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 황보성[1700~1756 추정]의 본관은 영천, 자는 경우(景虞)이다. 조선 후기 정조 때 효자로 홀어머니를 모시며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나, 나라에서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이란 증직을 내렸다. 어머니 영양 이씨는 마을에 흉년이 들었을 때 구휼한 것으로 마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 있는 유서룡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유서룡(柳瑞龍)[1789~1867]의 본관은 문화. 자는 성연(聖淵)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해 비서승(秘書丞)의 증직이 내려지고, 이에 정효각을 세워 기리고 있다. 어느 날 입안에 가시가 있는 호랑이가 집 앞에 와 있기에 이를 꺼내 주니 은혜를 잊지 못한 호랑이가 유서룡...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윤필성(尹弼成)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주석(柱錫)이고 1794년(정조 18)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에서 태어나 1850년(철종 원년) 1월 2일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윤경언(尹慶彦), 증조는 윤면교(尹勉敎), 조부는 윤수인(尹守仁)이다. 아버지는 윤순대(尹順大)이며 어머니는 영양 최씨(永陽崔氏)이다....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이감(李敢)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고려 시대 학자인 이감[1362~1426]의 자는 의민(義民), 호는 문한당(文閒堂)으로 정몽주의 고향 인근에서 태어나 정몽주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138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5년 문과에 급제해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언관이란...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시조는 알천양산촌장 이알평(李謁平)이며,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이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국...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부. 연주 현씨(延州玄氏)는 현성구(玄聖龜)의 딸로 1873년(고종 10)에 태어났으며, 남편은 이수상(李秀祥)이다. 이수상은 아버지 이종한(李宗漢)과 어머니 함평 정씨(咸平鄭氏) 사이에서, 1870년(고종 7) 2월 12일에 태어났다. 슬하에 3남을 두니 이기헌(李基憲)·이기준(李基俊)·이기조(李基祚)이다. 연주 현씨는 4형...
-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에 이수징의 처 함양 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이수징(李洙徵)의 처 함양 박씨(咸陽朴氏)는 시집 간지 3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픔을 참고 늙은 시부모를 위로하다 초상이 끝나는 날 약을 먹고 죽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이수징 처 함양 박씨 정려각은 영천시 쌍계동 쌍계마을에 있다. 영천...
-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조선 후기 효자. 이승화의 자는 내윤(乃允), 호는 참오정(參五亭)이다. 이승화(李承和)는 고려 초기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고울군(高鬱君)[영천의 옛 이름]에 봉해진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고, 고려 때 좌명공신(佐命功臣) 신호위대장군(神號衛大將軍)을 지내고 영양군(永陽君)에 봉해진 이대영(李大榮)을 중시조(中始祖)로 하는 영천...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시복(李時復)은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李氏) 후손이다. 처음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17세(世) 이석보(李錫保)의 넷째아들 이방(李芳)으로 이시복의 9대조가 된다. 이시복의 자는 내백(來伯), 호는 신와(愼窩)이며, 1758년(영조 34)에 태어났다. 고조는 통덕랑(通德郞) 이기(李淇...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에 이재영(李在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비 및 비각. 이재영[1819~1884]은 본관이 경주이며, 지극한 효성으로 이 지역에서 이름이 난 인물이다. 아버지의 병환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리니 다음날 쾌차했다고 전하며, 겨울에 얼음을 깨어 물고기를 잡아드리는 등 부모가 드시고 싶은 음식은 아무리 멀어도 구해드렸다고 한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이재학(李在鶴)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경제(慶堤), 호는 백원재(百源齋)이며 1880년(고종 17) 9월 13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이창번(李昌蕃)이며, 증조는 이장영(李章霙), 조부는 이덕수(李德秀)이다. 아버지는 이영백(李永白)이나 숙부 이화백(李和白)에게 출계하였다. 부인은 월성 최씨(月城 崔氏)로 최세진(崔世瑨)...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김선중(金先仲)의 딸로 남편은 이종근(李鍾根)이다. 이종근은 경주 이씨(慶州李氏)로, 자는 치문(致文)이며,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이규선(李圭善)이고, 어머니는 능주 구씨(綾州具氏)이다. 슬하에 1남을 두니 이성우(李成雨)이다. 열녀 김해 김씨는 이종근의 처로 가세가 빈한함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며 지극히 지아...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치두(李致斗)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칠(景七), 호는 죽오(竹塢)이며, 1824년(순조 24)에 태어나 1889년(고종 28) 10월 4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통덕랑(通德郞) 이만휘(李萬輝)이며, 증조는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 판윤(漢城判尹) 이광옥(李光玉),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이경...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이택화(李澤和)의 처 정부인(貞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1854년(철종 5) 9월 26일에 태어났으며, 통덕랑(通德郞) 권여택(權與宅)의 딸이다. 이택화의 본관은 영천, 고조는 이성부(李聖溥)이며, 증조는 이학배(李學培), 조부는 참봉(參奉) 이중권(李中權)이다. 아버지는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필영(李弼榮)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은설(殷說)이며, 1797년(정조 21) 3월 7일에 태어나 1847년(헌종 13) 12월 15일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수문장(守門將) 이시원(李時元)이니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로 처음 옮겨 살았으며, 증조는 이흥춘(李興春), 조부는 이재발(李再發)이다....
-
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열부. 효열부(孝烈婦)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김경용(金慶鏞)의 딸로 1933년에 태어났으며, 남편은 이혜우(李惠雨)이다. 이혜우의 자는 기은(基殷)이며, 아버지 이종명(李鍾明)과 허용(許龍)의 딸인 어머니 하양 허씨(河陽許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편 이혜우와 사이에서 1녀를 두었고, 사위는 강릉인(江陵人) 함진수이다. 김해 김씨는 이혜우와...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희영(李曦榮)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중(成重), 호는 동포(東圃)이며, 1849년(헌종 15) 1월 2일에 태어나 1925년 2월 11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부사(中樞府事) 이덕룡(李德龍)이며, 증조는 이수억(李壽億), 조부는 이시춘(李時春)이다. 아버지는 이유화(李裕華...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정대걸의 본관은 나주, 자는 주서(周瑞), 호는 경와(敬窩)이며,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1857년 5월 21일 2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인태(丁麟泰)이며, 증조는 정덕열(丁德烈), 조부는 정사상(丁師尙),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副護軍) 정성교(丁成敎)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제주 고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에 정대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정대걸(丁大杰)[1830~1857]의 본관은 나주, 자는 주서(周瑞), 호는 경와(敬窩)이다. 정대걸은 어릴 때부터 지성으로 부모를 모신 효자로 이름이 났다. 어머니의 오랜 병중에 하루는 회를 먹고 싶어하시니 얼음을 깨고 낚시하면서 진정으로 기도를 하니 고기가 잡혔다고 하는 등 그의 효...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게 된 것은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 때부터이다. 정수...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정유인(鄭裕仁)의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형태(朴亨泰) 딸이다. 정유인은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의 후손으로, 고조는 정기양(鄭岐陽), 증조는 정일종(鄭一宗), 조부는 정하시(鄭夏時), 아버지는 정진휴(鄭軫休), 어머니는 영산 신씨(靈山 辛氏) 신명신(辛命新)의 딸이다. 밀양 박씨는 슬하에 후사(後嗣)가 없어 정...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백암(柏巖) 정의번(鄭宜藩)의 노비. 임진왜란 때 영천 지역의 의병들은 영천성 탈환의 여세를 모아 경주성 탈환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다. 정의번은 늘 앞장서서 적을 공격했고, 그의 종 억수는 충실히 주인을 보필했다. 그러나 적군이 기병을 투입하여 아군의 뒤쪽을 공격하고, 앞쪽에 매복했던 병사들이 일시에 공격을 해오자 아군은 당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주력...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의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효각. 정의번(鄭宜藩)[1560~1592]의 본관은 영일, 자는 위보(衛甫), 호는 백암(柏巖)으로 정세아(鄭世雅)의 아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박소’에서 권응수와 정대임이 승리하는데 앞장섰고, 아버지 호수 정세아와 함께 의병[창의정용군]을 조직해 영천성 복성(復城)...
-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재전(鄭載銓)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형보(衡保), 호는 소하(小霞)이며, 1885년(고종 22) 8월 28일에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에서 태어나 1969년 2월 12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태환(鄭台煥)이며, 증조는 정학령(鄭鶴齡), 조부는 정치정(鄭致楨)이다. 아버지는 정사구(鄭師九...
-
경상북도 영천시 도림동에 있는 정한헌 처 이천 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창열각. 오천(烏川)[영일(迎日)]인 정한헌(鄭澣憲)의 처 이천 서씨(利川 徐氏)[아버지 서영규(徐榮奎)]는 구한말 친정에 근친을 갔던 중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들었다. 바로 달려와 모든 장례 절차를 마쳐놓고 자신은 초빈에 가서 남편이 평소 사용하던 허리끈을 소나무에 묶고 남편의...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조경온(曺景溫)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율(汝慄), 호는 임계(林溪)이며, 1548년(명종 3) 5월 9일에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장사랑(將仕郞) 조계조(曺繼祖)이며, 증조는 정릉참봉(貞陵參奉) 조응하(曺應河), 조부는 경릉참봉(敬陵參奉) 조영(曺英)이다. 아버지는 정릉참봉(貞陵參奉) 조희장(曺希章)이...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어방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인인 조상치(曺尙治)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묘갈(墓碣). 조상치의 자는 치숙(治叔) 또는 자경(子景), 호는 단고(丹皐) 또는 정재(靜齋)이며, 가선대부(嘉善大夫) 좌익병마사(左翼兵馬使) 판희천군사(判熙川郡事)를 지낸 창녕 조씨(昌寧曺氏) 영천 입향조 조신충(曺信忠)의 아들이다. 조상치는 길재(吉再)의...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최경제(崔經濟)의 처 문화 류씨(文化柳氏)의 증조는 참판(參判)을 증직 받은 류보(柳葆)이며, 조부는 참봉(參奉)으로 승지(承旨)를 증직 받은 류연양(柳延陽), 아버지는 류요신(柳堯臣)이다. 부군(夫君)인 최경제의 고조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영해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 최치온(崔致溫)이며, 증조는 선무랑(宣武郞) 밀양훈도(密陽訓導)...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부. 효부(孝婦) 수원 백씨(水原白氏)는 1847년(헌종 13)에 태어났다. 남편은 최득선(崔得先)이며, 아버지 최순황(崔舜凰)과 어머니 안동 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1843년(헌종 9)에 태어나 1876년(고종 13) 5월 11일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아들 최일룡(崔馹龍)이 있다. 수원 백씨는 경주 최씨 문중에 시집...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 있는 고려 후기 영천 지역의 문신인 정몽주(鄭夢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세운 효자비. 정몽주[1337~1392]의 본관은 영일, 초명은 정몽란(鄭夢蘭) 또는 정몽룡(鄭夢龍)이며,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다. 1355년 아버지 상(喪)에 3년, 1365년 어머니 상(喪)에 3년간 여묘(廬墓)하여 정표되었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황보성(皇甫星)은 고려 초 상장군(上將軍) 황보능장(皇甫能長)을 시조로 하는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의 후손이다. 5대조 황보덕(皇甫德)이 장기(長鬐)[포항시 장기면]에서 영천으로 이주하였으며, 고조는 황보령(皇甫齡), 증조는 황보남(皇甫楠), 조부는 황보익(皇甫益), 아버지는 황보탈(皇甫侻)이며 어머니는 영천 이씨 영양군(永陽君)...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 살았던 황보 열(皇甫 悅)의 처 영양 이씨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와 비각. 황보 열[?~1711]의 본관은 영천이며, 부인인 영양 이씨(永陽李氏)[영천 이씨, ?~1755]는 조선 영조 때 큰 흉년이 들어 동민 전체가 굶어 죽을 처지에 놓이자 재산을 털어 40여 호의 동민들을 구휼했다. 영양 이씨는 동몽교관(童蒙敎官...